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가장 읽고 싶은 매체’] 소걸음으로 뚫는 외길에서 당당한 권위 세우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10.1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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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없이 발행하는 <공간>, 대중성 포기한 <월간미술> 등 ‘두각’

미국의 전문지 <사이언스>와 <빌보드>가 각각 과학과 음악 분야에서 갖는 매체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영국의 축구 전문지 <월드사커>, 프랑스의 미술 전문지 <보자르> 등도 자신의 분야에서 발군의 공신력을 자랑한다. 이에 비해서 국내 언론 시장의 경우, 전문지의 영역은 매우 협소하다. 종합 일간지나 방송사의 막강한 위력에 맥을 못추는 형편이다. <시사저널>은 창간 기념 특집으로 30개 분야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가장 읽고 싶은 언론 매체’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는 국내 전문지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 편집국을 이끌고 있는 황석권·이준희·이강진·이슬비 기자와 이건수 편집장(왼쪽부터). ⓒ시사저널 임준선

‘한국의 <보자르>’를 꿈꾸는 <월간미술>은 국내 미술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읽고 싶은 언론 매체’로 꼽혔다. 그 뒤를 <미술세계>가 이었다. 지난 3년간 똑같은 순위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1976년 당시 <계간미술>로 시작된 <월간미술>은 35년이라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여기서 기자 생활을 하는 등 많은 미술인이 거쳐갔다. <미술세계> <서울아트가이드> 등 후발 주자들에 견주어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월간미술>은 아직 확고한 자기 위치를 잡아가는 과정에 놓여 있다. 이건수 <월간미술> 편집장은 “전문지는 기본적으로 전문성을 추구하지만, 또 대중성을 무시할 수 없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좇는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우리 잡지만 해도 대중성이 좀 취약하다는 지적에 따라 한때 활자를 크게 하고 디자인과 기사 내용도 좀 더 대중적으로 바꾸는 시도를 했으나, 자칫 제 색깔을 잃을 수도 있다는 난관에 부닥쳤다. 결국 전문성을 추구하는 기존의 방향으로 회귀했다”라며 전문지로서의 고충을 토로했다.

전문 매체가 갖는 어려움을 색다른 시도로 정면 돌파하고 있는 매체도 있다. 건축 전문지 <공간>이다. 이 잡지는 현재 4년째 광고를 모두 뺀 채 발행하고 있다. 이른바 광고 없는 잡지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국내 건축 분야 부동의 1위 잡지로서 광고주들의 선호도가 좋은 매체임에도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 전문지의 고민이 숨어 있다. 이주연 <공간> 편집장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광고 없이 가고 있다. 광고 없이 판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지금 현재 건축 관련 업계가 워낙 어렵다 보니까 시장이 성숙해질 때까지 다른 모색을 하자는 차원에서 현재 이런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전문지에서는 광고가 단순히 돈벌이 수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광고 자체가 하나의 정보이고 기사 성격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일방에 편협된 광고는 다양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할 우리 입장에서 지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물론 재정적인 어려움은 <공간>의 이런 취지에 공감해주는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방법으로 대체하고 있다. 다행히 이런 우리의 취지를 잘 이해해주는 독자들 덕분에 부수도 늘어나는 등 그나마 잘 유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올해 조사에서도 건축 분야에서 월간 <공간>의 영역은 가히 독보적이다. 3년 연속 이 분야 1위에 올랐다. <공간>은 1966년 11월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고 김수근 선생이 창간했다. 지난해 7월 통권 5백호를 발행했다. 그 뒤를 건축학회지, 월간 <건축사>, 콘크리트학회지 등이 잇고 있다.


각 분야 최고 선호 매체들, 입지 굳히는 양상

음악 분야에서는 <음악춘추>가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 잡지는 1995년 9월에 창간되었다. 2, 3위는 월간 <객석>과 <음악저널>이 꼽혔다. 지난해와 동일한 순위이다. <객석> 은 음악 전문지라기보다는 종합예술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음악 분야와 함께 연극 분야에서도 2위에 올라 있다. <음악저널>은 1988년 4월에 주간으로 창간했다가, 이듬해부터 월간으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용 분야 전문지로는 <춤> <댄스포럼> <춤과 사람들> <몸지> 등이 소개되고 있다.  

연극계 전문가들은 여전히 <한국연극>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연속 1위에 올랐다. 2위 역시 3년 연속 <객석>이 차지했다. 국립극장에서 발행하는 <미르>와 함께 <더뮤지컬>도 올해 처음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뮤지컬이 연극 못지않게 각광을 받으면서 덩달아 뮤지컬 전문지인 <더뮤지컬>도 주목도가 높아진 셈이다. 이 잡지는 2000년에 창간했다. 영화 전문지로는 <씨네21>이 가히 독보적이다. 무려 80.0%의 지목률을 나타냈다. 같은 주간지로 후발 주자인 <무비위크>가 3년 연속 <씨네21>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차이는 아직 상당한 편이다. <씨네21>은 방송·연예 분야에서도 1위로 꼽혔다. 역시 지난해와 같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피플>이 이 분야에서 2위에 꼽혔고, <버라이어티>가 영화 분야에서 3위에 오른 것도 눈에 띈다. 그만큼 국내 영화·연예 전문지 시장이 열악하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 분야는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 <문학과 사회>가 지난해에 이어 나란히 ‘베스트 3’에 이름을 올렸다. 만화 분야에서는 변화가 많았다. 지난해에는 <팝툰> <만화 규장각> <챔프> 등이 올랐으나, 올해 조사에서는 <애니메이툰> <윙크> <우리만화> <코믹타운> 등이 새롭게 소개되고 있다. 출판 분야에서는 <기획회의>와 <출판저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올해는 <기획회의>가 <출판저널>을 제치고 1위를 탈환했다. 패션 분야에서는 <보그>와 <엘르>의 1, 2위 구도가 올해에도 재현되었다.

IT 분야의 <전자신문>, 과학기술 분야의 <과학동아>, 여성 분야의 <여성신문>, 게임 분야의 <경향게임스> 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선두를 지키며 자기 분야에서 가장 선호도 높은 전문지로서 위상을 굳히는 모습이다. 환경 분야에서는 <환경일보>와 <환경기술인>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반면 교육 분야에서는 <교수신문>이, 의료 분야에서는 <청년의사>가 올해 처음으로 기존 매체를 따라잡고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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