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가’ 있고 ‘재미’까지 더해야 읽힌다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0.12.27 15: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0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 그리고 출판의 앞날을 짚어보게 하는 변화들

 

ⓒ시사저널 박은숙

이번 연말연시는 21세기 첫 10년을 보내고 또 다른 10년을 맞이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하겠다. 10년 동안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종 토건 사업으로 강산까지 변했고,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국민의 일상 구석구석에까지 변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출판계 또한 불황과 변화무쌍한 독자들의 독서 경향에 따라 해마다 다른 출판 흐름을 보여왔다. 특히 2010년 한 해를 결산한 각 서점들의 판매 집계를 보면 그 전과 확연히 다른 변화상을 엿볼 수 있다.

공정한 사회 바라는 마음, 독서에도 영향

교보문고는 종합 1위 도서에 <정의란 무엇인가>가 올랐다고 전했다. 인문서가 연간 종합 1위에 오른 것은 교보문고 개점 이래 처음이다.

지난 2월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가 화제를 일으켰는데, 이는 일시적인 ‘사건’일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그런데 5월에 나온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2주 동안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해 인문서로서는 ‘기현상’을 보였다. 신자유주의 경제를 비판하며 경제 정의를 논한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출간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1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이 역시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이에 대해 출판계 종사자들은 2010년 한 해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국정 감사 등 도덕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정치 사안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독자들이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서 도서 내용을 알린 영향이 컸다. 특히 6월에 있었던 지방선거는 역대 지방선거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국민 투표율을 보였다. 사회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볼 수 있다. 위정자들의 부도덕한 사례와 연예인의 거짓말 사건 등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에 대한 바람이 책에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책들의 인기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출판계 정서를 한 방에 무너뜨리는 계기도 되었다. ‘대박’이란 것을 꿈꾸지도 않았던 분야에서 60만 부 이상 팔린 것도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몇 년 사이 ‘올해의 책’ 10권 중에 인문서를 1권도 못 올리는 불명예까지 씻는 ‘경사’였다. 독자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와 지식에 목말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꼽혔다. 출판계가 어떤 분야는 되고 안 되고를 떠나, 독자의 오감을 어떤 콘텐츠로 어떻게 자극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독자들의 선택은 여전히 ‘스토리’

그렇다면 독자들은 어떤 책을 선호하고, 읽기를 원했을까? 인터넷서점 예스24와 인터파크가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최고 인기 도서 선정에 차이를 보였으나 상위권에 포진한 책들은 엇비슷했다. 인기 도서들을 관통하는 주요 특징은 지식 충전이나 자기 계발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예스24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올해의 책으로 <정의란 무엇인가>가 선정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글과 주변 사람들이 들려주는 일화들을 정리한 <운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라다이스>,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팔다리 없이 태어난 호주 청년 닉 부이치치가 온갖 난관과 장애를 딛고 일어선 경험들을 담은 <닉 부이치치의 허그>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인터파크에서는 네티즌이 꼽은 ‘최고의 책’으로 조정래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허수아비 춤>이 선정되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전작들과 달리 이 책에서 작가는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 비리와 천민자본주의를 신랄하게 파헤쳐 눈길을 끌었다. 조정래 작가뿐 아니라 올해에는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강남몽>,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 이외수 작가의 에세이 <아불류 시불류> 등 ‘왕년의 대작가’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격동의 시대 살다 간 인물들의 전기 출간 붐

ⓒ시사저널 윤성호

지난 3월 입적한 법정 스님이 자신의 저서를 절판하라는 뜻을 유언으로 남긴 것도 출판계에 큰 이슈가 되었다. 스님은 첫 번째 유언에서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향기롭게’에 줘,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토록 해달라. 그러나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라고 썼다.

그러자 법정 스님이 글을 쓴 책들은 한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주변인들이 스님과의 만남을 술회한 책 등 관련 도서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신념을 읽을 수 있는 대표작인 <무소유>는 품절된 상태에서 중고 도서가 경매에 나와 호가가 수십억 원까지 치솟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2010년은 ‘경술국치 100주년’ ‘광복 65주년’ ‘한국전쟁 60주년’ 등 숫자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기념일이 많아서인지,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인물들을 조명한 책들도 쏟아져 나왔다. 안중근, 김좌진, 이준, 서재필, 김구, 이승만, 프란체스카, 박정희, 조봉암 등 알 만한 인물들이 책 제목에 떠올랐다. 고인이 된 뒤 나온 두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도 눈길을 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 역정을 담은 <김대중 자서전>은 출간되자마자 초판 2만 부가 매진되기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도 1주기를 맞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지난 12월5일 세상을 떠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의 저서도 판매량이 급증했으며, <리영희 평전> 등 전기물도 잇따라 나와 ‘리영희 선생’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랬다.

변화를 읽어야 10년을 먹고 산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2010년 출판 시장을 읽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정하면서 ‘변화’를 첫손에 꼽았다. 다섯 가지 키워드는 ‘변화·정의·각성·행복·법정’으로 다른 서점들의 경우와 비슷했다. 변화 중에서도 전자책과 스마트폰, SNS의 급속한 확산을 지적했고, 변화를 읽으려는 독자들의 요구와 관련한 도서들의 출간도 붐을 이루었다. 스마트폰 가입자가 늘어남에 따라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가이드북도 잇따라 출간되었는데, 최근에는 <앱 경영의 시대가 온다>라는 책까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등장으로 시작된 스마트 빅뱅은 개인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 나아가 정부 및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의 혁신을 가져왔다. 따라서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앱 경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인 것이다’라고 미래를 내다보았다. 마케팅력에 한계가 있는 출판사와 작가들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책을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책 출판과 관련해서도 출판계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이다. 지난해부터 인터파크와 교보문고 등에서 전자책 단말기를 자체적으로 보급했지만 독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전자책 단말기의 실패로 전자 출판에 대해 아직은 아니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었다. 미국에서 아이패드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2010년 말 갤럭시탭과 아이패드 등 태블릿PC가 예상을 뒤엎고 국내에 성공적으로 보급되면서 국내 전자책 시장이 새해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국내 출판사들의 더딘 ‘디지털화’로 콘텐츠가 많이 부족했는데, 내년부터 활성화되리라는 것이다. 물론 전자책 시장에도 불법 복제 방지, 도서 정가제 확립, 저작권 문제, 출판사와 이동통신사와의 거래 조건 등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많은데, 이 또한 해법을 찾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큰 변화가 있을지는, 태블릿PC로 무장한 독자들이 과연 전자책을 얼마나 구매할지에 달렸다. ‘2010년 연간 교보문고 전자책 판매 현황’에 따르면 전년 대비 1백75%의 판매 신장률을 보였고, 전자책 고객 누적 수도 78만여 명에서 1백18만여 명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전자책 분야별 점유율에서 장르 소설이 31.5%로 큰 파이를 차지하고, 베스트 콘텐츠에 쏠리는 등 문제도 많아 보인다. 특정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영세 출판사들은 전자책 출판에 적극 뛰어들기보다 당분간 관망하면서 준비한다는 입장이다.

독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결국 ‘재미’

출판 종사자들은 종이 책이냐 전자 책이냐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전자 책이 종이 책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콘텐츠가 없으면 종이 책이든 전자 책이든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보문고가 지난 2000년부터 지난 11년간 집계한 베스트셀러의 면면을 훑어보면, 소설·에세이·자기 계발 분야에서 픽션 또는 논픽션의 형태로 저자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풀어가듯 저술한 책들이 인기를 끌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까지 출판계의 강력한 축을 이루었던 자기 계발서에서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마시멜로 이야기> 등 스토리텔링 기법을 살린 형태의 책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2007년과 2008년, 2년 동안 <시크릿>이 종합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분야별 11년 누적 베스트셀러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모두 지금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였다. 이는 독자의 요구가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시사한다.

출판에도 양극화, ‘참고서’만 여전히 호황

출판계 불황이 더욱 심화된 한 해였다. 매년 상승세를 이어오던 신간 발행 종수가 2010년에 감소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가 국립중앙도서관 및 국회도서관 납본을 대행하면서,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수집한 도서를 기준으로 출판 통계를 집계한 결과에는 그 감소세가 확연했다. 2010년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는 총 3만2천2백73종(만화 포함)으로 지난해 3만5천40종에 비해 7.9% 감소했다. 분야별로는 만화(29.0%), 총류(19.8%), 종교(17.7%), 어학(15.3%), 역사(14.4%), 예술(14.3%), 기술과학(11.1%) 등이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사회과학, 문학, 순수과학, 아동 등도 10%가 안 되지만 감소세를 보였다.

출협 관계자는 “신간 발행 종수가 감소한 것은,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아동 인구까지 감소했고, 베스트셀러가 일부 유명 저자에 편중되고, 해외 도서의 높은 선인세 부담 등이 더해져 출판사들이 소극적인 출판을 하게 만든 상황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게다가 올해 3월의 천안함 사건 등 국가적인 사건이 터지고, 6월 지방선거, 월드컵 열기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라고 지적했다.

신간 발행 종수에서 유일하게 증가세를 보인 분야는 ‘학습참고서’였다. 학습참고서는 9월까지 2천4백34종이 발행되어 지난해 1천70종에 비해 무려 127.5%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에 대해 출협은 올해 몇몇 대형 출판사가 처음으로 출협을 통해 납본을 하면서 일시적으로 증가한 부분도 크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입 수능시험 제도가 바뀌면서 인터넷 강의와 관련한 교재 출판이 증가하고, 2010년에 적용된 새 교육 과정에 따라 개정된 교과서와 관련된 부교재 개발 증가 또한 원인으로 분석했다.

총 발행 종수의 45%를 차지하는 상위 100개 출판사의 신간 발행 종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 감소했다. 최근 3년간 단행본 최고의 발행 종수를 기록했던 한 대형 출판사도 12% 이상 신간 출시를 줄였다고 전했다.

2000년 이후 매년 지속적인 증가를 보여온 외국 도서의 번역 출판 또한 지난해부터 감소세로 돌아섰고, 올해는 전년 대비 12.4%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판 유통에서도 2010년은 양극화 심화라는 아픔을 뼈저리게 느낀 해가 아니었을까.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자신의 블로그 등에 ‘출판 유통, 공존의 원칙이 부활돼야’라는 제목으로 중소 서점들의 아픔을 대변했다. 한소장은 인터넷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알리딘 등 ‘빅4’라 불리는 온라인 서점들이 실제적으로 80%까지 시장을 점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 서점인 동보서적과 문우당서점의 폐업 소식이 들려온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대대적인 할인 공세로 중소 서점은 설 자리를 잃었음을 말해주는 씁쓸한 소식인 것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해마다 ‘서점 포럼’을 개최하는 등 동네 서점의 살길을 모색했지만, 현실에서는 동네 서점이 마지막 자구책으로 담배를 팔아 수익을 벌충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2009년 말 국내 서점 수는 2천8백46개로 집계되었다. 2007년에 5천여 개였던 것으로 보면, 반으로 준 셈이다. 올해 1천8백여 개만 남았다는 비공식 집계도 들려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