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못 잡는 ‘안보 관제탑’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12.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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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C 대신한 안보관계장관회의, 컨트롤타워 역할 미흡…천안함 이후 신설된 안보특보도 이름값 못해

 

▲ 지난 11월23일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상황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11월23일 오후 3시30분. 이명박 대통령은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다. 청와대 지하 벙커에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 현인택 통일부장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속속 모여들었다. 맹형규 행정안전부장관,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도 함께했다. 김태영 당시 국방부장관은 국회 일정 때문에 조금 늦게 합류했다.

안보관계장관회의는 지난 3월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도 긴급 소집된 바 있다. 이처럼 현재 이명박 정부에서 안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안보관계장관회의이다. 물론 헌법에 명시된 안보·통일·외교와 관련된 국가 최고 의결기구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따로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NSC는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당초 유명무실했던 이 기구를 상설화한 것이 지난 김대중 정부였고, 그 기능을 더욱 강화한 것이 노무현 정부였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 NSC 사무처를 폐지했다. NSC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지고 비대해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노무현 정부 때 NSC 행정관을 지냈던 김종대 <D&D포커스> 편집장은 “NSC 무력화는 사실상 현 정부의 ‘과거 10년 정부 흔적 지우기’ 성격이 짙었다”라고 꼬집었다.

현 정부 들어 NSC의 기능을 안보관계장관회의가 대신하다 보니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실제 연평도 포격 사건이 벌어지던 당일 그 긴박한 상황에서 국회에 나와 있던 김황식 국무총리가 청와대로 들어가려 하자 일부 야당 의원들은 “총리는 안보관계장관회의 멤버도 아니지 않느냐”라면서 국회에 남도록 하는 등 승강이가 연출되기도 했다. 총리는 헌법상에 명시된 NSC의 6인 멤버 가운데 한 명이다.

그렇다고 현 정부 들어서 NSC 회의가 전혀 열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 천안함 침몰 사건 등으로 모두 네 차례 소집되었다. 이번에도 청와대는 NSC 소집을 고려했으나, 하지는 않았다. 지난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현 정부의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질타가 보수와 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거세게 일어나자, 이대통령은 한때 NSC 사무처 부활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역시 하지 않았다. 대신에 새롭게 신설한 것이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와 안보특보 그리고 국가위기관리센터 등이었다.

이들의 등장은 이명박 정부의 안보 컨트롤타워 지형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청와대의 안보 분야 참모 기능이 외교안보수석과 안보특보로 이원화되었다. 기존의 외교안보수석이 외교 분야에만 전문성을 두다 보니, 안보·국방 분야에서 취약점을 노출한다는 군 출신 인사들의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이대통령은 지난 5월 신임 안보특보에 4성 장군 출신인 이희원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임명했다. 장관급으로 발표된 이특보는 처음에 크게 주목받았다. 현 정부의 실세 인맥으로 평가받는 ‘경북 상주’ 출신이라는 점과 함께,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보다 육사 2년 선배라는 점에서 ‘장관 위의 실세 장관’이 아니냐는 관측도 낳았다. 안보 분야를 사실상 신임 안보특보가 총괄하게 된다면, 기존의 외교안보수석은 그 명칭을 외교수석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특보의 지난 7개월간 행보는 기대 밖이라고 할 만큼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당초 외교안보수석 산하의 네 개 비서관 중 국방비서관을 안보특보 산하에 둘 수도 있다는 계획도 없던 것으로 되는 등 안보특보는 국가위기관리센터만 관할하는 명목상의 자리에 머물렀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안보 라인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얼마 전 이특보로부터 만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는 이것저것 자신이 할 역할을 찾는 듯했다. 아직도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느낌이었다”라고 전했다. 이특보와 육사 동기인 한 예비역 장성은 최근 “말만 장관급 특보이지 실제 권한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안다. 일종의 명예직인 셈이다. 이번 동기 모임 때 만나면 ‘뭐 하러 거기 있느냐’라고 한마디 해줄 참이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김관진 장관에게 힘 실릴 수밖에 없는 구조

안보특보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다 보니 그 산하 기구인 국가위기관리센터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기존의 위기상황센터가 위기관리센터로 확대·발전될 때만 해도 “위기관리센터가 사실상의 NSC 사무처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보고 라인 역시 과거 위기관리센터 시절 외교안보수석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되던 2단계 체계에서, 현재는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하는 직보 체계로 바뀌었다. 이대통령은 센터장을 민간인 출신이 아닌 해군 준장 출신으로 임명했다. 실제 이번 연평도 포격 때 이대통령은 제일 먼저 김진형 센터장으로부터 현장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안보관계장관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초기 ‘확전’ 논란이 빚어진 것처럼 청와대의 초기 대응에 혼선이 빚어지면서 위기관리센터의 역할에 의구심을 표하는 시선이 많아지고 있다.

한시적 기구이기는 하지만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과 국방선진화위원회 위원장을 동시에 겸하고 있는 이상우 의장 역시 처음에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것에 비해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보수 논객의 거두로 통하는 이의장은 특히 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이른바 ‘MB 네오콘’의 대부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의장이 지난 1993년 만들었고 현재도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신아시아연구소에는, 현인택 통일부장관과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등이 모두 회원으로 있었다.

이의장은 지난 9월 군 복무 기간을 24개월로 다시 환원하는 방안을 비롯한 국방 개혁안을 이대통령에게 제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군 복무 기간 환원안 등이 이대통령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그가 주도하던 ‘국방 개혁’이 주춤하기도 했다. 여권 일각에서도 이의장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강경한 쪽에 서 있다”라며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현 정부의 세 번째 외교안보수석이 된 천영우 수석은 역대 외교안보수석들이 걸어왔던 것처럼 안보·국방 분야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천수석 역시 안보 분야에는 취약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실제 이대통령도 천안함 사태를 겪으면서, 안보·국방 분야까지 아우를 수 있는 외교안보수석을 새로 인선하고자 고심했으나,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이런 분위기로 볼 때 현 정부의 안보 분야를 주도하는 라인 가운데 국방부장관에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분간 김관진 신임 장관의 목소리가 상당히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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