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상조’의 웃음 그칠 날이 없다
  • 이춘삼│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0.18 16: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 기획 시리즈]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서울고②

 

▲ 옛 서울고등학교의 모습. ⓒ서울고 총동창회 제공

‘10’자가 세 번 겹쳐 중국인들이 큰 길일로 쳤다는 2010년 10월10일, 서울고 동문 등산 동호인들이 충북 음성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연중 4계절마다 한 번씩 열리는 연합 등반 행사의 일환이었다. 1회부터 41회 졸업생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 아들뻘 되는 동문들이 45인승 관광버스 열 대로 움직였다. 많게는 버스가 열다섯 대까지 동원될 만큼 이 정례 등산 행사는 대성황이다. 단일 고등학교의 모임으로 유례가 없는 호응이라고 서울고인들은 자랑한다. 총동문산악회(회장 한효택·21회)는 매주 갖는 서울 근교 산행, 백두대간-호남 정맥-지리산 종주, 5산(불암·수락·사패·도봉·북한산) 극기 산행, 해외 원정 등반 등 월별 또는 계절별로 크고 작은 산행을 강도 높게 진행하며 우애와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총동문산악회를 비롯해 친목 모임 다양

또 하나 활발한 모임이 서건회이다. 건설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동문들의 모임인 서건회에는 총동문산악회 못지않은 다수 동문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어 여행·바둑·등산 등 취미 활동을 통한 친목 도모는 물론이고, 나아가 다양한 사업상 정보 교환과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모교를 위해 교문을 새로 세워주는 등 물심양면의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이 밖에도 여러 모임이 있다. 취미를 같이하는 동호회로 골프·바둑·테니스·당구 모임이 있고, 학창 시절 함께했던 합창반·관악반·미술반 친구들이 졸업 후에도 모임을 지속해 발표회를 갖기도 한다. 기독교·천주교 같은 종교 활동이나 서건회처럼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동문들끼리 고시동지회, 서무회(무역업 종사자 모임), 서철회(철강업 종사자 모임)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함께한다.

현 총동창회장인 강대신 정원종합산업 회장(15회)은 조창환 전 회장(7회·이화산업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모교 야구 후원회장과 서건회장을 지냈으며, 총동창회장을 맡으면서부터는 모교와 동창회를 위한 여러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6·25 전쟁 발발 60주년인 올해, 가장 많은 숫자의 고교생 학도병을 기록했고 희생도 많았던 선배들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서울고 동문 6·25 전쟁 참전 기념비’가 지난 10월16일 교정에서 제막되었다. 조창환 이화산업 회장의 모교 사랑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각별한 면이 있다.

강대신 회장이 속한 15회가 서울고 출신들 가운데서는 매우 활발한 동기로 꼽힌다.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신영무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박용상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김선옥 법무법인 세종 시장경제연구원 운영위원장(전 공정거래위 부위원장), 이영순 알엔엘바이오 사외이사(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 신용극 유로통상 회장, 구본국 서울고속도로 대표이사 사장이 이 동기회의 멤버들이다. 와인 수입업체인 신동교역도 갖고 있는 김영호 회장은 동창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와인을, 임건우 보해양조 회장(18회)은 자사 주류를 제공해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몫하곤 한다.

서울대 수의대 학장을 역임한 이영순 사외이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개발한 성체줄기세포는 코스닥 상장 기업인 알엔엘(Revolution of Natural Life)바이오에 의해 양산 체제를 갖추었는데, 난치성 질병 치료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어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영수 전 총동창회장(12회)이 발의해 시작된 ‘모교 발전 기금 100억원’ 모금 캠페인은 박철원 전 회장(14회·에스텍시스템 회장)으로 이어지며 초과 달성하는 성과를 보였다.


20회에 부자 동문 많아 ‘눈길’

서울고 출신 가운데 최고 부자로는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즈 회장(20회)이 손꼽힌다. 봉제완구업으로 사업을 일군 그는 신용카드 결제대행회사인 ‘케이에스넷’을 업계 굴지의 회사로 키워냈고 이어 손에 쥔 케이블 방송 ‘C&M’도 눈부신 성장세를 보여 그 주식을 매각한 1조원 규모의 현금 재력가가 되었다. 현재 투자 전문 기업인 에이티넘파트너즈에 집중하는 그를 가리켜 주위에서는 ‘미다스의 손’이라고 부른다. 연극인 이해랑 전 예술원 회장(작고)의 차남으로서 모교인 서울고와 연세대, 부인의 모교인 서울여대를 비롯해 여러 학교와 연구 기관을 지원하는 등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거액의 기부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장관(12회)과 가형인 이방주 회장이 자문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동산 투자 회사인 제이알자산관리를 이끌고 있는 이방주 회장은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대표이사 사장까지 올랐고,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를 역임한 전문 경영인이다. 가친을 기리는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20회에는 부자 동문이 많다. 이민주 회장을 비롯해 임창욱 대상 회장, 허승조 GS리테일 대표이사 부회장, 호종일 호성흥업 회장이 그들이다. 설립 33년째를 맞는 생활용품 제조업체 피죤의 이윤재 회장은 1970년대 해외 출장에서 섬유 유연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옷감을 부드럽게 하고 정전기를 방지할 목적으로 빨래할 때 함께 넣는 피죤은 섬유 유연제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장녀 이주연 부회장을 데리고 일하는 그는, 요즘도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박웅서 UI에너지 명예회장(9회)은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은행과 국제경제연구소·산업경제기술연구원 연구직에 있다가 이병철 전 회장 고문으로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삼성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과 삼성경제연구소 국제담당 사장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으로 활동했던 그의 최대 무기는 유창한 영어 실력이다.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 김광호 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이상완 삼성 사회공헌위원회 사장(전 삼성전자 LCD총괄 사장), 현명관 삼성물산 상임고문, 30년 동안 삼성경제연구소와 기업구조조정본부에서 브레인으로 일한 이범일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도 삼성맨이다. 존경하는 인물을 이병철 회장이라고 밝히는 이필곤 알티캐스트 회장은 1965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제일제당과 삼성중공업에도 몸담았으며 삼성물산·삼성자동차·중앙일보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서울시 행정1부시장으로 일한 경험도 있다. 이상완 사장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오로지 이곳에서 한 우물만 판 정통 엔지니어이다.

전설적인 ‘고액 연봉’의 세일즈맨으로 널리 알려진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기발한 아이디어로 종합 가구업체로 이름을 알린 이현구 까사미아 대표이사 사장, 현대자동차의 신기술 개발을 지휘해 품질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기여한 이현순 현대자동차 연구 개발 총괄부회장 등이 동문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동창회가 시상하는 ‘자랑스러운 서울고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구자훈 LIG손해보험 회장(18회)은 구철회 LG그룹 창업 고문의 자제이다. 셋째사위 박재영씨가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구자열 LS전선 사업부문 대표이사 회장·구자용 LS네트웍스 대표이사 회장 형제는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자제이다. 구자열 회장(57세)은 자전거 마니아이다. 7박8일 동안 해발 2천~3천m인 알프스 산맥의 아찔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6백7km를 달리는 ‘트랜스 알프스’는 참가자 3분의 1 이상이 중도 기권하는 ‘지옥의 레이스’로 악명이 높다. 구회장은 2002년 아시아 최초로 이 레이스를 완주한 강철 사나이이다. 1주일에 두 번 정도는 집(서울 논현동)에서 회사(안양 LS타워)까지 자전거로 출근한다. 미국 모하비 사막을 6일 동안 자전거로 횡단한 경험도 있다. 지난해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사이클은 움직이며 몰입하는 명상’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서울고 사람들은 서울중을 나와 다른 고등학교로 간 구본무 LG 대표이사 회장을 ‘서울고 동문’으로 붙잡지 못한 것은 ‘큰 실수’라고 농담 삼아 얘기하기도 한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송호근 YG-1 대표이사 사장(23회)은 금속 절삭 공구인 엔드밀(end mill) 전문 기업의 CEO이다. YG-1은 미쓰비시·히타치·게링 등 세계적 기업과 겨루며 생산량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천 부평의 본사를 중심으로 국내 9개, 해외 25개의 공장·법인 등 탄탄한 생산·영업망으로 공구의 꽃으로 불리는 엔드밀 시장을 평정한 것이다.

김상준 전 풍산 방위산업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육사 출신의 예비역 육군 중장이다. 5공화국이 들어서기 직전 대통령 비서실 교육비서관을 지냈으며, 합참 작전본부장을 마치고 방산업체인 풍산에 닻을 내려 다년간 근무했다. 지난 호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듯 당시는 김원규 교장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육사 진학을 적극 권유한 영향을 받아 육사 출신 동문이 많았다.

동문 기업인 60여 명을 주축으로 한 ‘두월회’는 김영수 전 회장의 제의로 발족해 양규모 진양화학 회장, 박철원 회장, 강대신 회장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장원순 웰빙테크 회장(19회)은 연전에 동문 골프 동호인 회장을 맡은 적이 있으며, 총동창회나 동기 모임을 뒤에서 지원하는 데 발벗고 나서는 중견 기업인이다. 송보순 삼성전자 미국법인 고문, 송경순 LECG 한국대표(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국제금융학 박사), 송웅순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미국 컬럼비아 대학 법학 석사) 3형제도 동문이다.

학계에 이름 떨친 수재들 다수

서울고 1회 졸업생인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훈민정음과 국어학사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쌓고 우리나라 어문 정책 수립에 다대한 기여를 한 공로를 평가받았다. 서울고 출신의 또 다른 석학으로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도 있다. 줄곧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김일순 연세대 명예교수는 연세대 의대에서 강의와 진료를 병행했으며 연세대 의대 학장, 예방의학회장, 연세대 보건대학원장, 연세대의료원 원장, 연세대 의무부총장, 대통령 직속 의료제도발전특위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택휘 한영외국어고 교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로서, 서울교대와 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강의했으며 서울교대 총장으로 재직했다. 청소년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2007년부터 한영외국어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 1학기를 마치고 정년 퇴임한 김유항 전 인하대 화학전공 교수, 박성현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과 현재민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과 교수는 학창 시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업 성적으로 모교의 영예를 드높인 ‘공부의 천재’들이었다. 공영태 공안과 원장은 부친인 공병우 박사의 대를 이어 환자 진료에 힘을 쏟고 있다. 서울대 발전 기금 모금의 지휘봉을 든 이명철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인맥 관리의 달인’으로 통하는 마당발이다.

이상우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위원장도 서울고가 자랑하는 수재 중의 한 사람이다.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서강대 교수로 오래 재직했으며 한림대 총장을 역임했다. 천암함 사태 이후 국가안보 총괄점검회의 의장을 맡았다. 서울대 법대 동문인 황영옥 여사와의 사이에 둔 3녀1남이 모두 학업 성적이 우수해 수재 집안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문인 가운데 마해송 선생의 아들인 마종기 시인, 박목월 선생의 아들인 박동규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 황순원 선생의 아들인 황동규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가 서울고 9회 동기 졸업생이다. <별들의 고향> <상도> 등 수많은 작품으로 독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모은 최인호 소설가와 지광 능인선원 원장도 지명도가 대단히 높은 서울고인이다.

형제 동문으로 눈길을 끄는 인물 가운데는 신용석 2014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 대외협력위원장과 신용극 유로통상 회장이 있다. 신위원장 형제의 부친은 경성중학교 출신으로 인하대 의대 교수와 향토사학자로 활동한 신태범 박사이고, 조부는 대한제국 최초의 군함인 광제호의 신순성 함장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