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 ‘최고 이사회’,‘지구촌 경영’ 묘안 찾을까
  • 김세원│편집위원 ()
  • 승인 2010.11.0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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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가 뜨거운 관심 속에 서울에서 열린다. 이 회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며 주요 의제는 무엇인지 종합 정리했다.

▲ G20 서울 정상회의가 6일 앞으로 다가온 11월 5일 광화문 사거리의 한 빌딩에 걸린 G20 대형 홍보 포스터. ⓒ시사저널 윤성호

오는 11월10일 전세계의 시선이 일제히 대한민국에 쏠린다. 10~11일 열리는 비즈니스 서밋(B20)에 참석하는 글로벌 기업 총수들을 시작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11~12일 서울에 집결한다. G20 서울 정상회의는 단순히 세계 주요국 정상들과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글로벌 기업 총수들의 방한(訪韓) 행사가 아니다. 국제 정치·경제의 역학 구도가 미국과 중국, 주요 2개국(G2)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반도는 미국판과 중국판이 부딪치는 최전선이자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이다. 불과 50년 만에 국제 사회의 원조에 의지했던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한국이 재부상 중인 보호무역주의와 환율 전쟁을 넘어 신흥국과 선진국 사이의 중재자이자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의 규칙 제정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G20 정상회의의 역사와 발자취, 의의와 서울 회의의 주요 의제 등을 정리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국제 경제의 안정화를 위해 선진국 간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에 미국·캐나다가 합류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960년 12월 결성되었지만 시급한 현안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75년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로 구성된 G5 정상회의가 처음으로 열렸고, 1976년 이탈리아와 캐나다가 추가되어 G7 체제가 정착되었다. G7은 1997년 정치 분야를 논의할 때, 소련 붕괴 이후 시장 경제로 전환한 러시아를 초청하기로 하면서 1998년부터 G8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1997년 아시아와 러시아에서 외환 위기가 잇따라 발생하자 국제 금융 시장의 안정을 위해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국제 협력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999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G7 국가와 BRICs(브릭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한국 등 20개국의 재무장관과 중앙 은행 총재들이 모여 G20 체제를 출범시켰다. G20 재무장관회의는 정례화되어 2002년까지는 금융 위기의 해결 방안과 예방책을 논의했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세계화·고령화 등 포괄적인 경제 현안을 다루었다. 그러다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빠른 시간 내에 전세계로 확산되자 G8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고 선진국과 주요 신흥국 간의 긴밀한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 G20 재무장관회의를 격상시킨 1차 G20 정상회의가 2008년 11월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게 되었다. G20은 처음에는 글로벌 경제 안정과 관련한 주요 이슈를 놓고 권고안을 채택하는 정도의 임시 회의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상회의로 격상되면서 재정 정책 공조에서부터 금융 규제까지 구속력을 갖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기구로 진화하고 있다.

안보도 다루는 다자 협의체로 발전 가능성

▲ G20 회의를 앞둔 서울 삼성동 코엑스 2호선 삼성역 안에 테러 방지를 위해 쓰레기통을 임시 철거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G7과 G20은 세계 경제에 대한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는 비공식 협의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G5에서 출발한 G7은 글로벌 경제의 발전과 함께 숙명적 한계를 보였다. 특히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 위기는 더 이상 G7에만 의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의 금융 시장이라는 사실은 G7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과 유럽이 고전하는 동안 한국·브라질·인도·중국 등의 신흥국은 위기에서 훨씬 빨리 벗어나 세계 경제를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해내고 있다. G20은 G7에 신흥 경제 12개국과 유럽연합(EU)을 더해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유엔, IMF(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ILO(국제노동기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WTO(세계무역기구), FSB(금융안정위원회) 등 7개 국제기구의 수장들이 모두 참석한다는 점에서 G20은 세계 경제 현안을 총괄하는 최고의 협의체로서 부족함이 없는 대표성을 갖고 있다.

G20은 월스트리트저널의 표현처럼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지구촌 기업의 특별 이사회’로 출범했으나 3차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스스로 규정했듯이 ‘세계 경제에 대한 최고위 협의체(Premier Forum)’로서 역할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G20을 상설 기구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프랑스는 지난 8월 G20사무국 설치를 제안했고, 한국이 동조하고 있다. 물론 G7이나 G8 회원국 중 일본 같은 나라들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고 있다. G20 정상회의가 지금처럼 선진국과 개도국 간 협의를 통한 경제 위기 타개 모델로서 제도화한다면 앞으로 경제 이슈뿐만 아니라 안보 현안까지 다루는 다자 협의체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G20 정상들을 비롯해 스페인, 네덜란드, 아세안(ASEAN), 유엔, IMF, 세계은행, OECD의 수장들이 참석한 워싱턴 1차 회의의 의제는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정책 공조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1차 회의에서는 재정·금융 등 거시 경제 정책 공조, 금융 시장의 원칙과 개혁 과제 확정, IMF의 역할 강화, 신흥 개도국의 지위 향상 등에 합의했다. 2009년 4월에 런던에서 열린 2차 회의에서는 2010년 말까지 총 5조 달러 규모의 재정 지출 확대, IMF를 통한 신흥 개도국에 대한 1.1조 달러 긴급 지원, 국제 금융 감시 강화를 위한 금융안정위원회(FSB) 설립, 예방적 대출 제도(FCL) 신설, 조기 경보 기능 강화 등 IMF와 세계은행의 조직 개편에 합의했다.

2009년 9월 피츠버그에서 열린 3차 회의에서는 G20을 세계 경제 협력을 위한 최상위 협의체로 지정하고 연례화하기로 결정했다. 공식적으로 G20이 G8을 대체하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 협의체로 격상한 것이다. 또 IMF의 지분 5%와 세계은행의 투표권 3%를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고 전세계의 지속 가능 균형 성장을 위한 장기 정책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4차 정상회의에서는 2013년까지 선진국의 재정 적자를 절반으로 감축하고 구체적인 IMF 지분 개혁 방안, 금융 규제 개혁 방안을 서울 회의 전까지 마련하며 서울 회의에서는 이와 함께 글로벌 금융 안전망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G20 정상회의는 1~3차 회의를 통해 금융 위기 극복과 관련한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세계 경제 질서 재편의 새로운 중심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G20 초창기에는 국제 공조를 통해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주로 논의했으나 최근에는 금융 규제 강화, 글로벌 금융 안전망 등 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글로벌 거버넌스(통치 구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번 회의의 의제는 균형 성장(전세계의 균형 성장을 위한 각국별 정책 대안 마련), 금융 규제 개혁(글로벌 금융 규제 강화 방안 확정), IMF 개혁(IMF 지분 개도국 이전 방안 확정),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 개발도상국 개발 지원 등 다섯 개 핵심 의제와 교섭 대표 회의를 통해 올라온 무역 및 투자, 에너지·반부패 관련 2개 의제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한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G20 의제(코리아 이니셔티브)는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과 개발도상국 개발 지원 확대 등 두 가지이다.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과 관련해서는 펀더멘털(경제 기초 체력)이 우수한 국가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는 경우 지원해주는 탄력 대출 제도(FCL) 개선이 논의될 예정이다. 융자 한도를 폐지하거나 인출 가능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FCL 기준에는 미달하지만 건전한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국가가 예방적 유동성을 희망할 때 지원하는 예방 대출 제도(PCL) 신설도 심도 있게 논의될 전망이다. 개발 이슈는 한국 정부가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가교 역할을 천명했듯이 한국의 금융 위기 극복 경험과 단시일 내에 최빈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진입한 성공 사례 이미지에 가장 부합되는 의제라고 할 수 있다. 개도국의 빈곤 해소 및 경제 발전을 통해 국가 간 개발 격차를 완화함으로써 세계 경제 불균형 해소에 도움을 주되 연구·개발(R&D) 투자 증대, 교육 훈련의 개선, 금융 접근성 제고 등 단순한 재정 원조보다는 개도국의 경제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월1일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환율,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 IMF 등 국제 금융 기구 개혁, 개발도상국의 개발이 서울 회의의 4대 의제라고 밝혔다.


ⓒ시사저널 이종현
“G20 정상회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세계 경제를 관리하는 새로운 국제 협력 프로세스이다. G20 서울 회의는 대외적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G20 제도화의 초석을 다졌으며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한 정상회의로 평가될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 대외 네트워크 강화, 글로벌 인재 양성, 국제기구 발언권 확대 등의 실리도 챙길 수 있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핵심 의제 설정과 논의에 깊숙이 관여해 온 신현송 대통령 국제경제보좌관은 D데이를 열흘 앞둔 11월3일 특강을 하기 위해 고려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G2(미국과 중국)를 G20이라는 다자간 협력체의 틀로 끌고 들어온 것이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업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정치경제철학부를 수석 입학·졸업한 뒤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 교수와 런던 정경대(LSE) 교수를 거쳐 프린스턴 대학 교수인 신보좌관은 국제 금융 통화 정책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2006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 “서브프라임이 세계 경제에 대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라고 했던 그의 예측이 2년 뒤 그대로 들어맞자 전세계에서 초빙 1순위로 꼽히는 경제학자가 되었다.

경주 G20 재무장관·중앙 은행 총재 회의에서 시장 결정적인 환율 제도를 이행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어떤 경우에도 각국 정부의 환율 개입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시장 결정적이라는 것은 시장의 펀더멘털을 반영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시장에서 환율이 무질서하게 움직인다면 정부가 들어가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급격한 자본의 유·출입을 막기 위해 은행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자본의 유·출입 규제가 왜 필요한가?

선진국들이 금융 위기 이후 확장적 통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렇게 찍어낸 돈들은 신흥국으로 흘러들어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자본 규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시장 결정적 환율 제도에 합의했지만 경제를 무방비 상태로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후에 외환 시장에 개입하는 대신 사전에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새로 제기된 의제로는 어떤 것이 있나?

코리아 이니셔티브라고 할 수 있는 국제 금융 안전망의 확보와 개발 이슈, B20(비즈니스 20) 정상회의이다. 금융 안전망 확보와 관련해 신흥국의 자본 이동 변동을 완화해 외화 유동성 공급 매커니즘을 제도화하는 방안이 논의된다. 또, 개발 이슈로는 개도국의 빈곤 해소 및 경제 발전을 통해 각국 간 개발 격차를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세계 경제의 재균형화에 도움이 되는 여러 방안들이 협의될 것이다. 이 밖에 정부 주도의 G20에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는 차원에서 처음으로 B20 정상회의가 열려 한국의 대표 기업인 15명을 포함해 1백20여 명의 글로벌 기업 CEO들이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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