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바람 몰고 오는 열정의 그들
  • 이진주│인턴 기자 ()
  • 승인 2011.01.24 19: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귀화인들, 공기업 사장·도의원·방송인·경찰 등 각계에서 맹활약…결혼 이주 후 장점 살려 취업하기도

 

▲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관광공사 국정감사에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위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다문화 사회는 우리 사회의 풍경을 바꾼다. 풍물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바꾼다. 각계에서는 벌써 ‘한국인’으로서 중심에 서서 맹활약하는 귀화인들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고려 시대에 많은 귀화인이 고려의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국제화의 길로 이끌었듯이 이들 또한 우리 문화를 더욱 강하고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날이 갈수록 이런 흐름은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적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26일 오전. 목포 해경 3009함 통신기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 해역에서 승객 15명을 태운 4백95t 화물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3009함은 전속력으로 질주해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화물선은 이미 50˚나 기울어져 있었다. 긴박한 순간이었다.

3009함의 해경들은 완벽한 팀워크를 이루어 승객들을 전원 구조했다. 해경 중에는 중국 조선족 출신 이주 여성인 김영옥 순경(여·35)도 있었다. 전화기 너머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흥분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런데 전화 신호가 불안했다. “제가 지금 바다 한가운데에 있어서 중간에 끊길 수도 있어요.” 김순경과 전화 인터뷰를 하던 1월5일에도 그를 태운 목포 해경 3009함은 흑산도 바깥쪽 망망대해에 떠 있었다.


11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온 김순경은 2008년 중국어 능력자를 특채하는 과정을 통해 해양경찰이 되었다. 전남 해남군청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근무할 때부터 그에게는 갈증이 있었다. 책임이 커야 보람이 큰 법인데,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항상 아쉬웠다. 나중에 퇴직할 남편을 생각하면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앞으로 들어갈 교육비와 생계도 걱정이었다. 결국 그는 평범한 아줌마에서 해양경찰로 변신을 꾀했다. 김순경은 ‘1주일에 아이를 몇 번이나 보는가’라고 묻자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바다에 나가 있던 기간이 23일이다. 1주일에 아이들을 몇 번 보느냐고 묻는 것은 우리에게 사치이다. 하지만 우리 바다를 지킨다는 보람이 크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앞선 경험 토대로 후배들도 가르쳐

충북 괴산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아동양육방문지도사인 마리아 페 아바바오 킴 씨(여·41, 이하 마리아 페)는 이 지역 이주 여성들의 멘토이자 어린이들의 영어교사이다. 필리핀에서 태어난 마리아 페 씨는 16년 전 한국 남성과 결혼하면서 한국에 왔다. 2006년 문광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영어교사로 활동하다 현재는 어린이집과 아동센터, 복지회관 등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마리아 페 씨는 “학교에서 활동할 때보다 많은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마리아 페 씨는 이주 여성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한국말이 서툰 이주 여성을 병원에 데려가는 일, 문화 차이로 오해가 생긴 국제결혼 부부를 중재하는 일,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정어머니에게 이주 여성을 대신해 한국 사회를 이해시키는 일 등이다. 그는 “엄마가 사회복지사였다.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나한테 줄 용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엄마들이 임신했을 때 병원에 데려가고 아기를 낳으면 예방주사를 맞혀주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우유랑 옥수수 가루를 사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와서 나이가 드니까 자동적으로 이렇게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기도청 가족여성정책과에는 특별한 여성 공무원이 있다. 지난해 8월에 다문화가정 지원 업무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몽골 출신 결혼 이주 여성 아리옹 씨(여·37)이다. 2002년 겨울에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며 한국으로 이주한 그는 결혼 이민자들로부터 정책과 관련한 조언을 받아 정부에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공무원으로 결혼 이민자들을 만나면서 아리옹 씨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옛날에 나도 그랬지’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좌충우돌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결혼 이민자의 모습에서 발견할 때 더 따뜻하게 상담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렇게 상담을 받았던 결혼 이민자들로부터 고맙다고 연락이 올 때, 아리옹 씨는 보람을 느낀다.

아리옹 씨는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으로 ‘취업 지원’을 꼽았다. 그는 ‘취업이 결혼 이주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욕구’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이주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아리옹 씨는 이주 여성들의 취업 욕구를 더 섬세하게 파악할 줄 안다. 아리옹 씨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들은 손으로 할 수 있는 미용사, 액세서리 제작 등을 하고 싶어 하지만 몽골에서 온 여성들은 통역사가 되고 싶어 한다. 이주 여성들은 맞춤형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원한다”라고 설명했다. 2002년 한국에 온 그녀는 2008년 한국외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는데 올 2월에 석사모를 쓴다. 앞으로 박사 과정도 밟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라 씨(여·34)는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이주 여성 최초로 경기도의회 비례대표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는 “평범한 이주 여성이었을 때는 힘이 없었다. 도의원이라는 자리에 올라오니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도 많고, 다른 이주 여성들을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이라 의원은 2003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한 몽골 출신 여성이다. 2007년 출입국사무소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부터 이주 여성들의 다양한 어려움을 접한 것이 이주 여성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였다.

이라 의원은 현재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나라당 경기도당 다문화가족위원회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이라 의원은 다문화가족위원회 부위원장과 경기도 각 지역 지회장을 이주 여성으로 구성했다. 그는 “이주 여성이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생겨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스포츠계에선 첫 귀화 국가대표까지 나와

우리 사회에 정착한 귀화 외국인 가운데 가장 고위직에 오른 사람은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남·58)이다. 독일 태생인 이사장의 본명은 베른하르트 크반트이다. 지난 1986년에 귀화하면서 이한우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2001년 이참으로 개명했다.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 적극 참여해, 한반도대운하 특보를 지냈다. 2009년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 최초로 외국계 한국인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태생의 이다도시 씨(여·43)도 한국에 정착해 성공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1992년 연세대 한국어학당 학생으로 한국에 발을 디뎠으며 EBS <프랑스 회화>에 보조 강사로 출연했다. 빠르고 수다스러운 말솜씨를 무기로 ‘울랄라’ 등의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로버트 할리 씨(남·50)도 한국에서 성공한 외국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으로 건너온 뒤 부산에서 오랜 기간 생활했다. 1997년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귀화했다. 이때 한국식 이름 ‘하일’로 개명해 영도 하씨의 시조가 되었다. 현재 방송인이자 광주외국인학교의 이사장이다.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 씨(여·30)도 유명 방송인이 되었다. 그녀는 200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난 성악가 김현준씨와 결혼했으며, 현재 역삼글로벌빌리지 센터장을 맡고 있다.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 씨(여·34)는 1996년 한국인과 결혼해 EBS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의 강사를 역임했다. KBS <러브 인 아시아>에 출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필리핀 최고 사립대 의대에 다녔던 수재이다. 미인대회 입상 경력까지 있어 한국에서도 유명해졌다. 영화 <의형제>에도 출연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기념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가 주최한 명사 릴레이 강연 ‘대한민국의 선진화, 길을 묻다’에서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남·70)는 영국 출신의 테제공동체 소속 수사이다. 본명은 브러더 앤서니이고, 한국의 시와 소설 25권을 번역해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러시아 출신의 박노자 씨(남·39)는 2001년에 귀화했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호사카 유지 씨(남·56)는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한국인이다. 2003년에 귀화했다. 지금은 세종대 교수이며, 근·현대 한·일 관계,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의 전문가이다.

왕종연 씨(여·29)는 한국여자야구클럽 최초의 외국인 등록 선수이다. 첫 귀화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중국 다롄에서 태어났으며, 중국 소프트볼 국가대표였다. 2003년 한국 유학길에 올라 소프트볼 대신 야구공과 방망이를 손에 들었다. 2008년 귀화해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 현재 CMS 여자 야구팀 소속이다. 본명이 발레리 사르체프인 타지키스탄계 축구 코치 신의손 씨(남·42)는 2000년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귀화해 ‘신의손’으로 이름을 바꾸고 구리 신씨의 시조가 되었다. 크로아티아계 축구 선수인 이싸빅  씨(남·39)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투즐라 출생이다. 현재 크로아티아 1.HNL의 NK 카를로바츠에서 수비수를 맡고 있다. 2004년에 귀화했다. 원래 이름은 야센코 사비토비치이다. 프로축구 선수인 이성남 씨(남·35)는 러시아 출신으로, 본명은 데니스 락티오노프이다. 수원 삼성에서 활약하다 성남으로 이적한 뒤 귀화했다. 성남을 본관으로 한 성남 이씨의 시조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