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는 부귀에서 나오니 먼저 ‘이익’에 눈 떠라
  • 소준섭┃국제관계학 박사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1.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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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도 ‘무관의 제왕’이 될 수 있다는 ‘소봉론’

“혁대의 단추를 훔친 자는 처형을 당하지만, 국가의 권력을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제후의 집에서 저절로 인의(仁義)가 생긴다.”

<한서(漢書)>의 저자 반고(班固)는 <한서·사마천전>에서 사마천이 ‘세리(勢利)를 숭앙하고 인의(仁義)를 경시하며 빈천(貧賤)을 부끄럽게 여긴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사마천이 ‘천하 사람들이 즐겁게 오고 가는 것은 모두 이익 때문이며, 천하 사람들이 어지럽게 오고 가는 것도 모두 이익 때문이다(天下熙熙 皆爲利來, 天下壤壤, 皆爲利往)’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정작 세리(勢利)를 숭앙하고 빈천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천하의 사람들(天下人)’이었던 것이지 결코 사마천 자신이 아니었다. 사마천은 다만 세리(勢利)를 숭앙하고 빈천을 부끄럽게 여기는 그 세태를 적확하게 직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화식열전>을 기술한 이유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태사공자서>에서 “벼슬이 없는 일반 백성들이 국가의 법에 저촉되지 않고 또 백성들의 생활에 해를 주지 않았으며, 매매는 시기에 따라 결정하였다. 이렇게 그의 재부는 증가하였고, 총명한 사람 역시 취할 바가 있다고 여겼다. 이에 <화식열전(貨殖列傳)> 제69를 짓는다”라고 답하고 있다.

소봉(素封)이란 무엇인가

사마천에게 진정한 화식가는 마땅히 평민 출신이어야 했다. 여기에서 그는 ‘소봉(素封)’이라는 개념을 창조해낸다. 사마천은 이 ‘소봉’에 대해 “지금 어떤 사람들은 관직봉록 혹은 작위와 봉지(封地) 수입이 없으면서도 그것을 지닌 사람들과 더불어 비견될 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경우를 이름하여 ‘소봉(素封)’이라고 한다”라고 규정한다. 재산과 세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왕자와 같은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을 사마천은 ‘소봉(素封)’이라고 명명했다. 즉, 무관의 제왕이라는 의미이다. 

진한(秦漢) 시대 대상인은 왕자(王者)와 같은 즐거움을 누렸을 뿐 아니라 심지어 황제로부터 칭송까지 받았다. 이를테면 목축으로 부를 쌓은 오지과라는 인물에 대해서 사마천은 ‘진시황은 명령을 내려 오지과에게 제후와 동등한 대우를 하도록 하여 봄가을 두 번 귀족들과 함께 궁궐에 들어와 황제를 알현할 수 있도록 하였다’라고 기록했다. 또 파(巴) 지방에 사는 청(淸)이라는 과부는 그 조상이 단사(丹沙)가 생산되는 광산을 발견해 몇 대에 걸쳐 그 이익을 독점해 재산이 너무 많아 계산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진시황은 그를 절조가 있는 정부(貞婦)로 여겨 그를 존경하고 빈객(賓客)으로 대우했으며, 그녀를 위해 여회청대(女懷淸臺)를 짓도록 했다.

이 지점에서 사마천은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오지과는 변방 시골 사람으로서 목장 주인에 불과하였고, 청(淸)은 궁벽한 시골의 과부였지만 도리어 천자의 예우를 받아 이름을 천하에 떨쳤으니, 이는 실로 이들의 부유함에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또 촉의 탁씨와 정정은 본래 조상이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할 때 동방에서 이주된 포로로서 야철업을 경영해 부를 쌓아 노복이 1천명에 이르러, 전답과 연못, 사냥의 즐거움이 군주와도 같았다. 남양 공의 완씨는 야철업으로 부를 쌓아 재산이 수천 금에 이르렀다. 그의 수레는 커다란 대열을 지었고 제후들과 교류해 ‘유한공자’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반면에 한나라 초기의 수많은 제후의 경우, 어떤 사람들은 쇠락해 우마차를 타야 했다. 오초칠국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장안에 거주하는 많은 열후에게 군자금을 징발하자 그들은 하는 수 없이 고리대업자인 무염씨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 전국 각지의 부자 상인들은 큰 부자는 군(郡)을 좌지우지했고, 중등 부자는 현(縣)을 좌지우지했으며, 작은 부자는 향리를 좌지우지해 그 수를 이루 셀 수 없었다.

사마천은 이렇듯 생동하는 역사와 현실을 근거로 하여 ‘소봉론’이라는 관점을 제기했다. 사마천은 “천금을 지닌 집안은 곧 그 도시의 봉군(封君)과 비길 수 있으며, 만금(萬金)을 지닌 부자는 곧 그 왕과 같은 정도로 향유할 수 있다. 이들이 곧 이른바 소봉(素封)이 아닌가? 사정이 그렇지 아니한가?”라고 말한다. “만금(萬金)을 지닌 부자는 곧 그 왕과 같은 정도로 향유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소봉론’의 가장 간략한 개괄이다. 지금 시대에 돌아보아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누구든 부를 쌓아 왕자(王者)가 될 수 있다

 ‘소봉론’은 두 가지의 내용을 지니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만금(萬金)을 지닌 부자는 곧 그 왕과 같은 정도로 향유할 수 있다’라는 내용 외에 다른 하나는 ‘사람이 부유해지면 인의가 저절로 따라온다’라는 것이다. 사마천의 이 명제는 두 가지 인식을 의미한다. 하나는 ‘예의는 가짐에서 비롯되고, 없음에서 폐절된다’라는 것으로서 인의 도덕이 경제적 기초 위에 만들어진다는 인식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배 계급의 도덕이란 단지 점유하는 바의 재부와 권력의 부속물이라는 인식이다.

 <사기·유협열전>에서 사마천은 ‘인의(仁義)가 무엇인지 누가 아는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곧 도덕을 지닌 사람이다’라는 속담을 인용하고 있다. 돈과 권세만 있으면 곧 인의가 존재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마천은 이 논리를 더 이어간다. “혁대의 단추를 훔친 자는 처형을 당하지만, 국가의 권력을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제후의 집에서 저절로 인의(仁義)가 생긴다.”

사마천의 이 말은 위정자들이 주장하는 허위적인 도덕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촌철살인의 경구이다. 여기에서 사마천은 고관대작과 인의를 떠벌이는 거짓 군자들의 얼굴에 씌워진 인의 도덕의 가면을 벗겨내고,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곧 도덕을 지닌 사람이다”라는 세간의 시각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사마천의 ‘소봉론’은 부귀와 예의가 지니는 본질을 꿰뚫으면서 황음(荒淫)하고 후안무치하며 ‘이익을 입에 올리지 않는’ 지배층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백성을 속이면서 백성들에게 오직 ‘의(義)’만을 말하도록 하고 ‘이(利)’는 말하지 말도록 강제한다.

 이렇게 하여 사마천은 ‘소봉론’을 통해 사람마다 돈을 벌고 부를 쌓도록 고취하면서 ‘제후의 집에 저절로 인의가 생긴다’라는 불합리한 현실을 바꿔낸다. 이러한 ‘전투성’은 귀천(貴賤)이라는 사회적 등급의 구분이 타고난 불변의 것이 결코 아니며, 반대로 모든 사람이 자기의 총명과 재능에 의해 부를 쌓아 왕자(王者)와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변화의 관점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리하여 사마천의 ‘소봉론’은 진나라 말기 전국적인 반란의 불씨를 지폈던 진승·오광의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는가!”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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