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정보 ‘월북’도 심상찮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1.02.1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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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2만명 시대 맞아 유출 경로 넓어져…“남북 오가는 ‘피스톤’도 여전히 암약 중”

“북으로 첩보를 제공하지만 외부로 노출이 안 된다. 정보 기관에서도 이들을 솎아낼 여력이 없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북한 전문가가 “우리 정보를 북한에 넘기는 탈북자들이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주로 50~60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을 받아서 활동한다”라고 설명했다.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가 2만명에 이르면서, 탈북자를 통해 우리 정보가 북한으로 유출되는 경로도 폭넓어졌다는 지적이다. 휴대전화로 북한 내부와 직접 연락이 가능한 만큼 정보 유출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탈북자 사회에서도 말을 꺼내기 조심스럽지만, 그렇다고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한다. 북한 정보에 정통한 한 탈북자는 “정보 활동 임무를 받고 내려온 사람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둘러서 말했다. 지난 2006년 탈북자로 입국한 원정화씨는 2008년 간첩 혐의로 구속되었다.

▲ 지난 2008년 8월27일 수원지검에서 간첩 혐의로 구속된 원정화씨가 사용한 증거물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재입국한 일부 탈북자 ‘간첩 협의’ 받아

북한으로 재입국하는 탈북자들도 적지 않아 이러한 의혹을 더욱 부추긴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8월 발간된 제1085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탈북자 2백여 명이 북한으로 다시 넘어갔다”라고 보도해 반향을 일으켰다. 재입북한 탈북자들 중에는 간첩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여럿 되었다.

2008년 초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넘어온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탈북자는 하나원에서 사회 적응 교육을 받은 후 이듬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의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나중에 드러났다. 아버지가 회령시 역전 분주소(파출소) 소장이며, 그가 탈북한 뒤에도 신분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남한으로 온 탈북자들 중에서 그를 북한에서 목격했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그는 하나원 내부를 촬영한 동영상 CD를 가지고 입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진 출신인 다른 탈북자도 2008년 말 남한에 들어온 후 1년여 만에 자취를 감추었다. 탈북 브로커로도 활동한 그는 탈북 단체 인사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이름난 단체장들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 탈북 단체 회장은 “남한에 있는 재산을 긴급하게 처분하려고 하는데 살 사람을 알아봐달라는 연락이 왔었다. 북한으로 가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 한 것 같다. 그의 아버지가 대남 부서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후 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탈북자 인권 단체 관계자는 “공개가 안 되어서 그렇지 근래에도 북한으로 되돌아간 탈북자가 20여 명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이 어떤 정보를 갖고 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라고 전했다.

정보 유출과 관련해 북한 재입국 여부만 따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탈북자들 중에는 어디에서 돈을 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다. 중국 공안이나 북한 당국에 돈으로 매수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한국의 경우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대다수 정보가 외부로 개방되고 있다. 그런 만큼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정보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한 탈북 단체 대표는 “가장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국방 체계나 무기 배치 등에 대한 정보도 언론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한 청해부대 정보는 정부에서 직접 제공하지 않았나. 총리나 장관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의 개인정보도 청문회를 보면 알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생계형 정보 거래’ 늘어나 비상

▲ 탈북자 신분으로 입국해 간첩 혐의로 구속된 원정화씨. ⓒ연합뉴스

이는 북한 입장에서 굳이 돈을 들여가며 정보를 어렵게 구할 필요성이 줄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갈수록 국가 간의 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국제 환경 속에서, 사소하게 여겼던 정보 하나가 외부로 흘러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특히 국가 정보를 돈으로 사고파는 ‘생계형 정보 거래’가 늘어나고 있어 정보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지시를 받아 침투하는 전형적인 남파 간첩은 확연하게 줄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 남한 정보를 총괄하던 조선인민군 정찰국의 대남 활동도 잦아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남파 간첩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정보 활동 경험이 많은 한 탈북 인사는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한다고 해서 ‘피스톤’이라고 불리는 간첩이 있다. 남한에도 넘어오고 중국에도 건너간다. 특정한 누구에게 서류 또는 물건을 전해주고 받아오는 간단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지에 오래 체류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북한에서 한 달 정도 교육을 받은 후 남파되는데, 월급 형식으로 돈을 받고 임무에 나선다고 한다. 이 인사는 “군인과 같이 완력이 있는 사람만 ‘피스톤’이 되는 것이 아니다. 80세가 넘는 노인도 있고 여성도 있다. 남한에 가족이나 친·인척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은 위협적인 인물이 아니더라도 이들이 대신 활동에 나설 수 있어 ‘피스톤’으로 지명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탈북자 재입국 문제 등은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 등 위법 행위는 적법 절차를 거쳐 처리하고 있다”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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