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정보요원, ‘나토’에 간 까닭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0.10.1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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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정부, 장벽 붕괴 직후 ‘슈타지’ 암호 해독가들이 중동 지역 등으로 망명 못하게 자체 수용

전직 슈타지(동독 국가보안국) 암호 해독가들이 나토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직후, 서독 정부는 슈타지의 우수한 암호 해독 요원들을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하기 전에 고용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로데 운트 슈바르츠(Rohde & Schwarz) SIT 사가 그것이다. 기밀을 요하는 정보를 암호화해서 정보 접근이 가능한 사람만 읽거나 들을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을 과거 슈타지 요원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개발한 장비의 주 고객은 나토와 독일 정부이다. 영국 정보국 MI6 가상 요원 제임스 본드의 활약을 그린 <007> 영화에도 동독 슈타지의 암호 해독기 T-310이 등장한다. 초록색의 대형 냉장고처럼 생긴 이 기계로 동독 정부 요원들은 자신들의 텔레텍스 메시지를 암호화시키는 데 사용했었다. 이 장비는 슈타지의 자랑이었다.

로데 슈바르츠 사는 독일 정부에 보안 장비를 납품하고 있다. 납품하는 제품 중에 도청 방지용 휴대전화 단말기가 있는데, 대당 1천2백50유로짜리 이 휴대전화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 슈타지 소속 암호 해독가가 이제는 메르켈 총리의 암호 해독가가 된 것이다. 랄프 W 등 암호 해독가들을 서독으로 이송한 것은 서독 내무부의 일부 인사만 알고 있을 만큼 극비리에 진행된 일이었다.

▲ 독일 정부는 전직 ‘슈타지’들이 만들고 정리한 파일들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AP연합

 
요원들의 전문성 활용법, 자유 시장에서 찾아

당시 서독의 내무장관은 현 재무장관인 쇼이블레이다. 그는 슈타지가 갖고 있는 자료 가운데 동·서독 간에 40년 정보 전쟁사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증거들을 관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서독 정부는 슈타지의 파일에서 정치적으로 파장을 일으킬 자료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동독 비밀 조직의 우수한 재원들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슈타지의 암호 해독 능력은 서독의 정보 기관인 연방정보국(BND)의 암호화된 무전 송신을 해독한 것에서 증명되었다.

서독 정부는 서독 정보국의 암호를 풀 수 있을 만큼 수십 년간 암호 해독에 관해 고도로 훈련받은 동독 요원들이 만일 중동의 시리아 같은 나라로 망명하게 되면 끔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독일 연방정보국(BND)은 중동의 정보 커뮤니케이션을 감청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만약 슈타지 요원이 중동 국가로 간다면 심각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걱정했다. 반대로 슈타지의 기술을 사용해 중동 현지에 파견된 요원들이 뚫지 못하는 정보를 얻어낼 것으로 기대했다. 

사실 적성국이었던 동독의 정보 요원들을 그들의 과거 행적과 상관없이 통일 독일 정부의 정보 기관에 고용한다는 것은 잠재적인 반역자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서독 정부 인사들 간에 받아들여질 사안이 아니었다. 결국 전 슈타지 근무자들은 통일 독일 정부 기관에 채용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슈타지 암호 해독 요원들의 전문성을 활용할 방법을 자유 시장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래서 로데 운트 슈바르츠 사는 정부의 규제 없이 이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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