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대한민국을 물들이다
  • 정락인 기자·이진주 인턴 기자 ()
  • 승인 2011.01.2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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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거주 외국인 ‘토착화’ 점점 늘어…국적별로 집단촌 형성하며 ‘또 다른 한국’ 창조

 

▲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한 학교 ‘지구촌초등학교’ 입학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들. ⓒ연합뉴스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해외 문물이 쉴 사이 없이 들어오고, 외국인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에는 ‘외국인 타운’이 형성되면서 ‘한국 속의 외국’을 연출하고 있다. 귀화인들 중에는 한국의 주류 사회에 진출하며 영향력을 키우는 이들도 있다. 이미 독일인 출신의 공기업 사장이 나왔으며, 경찰, 도의원, 교사 등도 배출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어디에서, 얼마나 살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각종 정부 자료 등을 토대로 국내 거주 외국인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다문화 지도’를 그려보았다.

한국 속의 다문화는 깊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사는 외국인은 총 인구의 2.3%(1백13만9천2백83명)에 달했다. 이 중 한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은 9만6천4백61명(8.5%)이며, 나머지 92만8백87명(91.5%)은 국적 미 취득자이다.

중국계 조선인이 42만명으로 최다

▲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이주민 다문화 타운’의 외국인주민센터. ⓒ시사저널 박은숙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국적 취득자가 국내 전체 외국인 거주자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외국인 거주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 신분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즉 ‘정착’보다는 ‘임시 거주’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국적별 최다 외국인 거주자는 중국계 조선인(이하 조선족) 42만2천6백30명이고, 그 다음 중국인(한족) 15만2천6백73명, 베트남인 9만2천8백88명, 미국인 6만3천3백56명, 필리핀인 4만2천9백90명, 태국인 2만8천5백15명 순이었다.

대한민국 다문화의 중심은 역시 서울이다. 서울은 인구 비율로만 따져도 외국인이 가장 많았다. 전체 서울 인구의 3.3%(33만6천2백21명)가 외국인이었다. 서울 거주 외국인의 최다 국적은 중국(한국계 조선족)이었다. 국내 거주 조선족 42만2천6백30명 중 절반이 넘는 53.9%(19만4천6백93명)가 서울에 살고 있었다. 그중 국적 취득자는 13.3%(2만5천7백48명)에 그쳤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외국인이 가장 밀집한 지역은 어디일까. 열에 아홉은 ‘구로구 가리봉동’을 꼽지만 사실은 다르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외국인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은 ‘영등포구’이다. 전체 구민의 10.9%(4만4천2백81명)가 외국인이었다. 구민 11명 중 한 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영등포구에 가장 많이 사는 외국인은 조선족이었다. 서울에 사는 조선족의 19.6%(3만7천9백85명)가 이곳에 살고 있다.

조선족을 상징하는 기존의 지역은 구로구 가리봉동이었으나, 조선족의 국내 유입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조선족 거주 지역이 확장되었다. 조선족들의 원적지라고 할 수 있는 구로구에는 조선족 2만9천1백74명(15%)이 거주하고 있으며, 금천구 1만8천7백33명(9.6%), 관악구 1만6천9백59명(8.7%) 순으로 나타났다. 즉 서울에서 구로구, 영등포구, 금천구, 관악구 일대가 거대 조선족 타운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족들이 이 지역에 정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리봉동에서 만난 한 조선족은 “조선족들이 서울의 식당 등에서 일용직으로 많이 일한다. 그렇다 보니 도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서 부동산값이 싸고, 교통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이 일대에 모여 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조선족들 대부분은 연립이나 다가구주택, 다세대 주택의 반(半)지하에 살고 있다. 고시원도 조선족들이 선호하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족과 지역 주민과의 문화 교류는 거의 없는 편이다. 주된 이유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조선족들에게 문화 활동을 즐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의 배척도 한몫하고 있다. 이인재 영등포 다문화빌리지센터장은 “지역 주민들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동철 중국동포타운신문 이사는 “조선족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한국인들은 집값 문제 때문에 전학 가고 이사 한다. 공존 자체가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서울 속 외국인 거주 지역의 대명사는 ‘이태원’이었다. 이곳은 용산 미군기지가 생기면서 영어권 외국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미군기지가 이전하면서 영어권 외국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이태원 상권도 점차 무너져갔다. 그 자리에 이슬람과 아프리카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10년 전만 해도 이슬람사원 주변에 무슬림 식당은 4~5개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40여 개에 육박한다. 그만큼 이곳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의 숫자가 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 상인과 무슬림 상인 간의 갈등도 생겨났다. 이태원의 한 수입 식료품 마트의 한국인 주인은 “무슬림은 할랄(신이 허락한 음식) 표기가 되어 있는 무슬림 상점만 이용한다. 한국인들이 이 상권에 들어오기 힘들어졌다”라고 토로했다.

공단 있는 지역에 많이 몰려 살아

용산경찰서 이태원지구대 뒤쪽은 일명 ‘아프리카 타운’이다. 원래 이곳에는 가나인들이 많았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 나이지리아인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현재 서울 거주 나이지리아인 1천2백27명 중 52%(6백38명)가 용산에 거주한다.

아프리카타운의 주도권은 나이지리아인들이 갖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최대 축제인 10월1일(독립기념일)에는 나이지리아인들이 함께 모여 전통 춤도 추고, 전통 음식도 나눠 먹는다. 한국인과의 교류도 있다. 나이지리아인 쭈꾸 씨는 “나이지리아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안산에 가서 한국 노동자들과 함께 풋볼 게임을 즐긴다”라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은 국적별로 각자의 ‘타운’에 모여 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은 프랑스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전체 프랑스인 2천2명 가운데 1천7백75명(88.7%)이 서울에 살고 있으며, 그중 4백40명(24.8%)이 서초구에 밀집해 있었다. 중앙아시아인은 전체 외국인의 1.7%(1만8천5백83명)이다. 이 중 11.2%(2천70명)가 서울에 살고 있는데, 지역별로는 중구 5백39명, 동대문구 1백88명, 은평구 1백47명이다. 러시아인의 경우 전체 3천8백91명 중 서울에 1천14명(26.1%)이 살고 있다.

지역별로는 용산구가 1백77명으로 가장 많게 나타났다. 한국계 러시아인(이하 고려인)은 전체 2천3백28명 중 4백35명(16.9%)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중구에 1백71명이 살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이촌1동은 일명 ‘일본 타운’이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1만9천5백61명이다. 이 중 서울에 7천1백45명(63.5%)이 있으며, 용산에 1천5백86명이 살고 있다. 서울 거주 일본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때는 재한일본인협회 ‘서울재팬클럽’이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자선 콘서트가 열릴 때이다. 

서울 다음으로 외국인의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은 경기도이다. 경기도 인구의 2.9%(33만7천8백21명)가 외국인이다. 특히 시화공단이 있는 안산시에 외국인이 가장 많았다. 안산시 인구의 6.1%(4만3천190명)가 외국인으로 집계되었다.

‘이주민 다문화 타운’으로 알려진 원곡동의 경우 내국인과 이주민은 경제적 공생 관계에 있다. 이정혁 외국인노동자의집 목사는 “한국 주민들은 이주민들이 나가면 원곡동이 공동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 월세를 꼬박꼬박 잘 내기 때문에 건물주들은 한국인 입주자보다 외국인을 선호하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안산시에서는 이주민과 내국인들의 문화 교류 사업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안산시청은 다문화 축제를 주최하고, 민간 단체들도 명절을 맞이해 여러 문화 행사를 연다. 아직은 한국인 주민의 참여도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어서, 이주민과 한국인 주민의 문화 교류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시흥시에는 시화공단이 인접해 있는 정왕동을 중심으로 ‘이주민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시흥에 사는 외국인의 55% 정도가 정왕동에 산다. 외국인 중에는 조선족(7천2백75명)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베트남인(2천100명)이다. 배경연 시흥시청 다문화계 직원은 “중국, 베트남 등 여덟 개국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가족 모임이나 자원봉사 등의 행사를 할 때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인천도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인천 인구의 2.3%(6만3천5백75명)가 외국인이다. 인천 내 외국인 최대 밀집 지역은 남동공단이 위치한 남동구이다. 남동구 인구의 3.0%(1만4천76명)가 외국인이다. 국적별로는 조선족이 1만9천8백4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인천의 대표적 외국인 타운은 중구 선린동의 ‘차이나타운’이다. 이곳은 ‘화교마을’로 명명되어 인천시의 관광 상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남 인구의 2.1%(6만6천8백명)는 외국인이다. 하지만 국적 취득자와 외국계 주민의 세대 수는 광역시 중 네 번째에 속했다. 그만큼 결혼 이주민이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김해시의 경우 외국인이 김해시 전체 인구의 3.0%(1만4천6백53명)를 차지하고 있다. 서상동에 위치한 외국인근로자센터 직원은 “주말 야간 유동 인구의 70% 정도가 외국인이다. 국가별로 아시안 마트가 굉장히 많다. 외국인 상점이 100여 곳에 달한다”라고 말했다.

 

부산은 1.2%만 외국인…전국 평균 밑돌아

국내 최대 조선소가 있는 경남 거제에는 조선소 특성상 북유럽계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직원은 “대우조선해양에서 현재 노르웨이 크누스텐 사의 배를 짓고 있어 상주하는 노르웨이인들이 있다. 조선뿐 아니라 해양 쪽에서도 북유럽 선사와 관련한 일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노르웨이가 산유국이라 워낙 비즈니스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경남 남해에 조성된 ‘독일 마을’의 경우 독일 거주 교포들의 정착촌이다. 2001년부터 독일 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조성되었으나 실제 독일인은 세 명 남짓 거주하는 정도이다.

부산 인구의 1.2%(4만1천3백65명)는 외국인이다. 전국 평균치를 밑도는 수치이다. 부산 거주 외국인의 최다 국적은 9천4백77명의 중국인(한족)이다. 그 다음이 조선족으로 6천1백98명이다. 부산 내 외국인 최대 밀집 지역은 사하구였다. 외국인은 전체 사하구 인구의 1.4%(5천75명)를 차지한다.

전남의 경우 영암에 외국인이 몰려 있다. 전남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3만1천3백5명(1.6%)이다. 이 중 5천2백96명의 외국인이 영암에 거주한다. 영암 인구의 8.9%에 달하는 수치이다. 영암에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이유는 전남 지역 최대 공업단지인 대불공단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공단 입지는 다른 외국인 거주 밀집 지역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한편 전국에서 인구 대비 외국인 거주자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대구로 1.0%(2만6천2명)에 불과했다.  


 학교도 군대도 ‘다문화’ 용광로 속으로

다문화 학교, 다문화 군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다문화가정 출신의 18~19세 남자는 3천5백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내년까지 징병검사 대상이 된다. 2013년부터는 구릿빛 피부, 검은색 피부 등을 가진 혼혈 사병들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국방부가 밝힌 ‘다문화 장병’의 범주는 외국인 귀화자, 새터민 가정 출신 장병, 국외 영주권자 입영 장병, 결혼 이민자 등이다. 지금까지 우리 군대는 단일 문화 공동체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사병들끼리 문화적인 충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다문화 병영은 다르다. 피부색과 문화적인 차이 등으로 갈등이 있을 수 있다.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다문화 군대에 대비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방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군 인사법에 인종과 피부색 등의 차별 금지 조항 신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문화가정 출신 입영 예정자들끼리 동반 입대해 복무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다문화가정의 또 다른 고민은 ‘교육 문제’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당하거나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서툰 한국어로 인해 학습 부진아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의 하소연에 부모들은 속이 타기 마련이다. 다문화가정에서는 ‘다문화 학교’의 필요성이 제기되어왔다. 지구촌사랑나눔의 김해성 목사는 지난 5년 동안 ‘국제다문화학교’ 설립을 추진해왔다. 오는 3월에는 초·중·고교 과정의 국제다문화 학교가 개교한다.

김목사는 “다문화 학교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왕따를 당하지 않고 ‘학습 부진아’라는 놀림에서 해방되는 대안이 될 것이다. 부모가 불법 체류자라도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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