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 대 김사장 ‘게임 전쟁’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02.1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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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김정주 넥슨 대표, 업계 1위 다툼 치열…오프라인으론 급속한 사세 확장도

김택진과 김정주. 온라인 게임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국내 간판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성공 신화’를 일군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서비스하는 리니지 시리즈나 아이온,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은 해외에서도 많은 유저를 확보하고 있다. ‘게임 한류’의 전진 기지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콘텐츠경영연구소장)는 “온라인 게임은 한국이 종주국이다.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산업을 발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매출은 각각 6천3백47억원과 7천36억원을 기록했다. 여전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수치 비교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게임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두 회사의 매출 대비 영업이익은 30~40%에 이른다. 대기업 계열 제조업체의 영업이익이 많아야 10% 정도임을 감안할 때 수익성이 탁월하다. 위교수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페이스북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결국은 온라인 게임의 커뮤니티 시스템을 응용한 것이다. 거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게임 산업은 성장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라고 평가했다.

ⓒ엔씨소프트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정주 NXC(옛 넥슨홀딩스) 대표가 최근 또 한 번 일을 냈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창원시를 연고지로 하는 아홉 번째 프로야구단 우선협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야구를 통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복안이다. 김택진 대표는 신년사에서 “더 이상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야구장과 같은 실제 공간에서도 즐거움을 전해줄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넥슨 역시 일본 프로야구팀인 지바 롯데를 2년 연속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 지바 롯데가 우승하면서 인지도 상승 효과를 맛보았다. 넥슨은 올해 자회사인 넥슨재팬의 도쿄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넥슨재팬의 시가총액은 최대 1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코스피에 상장한 우리금융(11조원)이나 하나금융(7조원)보다도 큰 규모이다.

ⓒ연합뉴스

M&A 통해 성장했지만 방식은 크게 달라

최경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넥슨은 최근 M&A(인수·합병)를 통해 몸집을 급격히 키웠다. 도쿄 증시 상장으로 또 다른 M&A를 위한 총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김정주 대표와 부인 유정현 이사는 그룹 지주회사인 NXC의 지분을 60% 이상 보유하고 있다. 노무라 증권의 예상대로라면 김대표 부부는 6조원 안팎의 상장 차익을 챙기게 된다. 지난해 최고의 주식 부자로 꼽혔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앞지르게 되는 셈이어서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대표는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은 1세대 게임 CEO로 라이벌 관계이기에 앞서 서울대 선후배 사이이다. 김택진 대표가 컴퓨터공학과 85학번이고, 김정주 대표가 86학번이다. 지난 1990년 주목을 받았던 ‘한컴 5인방’ 멤버이기도 하다. 김정주 대표는 지난 1996년 세계 최초의 그래픽 기반 메드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선보였다. 이듬해에는 김택진 대표가 ‘리니지’를 선보였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또한 비슷하다고 주변에서는 평가한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면 정반대이다. 김택진 대표는 리니지 시리즈와 아이온 등 하드코어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에 역량을 집중했다. 김정주 대표는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엔비 등 캐주얼 게임을 통해 회사를 키웠다. 최근 인수한 기업들 면면에서도 두 사람의 경영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크레이지다이아몬드, 제페토, 넥스트플레이 등 소규모 개발사를 인수하는 것을 선호했다. 리니지 성공 이후 개발력 확보에 주력하면서 중소 개발사를 인수하는 데 힘을 쏟았다. 윤진원 엔씨소프트 홍보팀장은 “디지털 산업의 추세로 볼 때 IP(지적재산권)를 최대한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넥슨의 경우에는 이미 매출이 있는 중견 회사를 선호한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이다. 넥슨의 주요 캐시카우 게임인 메이플스토리(위젯)나 던전앤파이터(네오플), 서든어택(게임하이) 등은 모두 개발사 인수를 통해 흡수되었다. 김대표는 최근 거대 금융 자본을 물리치고 게임하이마저 인수하면서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소규모 게임 개발사도 다수 인수했다. 시메트릭스페이스, 엔클립스, 코퍼슨스 등은 최근 넥슨에 인수된 게임 개발사이다. 넥슨 관계자는 “(김정주 대표가) M&A를 고민하고 결정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IP와 개발자의 성장 가능성이다. 넥슨이 M&A를 통해 덩치를 키웠다는 세간의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새로운 게임을 출시할 때마다 매출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반면 넥슨은 회사를 새로 인수할 때마다 매출이 늘었다는 점에서 양측의 전략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아이폰용 게임 등 장르 다양화가 승부의 관건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대표의 경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넥슨은 올 상반기 중에 카트라이더의 아이폰·아이패드 버전인 ‘카트라이더 러쉬’를 서비스할 계획이다. 자회사인 엔도어즈가 개발 중인 웹브라우저 기반 3D MMORPG ‘삼국지를 품다’의 첫 번째 클로즈베타테스트 서비스도 2011년 상반기에 진행할 계획이다. 이에 맞서 엔씨소프트는 MMORPG 블레이드앤소울의 출시를 준비 중이다. 두 회사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했다. MMORPG를 선호하는 엔씨소프트는 최근 캐주얼 게임 포털인 ‘플레이엔씨’를 선보였다. ‘캐주얼 게임 왕국’인 넥슨 역시 최근 MMORPG인 ‘제라’를 선보였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다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때문에 새로운 게임의 성공 가능성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장르를 얼마나 다양하게 하느냐가 향후 양측의 승부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김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전략시장지원팀장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온라인 게임의 장르 또한 다양화할 필요가 생겼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스마트폰 전용 게임도 선보였다. 새로운 시장에 얼마나 발 빠르게 대응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안착 여부도 관심거리이다. 한국이 현재 온라인 게임의 종주국이기는 하지만, CD 게임이나 콘솔 게임에 비해서는 여전히 점유율이 모자란 상황이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국내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돌입했다. 이제 해외로 진출해야 하는데, 여건이 만만치가 않다. 한 업체는 중국 사업에서 실패한 뒤, 부사장이 도피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해외 시장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보다 얼마나 견고하게 쌓느냐가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 엔씨소프트 김대표의 부인 윤송이 부사장.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대표의 행보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이 있다. 부인들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주 넥슨 회장의 부인 유정현 이사는 현재 넥슨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NXC의 지분 20.1%를 보유하고 있다. 김정주 회장(47.49%)에 이어 2대 주주이다. 넥슨측은 “유정현 이사가 1994년 회사 설립 때부터 사업에 관여했고, 그동안 회사 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최원혁 넥슨 홍보팀장은 “회사의 살림을 책임지는 경영지원본부장직을 오랫동안 맡았다. 현재는 NXC가 추진 중인 다양한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부인 윤송이 부사장 역시 엔씨소프트에서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한때 ‘천재 소녀’로 불리면서 20대에 SK텔레콤 임원에 올랐다. 이후 2008년 11월 엔씨소프트 부사장에 취임했다. 김택진 대표가 R&D(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윤부사장은 전략을 맡고 있다. 최근 윤부사장을 만난 한 언론인은 “윤부사장이 내실을 탄탄하게 만들면서 김택진 대표가 R&D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들었다”라고 귀띔했다.

이는 엔씨소프트의 매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윤부사장은 지난 2008년 말부터 엔씨소프트 경영에 합류했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신규 사업 부진으로 매출뿐 아니라 영업이익까지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2009년 들어 매출이 3천4백68억원에서 5천3백47억원으로 83% 늘어났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4.8배와 7.4배 성장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전세계 경제가 신음했지만, 엔씨소프트는 성장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부인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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