‘원더걸스’, 2015년에 ‘원더우먼’ 될까
  • 서호정 | 스포탈코리아 기자 ()
  • 승인 2010.10.0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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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사상 첫 세계 정복 이룬 ‘태극 소녀’들이 성인 레벨에서도 영광 이어가기 위한 조건

한국 축구에 ‘소녀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8월 20세 이하(U-20) 여자 대표팀이 세계 3위에 오르더니 그 감격이 가시기도 전에 동생들인 17세 이하(U-17) 여자 대표팀이 세계 정상에 올랐다. U-17 여자월드컵 우승은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 대회에서 한국이 거둔 최초의 우승이다. 1990년 타 종목 선수들을 끌어모아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여자축구가 불과 20년 만에 세계 정복을 이루는 초고속 성장을 한 것이다. 이제 관심은 청소년에서 세계 최강으로 올라선 여자축구가 성인 레벨에서도 세계 정복을 재현할 수 있느냐로 모이고 있다. 독일에서 열리는 2011년 여자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한국은 오는 2015년 월드컵을 목표로 삼았다. 지소연(한양여대)을 앞세워 ‘황금 세대’로 불리는 U-20 대표팀은 5년 뒤 여자축구 선수의 전성기인 20대 중반을 맞게 된다. U-17 월드컵에서 MVP와 득점왕을 싹쓸이한 여민지(함안 대산고)가 중심이 된 ‘플래티넘 세대’ U-17 대표팀은 기량과 경험이 어우러지는 20대에 접어든다. 개인기와 축구 지능에 일찌감치 눈을 뜬 데다 국제 경험까지 쌓은 무서운 소녀들이 한국 여자축구의 더 큰 성공 시대를 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 U-17 여자월드컵에서 우승한 17세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이 지난 9월28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 엷은 저변, 엘리트 시스템 강화가 살길

한국 여자축구는 저변이 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FIFA 랭킹은 21위이지만 그에 맞는 인프라나 환경은 갖추지 못했다. 여자축구 등록팀은 66개이고, 등록 선수는 1천3백62명이다. 최상위층에 해당하는 대학팀과 실업팀도 각각 여섯 개에 불과하다. FIFA 랭킹 1위인 미국은 9백50만명의 선수를 지닌 여자축구 왕국이다. 3위인 독일은 60만명, 한국이 라이벌로 삼고 있는 일본과 중국도 4만명 수준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정상에 오른 U-17 대표팀의 선수 20명은 3백45명의 여고 선수 가운데 선발한 멤버들이다.

U-20 대표팀과 U-17 대표팀의 잇단 성공으로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사회체육에 대한 관심이 적고, 특히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에 대한 인식이 미미한 한국 사회에서는 저변 확대가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축구 피라미드의 최상위층인 대표팀의 가시적인 성과가 관심을 환기시켜 거꾸로 기초를 다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그에 맞는 여자축구 발전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그 출발은 2002년 한·일월드컵 잉여금과 스포츠토토 수익금을 활용한 여자축구 지원책이다. 2002년 이후 여자축구는 상비군 제도가 시작되며 수준급 선수들에 대한 집중 관리가 시작되었다.

상비군 체제가 중요한 이유는 수준급 지도자로부터 양질의 축구를 배우고 국제 경험을 꾸준히 쌓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현장 지도자들은 급여 수준이 떨어지는 여자축구에 투신하기를 꺼린다. 잇단 쾌거가 풀뿌리 축구가 아닌 최인철, 최덕주 등 축구협회 소속 전임 지도자들의 공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할 정도이다. 협회는 국제 경험 부족으로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번번이 좌초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전지훈련을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여자축구 최강국인 미국으로 한 달 넘게 전훈을 다녀온 선수들은 경험의 폭을 넓히며 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상대하는 데 자신감을 얻었다. 1년에 A매치를 6회 이상 치르기 힘든 여자축구의 현실을 볼 때 한국 축구가 꾸준히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국제 대회 참가와 해외 전지훈련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일선 지도자들의 의견이다.

▲ 17세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 주장 김아름 선수가 U-17 여자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높이 치켜들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 관건은 톱클래스 공격력 받칠 수비력

태극 소녀들은 세계 정상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결과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큰 박수를 받았다. 그 핵심은 세계 톱클래스급의 공격력에 있다. 지소연과 여민지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보유한 것 말고도 침착하고 섬세한 패스 연결로 세계의 강호들을 위협하는 ‘아름다운 축구’를 선보였다. 기술적으로 공격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이미 유럽과 남미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이다. 문제는 공격이 아닌 수비이다. U-17 대표팀은 조별 리그부터 결승전까지 여섯 경기를 치르는 동안 18골을 넣었지만 11골을 내주었다. 경기당 3골을 넣고 2골을 내주는 아슬아슬한 경기를 했다. 특히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은 무려 11골을 주고받은 끝에 6-5의 비정상적인 스코어로 승리했다. U-20 대표팀도 비슷한 스타일의 경기를 보였다. 6경기에서 13골을 넣고 9골을 내주었다.

약한 수비는 독일, 미국, 노르웨이 등 남자 선수를 방불케 하는 파워 축구를 구사하는 팀들과의 승부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U-20 대표팀과 U-17 대표팀 모두 본선에서 독일에 패했다. 특히 U-20 대표팀은 4강전에서 독일의 힘과 높이에 압도당하며 1-5 대패를 당했다. 측면 크로스에 의한 실점이 많았고, 골문 앞에서의 맨투맨 방어 능력도 부족했다. 2009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금메달을 차지하며 여자축구의 전성시대를 열어준 안익수 FC 서울 수석코치(당시 여자 대표팀 감독)는 “한국의 패스 게임은 세계에서도 통하는 무기이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축구를 배운 선수가 많아 공격을 풀어가는 이해력이 높다”라고 평가하면서도 “결국 문제는 수비이다. 장신 수비수와 정상급 골키퍼가 공격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수비력 강화는 비단 세계 무대에서의 성공을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니다.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첫 난관인 아시아 무대를 돌파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아시아 지역에 주어진 여자월드컵 출전권은 모두 세 장이다. 오는 2012년 열릴 여자아시안컵에서 3위 이상의 성적을 내야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북한, 중국, 일본의 벽에 막혀 2003년(3위)을 제외하고는 아시안컵에서 단 한 번도 3위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최근 한국의 기량은 기존 3강인 북한, 중국, 일본에 버금갈 정도가 되었지만, 문제는 새로운 다크호스인 호주의 등장이다. 호주가 아시아 축구에 편입되면서 여자축구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지난 5월 열렸던 2010 여자아시안컵에서 한국은 중국과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호주의 힘과 높이에 밀리며 1-3으로 패배해 결선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한 채 2011년 월드컵 출전의 꿈을 접은 바 있다. 2008년과 2006년에도 한국은 호주에 0-2, 0-4로 패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었다. 아시아에서 천적 호주를 넘어서야 세계 무대에서 그 이상의 천적들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화끈한 공격력을 뒷받침할 수비수와 골키퍼 발굴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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