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이제 술술 넘어가려나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1.01.2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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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17일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주최로 열린 ‘제3회 전통주와 전통음식의 만남’에서 사람들이 막걸리 빚는 과정을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막걸리 열풍이 전통주 부활로 이어지고 있다. 전통주에는 탁주인 막걸리 외에도 청주·약주, 증류식 소주, 과실주가 포함된다. 중견 기업인 국순당이 2년 전, ‘우리 술 복원 프로젝트’로 시동을 걸었다면, 최근 대기업인 롯데주류가 ‘우리 술 발전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술 시장을 독점하고 획일적으로 만든 장본인이 전통주 시장까지 넘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그러나 전통주 시장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인 만큼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대기업의 행보를 지켜보자는 시각이 대세이다.

▲ 롯데주류는 지난 1월12일 ‘우리 술 발전 프로젝트’ 일환으로 우리 술 품평회를 개최했다 ⓒ롯데주류

롯데주류는 제조법을 다양화하는 측면에서 사내 연구를 시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12일 열린 우리 술 품평회에도 외부 전통주 업체가 참여하지 않고 사내 생산 직원들이 출품한 복원 전통주를 가지고 경합했다. 윤수한 롯데주류 홍보 담당자는 “직접 전통주 생산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좋은 전통주 제조법을 알고 있어야 각 지역의 명주를 선별해 유통을 지원해주고 협업할 수 있는 만큼 전통주를 알아가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뜩이나 열악한 전통주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들어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해서다. 지난해 CJ와 오리온, 진로가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 때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해 다양한 우회 전략, 예를 들어 계열사를 통해 진출하거나, 유통 업무만 전담하는 등의 방식을 택했다. 롯데주류는 장기적으로 우리 술 발전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된 전통주를 국내가 아닌 해외 수출용으로 생산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또, 전통주로 눈을 넓힌 만큼 국내 전통주 제조 업체들과 협업하는 차원에서 해외 수출을 지원하거나 유통망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 국순당 ‘우리 술 복원 프로젝트’ 연구를 맡고 있는 김지윤 연구원이 시음하고 있다 ⓒ국순당

롯데주류가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인 반면 국순당은 적극적으로 행보하고 있다. 그동안 국순당은 약주나 청주, 막걸리로 틈새시장을 노려온 중견 기업인 데다가 우리 술 복원 프로젝트가 상업적 목적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춘 투자라는 측면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고봉환 국순당 홍보팀장은 “판매되는 전통주가 한정적이다 보니 시장을 확대하는 데에 한계가 명확했다. 저변을 넓히기 위해 전통주 복원에 나섰다”라고 계기를 설명했다. 국순당은 2008년부터 시작한 ‘우리 술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이화주, 미림주 등 총 12종의 전통주를 복원했다. 이렇게 복원된 전통주는 국순당이 운영하는 백세주마을이나 우리술상 주점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국순당은 롯데주류가 뒤늦게 전통주 복원에 뛰어든 데 대해 견제하기보다는 반기는 분위기이다. 거기에는 대기업이 R&D(연구·개발) 투자와 마케팅을 통해 홍보 활동을 하고 유통망을 구축해주어야 전통주 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전통주 부활시키려면 산·학·연 뭉쳐야

대기업과 중견 기업이 전통주 부활에 시동을 걸자 정부와 민간 단체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한경대학교를 주축으로 네 개 대학과 경기도에 있는 19개 전통주 생산 업체, 경기 농업기술원 등 산·학·연이 뭉쳐 경기막걸리세계화사업단(이하 막걸리사업단)을 결성했다. 여기에는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에서 진행하는 지역 전략 특화 사업에 예비 선정되어 3년에 걸쳐 50억원의 예산이 지원될 예정이다. 오는 2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이학교 막걸리사업단장(한경대학교 생명공학부 교수)은 “막걸리 열풍은 시작점에 불과하다. 전통주 부활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연구와 제품 개발에 R&D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산·학·연이 손을 잡고 클러스터를 만들었다. 한국의 정체성을 담아낸 고급 전통주를 개발해 세계화에 앞장서고자 한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정부도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09년 ‘우리 술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 나온 이후 구체적인 시행령을 담은 ‘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 조만간 마련될 예정이다. 오는 2월 공청회를 거쳐 세부 내용을 다듬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지원금 규모도 지난해 20억원에서 올해 40억원으로 늘어났다. 영세한 전통주 제조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춰갈 수 있도록 시설을 지원한다든지, 기술 개발을 위한 R&D 투자 비용이나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중소 업체들의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100년 만에 찾아온 전통주 부활의 기대감 속에 대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다. 품질의 고급화와 마케팅 활동, 유통망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1조원도 되지 않는 전통주 시장에서 대기업이 파이 나눠 먹기식의 얄팍한 상술로 달려든다면 전통주 부활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이학교 단장은 “대기업은 맥주와 소주로 획일화된 주류 시장을 전통주로 바꿔낸다는 기본 원칙을 전제해야 한다. 유통망을 넓혀주고 해외 수출의 길을 터주는 역할을 대기업이 맡아주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대기업에게만 투자와 열린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문제이다. 전통주를 생산하는 명인 역시 자신들의 노하우를 공개하고 과학과 접목해 품질 향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화 성공한 술, 자국 점유율 20% 넘어

남선희 북촌전통주문화센터 연구원은 “명인들이 비법을 공개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똑같은 맛을 낼 수 없다. 명인들이 개방적인 자세로 전통주 복원에 나서주어야 품질 고급화를 앞당길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다행히 전통주를 찾는 소비자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통주 빚기 강의를 듣고 있는 김인숙씨(43·가정주부)는 1년 전부터 집에서 직접 전통주를 빚어서 마시고 있다. 그녀는 “이제 시중에 파는 술은 맛이 없어서 먹지 못할 정도로 입맛이 변해버렸다”라며 만족스러워했다. 해외 반응은 더욱 뜨겁다. 막걸리만 보더라도 2009년에 70억원어치를 수출했던 것이 지난해에는 2백10억 원어치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전통주 부활과 고급화 전략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 전통주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전한영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산업진흥과장은 “주류 시장에서 전통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이다. 프랑스 와인이나 일본 사케 등 세계화에 성공한 술은 자국에서 최소 2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전통주를 생산하는 명인과 민간 단체,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는 데 힘쓰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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