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잠룡들 ‘싱크탱크’가 움직인다
  • 반도헌 기자·박중건 인턴기자 ()
  • 승인 2011.01.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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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막후 자문 그룹 구성 채비…“싱크탱크 내부적으로 있지만 아직 공개 못해”

 

▲ 왼쪽부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특임장관, 손학규 민주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정동영 민주당 최고의원,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 ⓒ시사저널자료

“과거의 대선이 지역 간 대결, 일부는 이념 간 대결 양상이었다면, 앞으로의 대선은 정책 대결이 될 것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정계 원로 인사가 지난해 박 전 대표에게 한 충고의 말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7일 자신의 대선 싱크탱크 조직의 성격을 지닌 ‘국가미래연구원’을 공식 출범시키면서 정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평소 신중한 행보를 해 온 박 전 대표의 스타일로 보았을 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친박근혜계 주변 인사들이 만류했음에도 공개적인 출범을 강행한 것 또한 이 원로 인사를 비롯한 주변 학계 인사들의 조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의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이처럼 먼저 치고 나가면서, 내심 내년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잠룡’들도 초조해졌다. 인기 1위의 경쟁자가 정책마저 선점하고 나서는 판국이니, 다른 대권 주자들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일부 잠룡측은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조만간 싱크탱크 출범을 공식화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박 전 대표의 기습적인 선공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내년 대선을 향한 정책 조언 집단 구성 경쟁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 

대권 주자들이 싱크탱크 구성에 힘을 쏟는 것은 잘 조직된 싱크탱크가 대선 승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또한 역대 대통령 당선자의 경우에서 보듯이 싱크탱크의 주요 구성원들은 당선 이후 어김없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흡수되었고, 이들은 결과적으로 새 정부 요직의 주요 인적 자원이 되었다. 싱크탱크 구성원들 면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지난 대선에서 국제정책연구원(GSI)과 바른정책연구원 등의 도움을 받았고, 이곳 출신 인사들은 현 정부에서 상당수 등용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발기인으로 참여한 국가미래연구원은 최근 서울 마포구에 사무실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원장을 맡은 김광두 서강대 교수를 비롯해 각계 전문가 80여 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패배 이후 매달 만나온 김교수와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김영세 연세대 교수, 최외출 영남대 교수 등 이른바 ‘5인 스터디그룹’을 중심으로 모였다. 박 전 대표는 국가미래연구원 외에도 여러 개의 외곽 자문 조직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박계 한 핵심 인사는 지난 연말 기자에게 “내년 3월부터 서서히 공개적인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귀띔한 바 있어, 조만간 비공식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자문 그룹들의 실체가 외부에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잠룡들 가운데 박 전 대표를 제외하고 현재 유일하게 공개적인 싱크탱크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이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이다. 한승주 전 외무부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은 국제적인 정치 이슈나 G20과 같은 국가적 행사 등에 관한 연구를 담당한다. 한국의 헤리티지 재단이나 브루킹스 연구소를 지향하며 정치 계파나 개인의 정치적 목적과는 거리를 두고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적 어젠다를 다룬다는 것이 연구원측의 설명이다. 

오세훈·김문수, 지자체 정책 기관에 의존

정 전 대표의 개인 조직 성격인 ‘해밀을 찾는 소망’ 역시 정 전 대표의 의정 활동을 외부에서 지원하기 위해 2009년 만들어져 여의도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세 명의 정책실장 등 다섯 명이 상주하고 있고, 자문위원은 100여 명에 달한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 김용호 인하대 교수, 박종두 목포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현안이 발생하거나 정 전 대표가 관심 있는 분야가 있으면 자문을 해 전문성을 높인다. 지금까지 공개 토론회를 세 차례 열었고 한 달에 한 번꼴로 모임을 갖고 있다. 앞으로는 모임을 더 자주 가질 계획이다. 홍윤오 정책기획실장은 “대선을 위한 전초 기지로서의 외곽 캠프는 아니다. 6선의 중진 의원인 정 전 대표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발굴하고자 자신의 돈을 출자해 설립한 곳이다”라며 대선을 목적으로 한 싱크탱크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여권에서 박 전 대표의 대항마로 가장 앞서 있지만, 아직 개인적인 싱크탱크 조직을 가동하고 있지는 않다. 현직 광역단체장이어서 사조직 성격의 싱크탱크를 드러내기 어려운 탓이다. 하지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경기개발연구원 등 지자체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연구 기관과 행정 참모 등을 통해 정책 개발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정가에서는 사실상 이들 연구 기관을 움직이는 핵심 인사들을 잠재적인 싱크탱크 그룹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오세훈 시장의 자문 그룹으로는 제타룡 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이성규 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최창식 성균관대 교수, 권영걸 서울대 교수 등이 꼽힌다. 오시장이 최근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초등학교 무상 급식 반대 목소리도 이들 조언자 그룹을 중심으로 나온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오시장의 한 측근은 “외형적으로 싱크탱크가 가동되거나 운영되고 있지 않다. 시정자문단이 내부적으로 운영될 수 있겠지만 소리가 나게끔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문수 도지사의 자문 그룹으로는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 서상목 경기복지재단 이사장, 이한준 경기도시공사 사장 등이 꼽힌다. 여기에 김지사의 대학 시절 은사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김지사의 한 측근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메일을 보내고 모임을 가지는 조언 그룹이 있다. 하지만 기존 관계 때문에 그런 것이지 대선을 위해 조직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오시장이나 김지사 모두 사적인 싱크탱크 조직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혹여 공적인 기구를 사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선 경쟁을 위한 내부 조직 구성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지사의 측근인 한 의원은 “대선을 준비하는 싱크탱크가 내부적으로 있지만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 언제 공개할지도 아직은 밝힐 수 없다”라고 말해 이같은 추측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아직까지 대권을 위한 공식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본인이 대권 행보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장관이 대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직후 본격적으로 싱크탱크 조직이 가동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기반만큼은 어느 대선 주자들보다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재적인 조언 그룹으로는 자서전 <함박웃음> 집필에 관여한 이현복 한양대 교수, 윤건영 연세대 교수, 주용식 중앙대 교수 등이 꼽힌다.

야권의 잠룡들도 정책 대결에서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듯 싱크탱크 조직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자신이 상임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는 ‘동아시아미래재단’을 통해 정책적 조언을 얻고 있다. 이 재단에는 김성수 전 성공회대 총장을 비롯해 송태호 전 문화체육부장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임병영 동아시아미래재단 운영국장은 “100여 명의 자문위원이 활동하고 있고 그동안 꾸준히 정책과 관련해서 재단을 운영했다. 손대표의 싱크탱크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대선과 연계시키지 않더라도 논의를 통해 생산적 정책을 만드는 원칙에 충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거의 매주 정책 토의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손대표의 자문 그룹으로는 오랫동안 교류해 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장달중 서울대 교수, 김태승 인하대 교수 등이 꼽힌다.

민주당 전당대회 패배 이후 한동안 활동을 자제하던 정세균 최고위원 역시 싱크탱크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대권을 향한 행보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최고위원측의 한 관계자는 “설 이후 출범시키기 위해 지금 준비 중에 있다. 이전부터 존재했던 ‘미래정치경제연구회’ 중심으로 꾸려질 것이다. 미래정치경제연구회에 참여했던 20여 명의 자문위원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것이다. 구체적인 규모와 설립 형태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윤성식 고려대 교수,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 전도영 서강대 교수, 한승헌 전 감사원장 등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유능 인사 영입 위한 과열 경쟁 조짐도

지난 대선에서 싱크탱크 조직인 ‘나라비전연구소’를 운영했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최근 자문 그룹을 조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월20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복지재원토론회를 공동 개최한 것도 싱크탱크 조직을 위한 행보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를 비롯해 안병우 한신대 교수, 김연철 인제대 교수, 권만학 경희대 교수 등이 정최고위원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은 당의 공식 기구인 연구소장을 직접 맡고 있는 경우이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 김수현 세종대 교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이사로 참여해 정책 방향을 연구하고 있다. 노항래 정책연구원 부위원장은 “중앙당에서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연구소이다. 유시민 원장의 대선 싱크탱크라기보다는 국민참여당이 견지할 정책 방향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수면으로 드러난 ‘잠룡’들 외에도 여야의 중진 인사 및 차세대 정치인들 역시 이런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를 위해 실제 최고위원급의 한 중진 의원과 ‘40대 기수론’을 내세웠던 차세대 주자 정치인은 여의도에 별도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능력 있는 인사를 영입하기 위해 서로 과열 경쟁하는 조짐도 보인다. 이념적으로 전혀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희망하는 조언자가 겹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잠룡측 관계자는 “설령 자문위원이 겹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훌륭한 자문위원을 한 발짝 앞서 영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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