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을 무기로 삼는 미친 전쟁
  • 조홍래│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1.2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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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등 내전 지역에서 잔혹한 사례 드러나…최악의 경우 인종 청소의 수단으로 사용

 

▲ 지난해 9월 아프리카 콩고의 한 여성이 유엔군 부대 인근에 있었는데도 무장한 남성들에게 강간당했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쟁에서의 강간은 전쟁 자체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16세기 전 로마가 망했을 때 당시의 최고 성직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강간을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적인 악’이라고 표현했다. 강간은 사실상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1945년 독일을 점령한 소련군의 만행을 책으로 쓴 역사학자 앤서니 비보르는 강간은 세월이 흐르면서 적을 모욕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전략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스페인 내전 당시 모로코군이 저지른 강간이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1937년 중·일 전쟁에서는  2만건의 강간이 있었고, 2차 대전 중 독일에 소련군이 진주했을 때는 2만 내지 2백만 명이 강간당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의 전쟁에서는 20만명, 보스니아 전쟁과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각각 2만명, 르완다 대학살에서는 50만명이 강간당했다. 강간에 대한 보도가 많아지면서 이 반인륜적 범죄의 참상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강간이 전쟁 무기가 되어 조직적으로 자행된 대표적인 사례는 보스니아 전쟁이다. 또한 강간을 처벌하기 시작한 것도 보스니아 전쟁이 처음이다. 2008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강간이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강간범 처벌과 피해자 치료를 규정한 제네바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일부 선진국에서만 지켜질 뿐 무정부 상태의 내란 지역에서는 있으나마나한 실정이다.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 전쟁하는 것이 문제

콩고의 예를 보면 강간이 얼마나 잔혹하게 이루어지고 그 실태를 파악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실감할 수 있다. 이 나라의 동부 지역은 1994년의 르완다 학살 이후 무법천지가 되었다. 인도주의 단체인 국제구호위원회(IRC)는 2008년 보고서에서 5백40만명이 죽은 이 전쟁에서 숫자마저 파악할 수 없는 강간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강간은 이래저래 전쟁의 가장 추악한 단면으로 정착했다. 강간 피해자의 연령은 3세에서 80세까지로 나이와 무관하다. 강간 장소는 주로 전쟁 지역이지만 집, 들판, 숲 등도 포함되었다. 강간은 또한 남편과 아이 앞에서도 자행되었고 60%는 윤간이었다. 심지어 아들에게 어머니를 강간하도록 강요하고 거부하면 죽인 사례도 있다. 

일부 전쟁에서는 쌍방이 강간에 가담했으나 한쪽에서만 강간을 자행한 경우도 있다. 강간의 역사는 길지만 20세기 이전의 강간 기록은 거의 없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대러 케이 교수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진행된 28건의 내전에서 발생한 강간은 동유럽에서 일어난 아홉 건의 내전으로 인한 강간 건수와 맞먹는다. 강간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증거이다. 그렇다고 강간을 아프리카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강간 없는 내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의 무법성과 면책성이 강간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

지금 도처에서 진행되는 일부 전쟁은 정규군보다는 기강이 풀어진 민병대에 의해 진행된다. 이들은 구획이 정해진 전선이 아니라 민간 거주 지역에서 전쟁을 한다. 그 결과 가정이 전선으로 변하고 거기 살던 여성들이 쉽게 강간 대상이 된다. 강간은 전쟁을 하지 않고도 적과 적국의 민간인들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강간 위협이 있으면 민간인들은 집과 땅을 버리고 도주한다. 콩고 동부의 반군은 4일 동안에 2백40명을 강간했다. 겁을 먹은 주민들은 금과 주석을 상납하면서 강간에 미친 병사들을 달랬다. 최악의 경우 강간은 인종 청소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보스니아, 다르푸르, 르완다 내전에서 강간과 학살은 인종 청소의 전술로 진화했다. 보스니아 전쟁에서는 쌍방이 모두 강간을 저질렀으나 유독 보스니아 무슬림들이 세르비아군에 의해 수많은 강간을 당했다. 무슬림 여성들은 ‘강간 캠프’에 수용되어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강간당했다. 이 캠프의 참혹한 진상은 헤이그에서 열린 전 유고슬라비아 전범들에 대한 재판에서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글 또는 익명의 진술을 통해 증거를 제공했다. 세르비아 군인들은 특정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또는 세르비아계 아이를 임신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강간을 했다.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서는 강간을 민간인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조직적 강간이 진행되면 해당 지역 민간인들이 거주지에서 도주하기 때문에 이들이 살던 땅은 자연스럽게 장악된다. ‘국경 없는 의사들’은 2004년부터 2005년 사이에 다르푸르에서 5백명의 강간 피해자를 치료했다. 그러나 강간 사례는 거의 보도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르완다 대학살에서는 강간이 ‘교전규칙’이 되어 강간을 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 일도 벌어졌다. 민병대의 최고 사령관은 강간을 묵시적으로 승인했고, 하급 지휘관들은 강간을 독려하기도 했다. 일부 민병대들은 강간을 통해 상호 간의 유대를 구축했다. 시에라레온 내전에 강제 차출된 병사들은 강간과 집단 윤간을 통해 내부 결속을 도모했다.

강간 희생자 구원할 전망도 밝지 않아

▲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국제 범죄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콩고의 반군 지도자 출신 장 피에르 벰바 전 콩고 부통령(가운데). ⓒAP연합

그러나 강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후유증은 참담하다. 강간으로 인한 극도의 수치심과 절망감으로 가정은 산산조각이 났다. 여성의 정절을 큰 미덕으로 여기는 방글라데시의 경우 강간은 피해자 개인은 물론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의 치욕으로 간주되었다. 강간 피해자는 보호받기는커녕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 정부는 이를 보다 못해 강간 피해 여성들을 ‘여장부’라고 칭송하고 보호와 포용을 호소했다. 일부 남성들은 이에 동의했으나 일부는 정부의 보상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콩고의 남편들은 겉으로는 강간 후유증을 치유하자면서 피해자가 자신의 아내이거나 딸일 경우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든 전쟁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강간에도 엘살바도르와 스리랑카의 반군들은 이례적으로 강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오히려 정부군에 의한 강간이 있었다. 스리랑카의 타밀 호랑이 반군은 주민들의 동조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강간을 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휘관의 엄격한 통제도 강간을 막는 데 일조했다. 

강간 희생자들을 구원할 전망은 밝지 않다. 제네바 협정은 전쟁 중의 강간을 엄격히 금하고 있으나 강간 범죄자들은 다른 전범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다만 발칸 반도의 전범 재판은 강간을 인륜 범죄로 단죄함으로써 희망적인 선례를 남겼다. 그러나 콩고 검찰의 강간범 처벌은 지지부진해 겨우 20건을 기소했다. 이를 본 미국 변호사협회는 지난 2년간 1백45건의 강간 사건을 처벌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콩고에서는 투옥된 강간범이 도주하거나 교도소 관리들에게 돈을 주고 석방되는 사례도 많다.

콩고는 이래저래 ‘강간의 수도’라는 오명을 썼다. 이 나라의 한 여성은 1994년 일곱 명의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남성들은 여인의 손과 발을 두 나무 사이에 결박하고 반복적으로 윤간했다. 여인이 실신하자 이들은 여인의 질과 항문을 막대기로 쑤셔 파열시켰다. 16년간 오줌을 흘리며 살던 여인은 이제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정의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콩고 정부와 유엔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정부는 유엔의 구호 노력이 말뿐이라고 비난하고, 유엔은 정부의 자체 노력을 강조한다. 최근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강간을 했다는 증언이 나와 유엔의 체면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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