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웃는 선수는 어떻게 단련되었을까
  • 서민교│월간 점프볼 기자·네이버스포츠 농구전문 칼 ()
  • 승인 2011.02.2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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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프로농구 새판 짠 감독들의 ‘3인3색 리더십’

 

▲ LG와의 경기에서 활짝 웃고 있는 KT 전창진 감독. ⓒ연합뉴스

 2010-2011시즌 프로농구 정규 리그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6강 플레이오프 티켓의 주인도 윤곽이 드러난 상태이다. 올 시즌 최고의 이슈는 프로농구 출범 이후 단 한 차례도 우승을 하지 못한 부산 KT와 인천 전자랜드의 선두 경쟁이다. 또 전주 KCC가 어느 정도 뒷심을 발휘할지도 관심사이다. 톡톡 튀는 리더십을 갖고 있는 전창진(KT)·유도훈(전자랜드)·허재(KCC) 감독 가운데 누가 마지막에 웃을 것인가.

 프로농구는 2010-2011 정규 시즌 마지막 6라운드를 앞두고 있다. 올 시즌 판도를 새로 짠 감독들의 ‘3인3색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병 주고 약 주는’ KT 전창진 감독

 KT는 올 시즌 최고의 이슈 메이커이다. 시즌 초반부터 상위권에 올라 내려올 줄을 모른다. 시즌 중반 이후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가 고공 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두 시즌 전만 해도 KT는 최하위였다.  KTF에서 KT로 구단 이름이 바뀌었을 뿐인데 왜 달라졌을까. 해결사는 따로 있었다. 동부에서 우승 청부사로 명성을 떨쳤던 전창진 감독이 2009-2010시즌부터 KT의 지휘봉을 잡았다. KT는 지난 시즌 40승14패로 모비스와 동률을 이루었지만, 다득점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KCC에 쓰라린 패배를 맛보고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꼴찌에서 준우승으로 판도를 뒤엎은 역전 드라마였다.

 올 시즌 KT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중심에는 전감독이 있었다. 지난 시즌 KT는 패배 의식을 해소하는 데 성공했지만, 우승을 향한 의지를 고취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시즌이 아닐 때는 체력 훈련 강도를 높였다. 태백 전지훈련장에서 KT의 훈련 모습을 본 KCC 허재 감독은 혀를 내둘렀다. “우리 애들은 걸어다니는데 KT 애들은 날아다녀!” KT 선수들은 혹독한 훈련을 모두 소화했다. 당시 가장 많은 질책을 받았던 선수는 무명의 박상오였다. 하지만 박상오는 시즌 개막 이후 MVP 후보에까지 이름을 올리며 KT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전감독에게 욕 먹는 선수는 또 있다. 국가대표 슈팅가드 조성민이다. 전감독은 조성민을 칭찬하는 데에 인색하다.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끝없이 질책한다. 잘해도 욕 먹는 박상오와 조성민은 의외로 전감독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다. 반면 최고참 표명일과 조동현에게는 선수 관리를 전적으로 맡겼다. 전감독은 “내가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해주기 때문에 고맙기만 하다”라며 칭찬 일색이다. 그 이면에는 어떤 리더십이 숨어 있을까.

 지난해 11월 KT는 통신사 라이벌인 SK와의 대결에서 패했다.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풀이 죽은 선수들은 늘 그렇듯 저녁을 먹기 위해 부산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최고참 표명일과 주장 조동현은 밥도 먹지 않겠다며 숙소로 발길을 돌린 상태였다. 그런데 이날 전감독이 식당에 나타났다. 의기소침해진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이 소식을 들은 표명일과 조동현도 부랴부랴 식당으로 돌아왔다. 전감독은 시즌이 한창이었지만 술자리를 벌였다. 직접 폭탄주를 돌리며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게 했다. 전감독의 주량은 딱 소주 한 잔이지만, 선수들의 사기를 위해 적극 나선 것이다. 대다수 선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정도로 만취했고, 전감독은 다음 날 오전 훈련도 없앴다. 당시 조동현은 “감독님은 그런 분이시다. 선수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절묘하게 아신다”라고 감탄했다. KT는 그날 이후 승승장구하며 선두로 치고 올라섰다.

 전감독은 외국 선수를 다루는 능력도 탁월하다. 일단 막 대한다. 한 시즌 성적을 내기 위해 데려온 용병이라는 얘기이다. 말을 듣지 않으면 실력에 상관없이 비행기 표를 끊어주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늘어놓아 눈물을 쏙 빼게 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외국선수를 달래는 것도 전감독의 역할이다. KT는 새해를 맞아 단체 한복 촬영을 가졌다. 제스퍼 존슨이 한복을 안 입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전감독이 또 나섰다. 전감독은 존슨을 끌어안고 “나도 한복을 입었는데 너도 좀 입어달라”라며 애교까지 동원했다. 존슨은 곧바로 한복으로 갈아입고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했다. 전감독은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카드를 써서 줄 정도로 세심하다. 선수가 외박을 나가 있는 동안에도 휴대전화 문자로 안부를 물을 만큼 소통을 즐긴다. 코트에서 격정적으로 호통을 치는 카리스마를 선보이지만, 뒤에서는 부드러운 형님일 뿐이다.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KT를 똘똘 뭉치게 하는 힘은 전감독의 내유외강형 리더십에서 나온다. 

‘사랑의 작대기’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

ⓒ연합뉴스

 전자랜드 역시 지각 변동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 시즌 성적은 꼴찌에서 두 번째인 9위였다. 플레이오프 보증 수표인 서장훈을 보유하고도 거둔 처참한 성적표였다. 하지만 올 시즌 전자랜드는 확 달라졌다. 시즌 내내 선두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KT를 바짝 뒤쫓으며 2위에 올라 있다. 변화는 유도훈 감독이 새 사령탑에 앉으면서 시작되었다. 서장훈 등 노장 3인방을 포함한 주축 선수들에게는 스스로 몸을 만들도록 했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에게는 혹독한 훈련이 뒤따랐다. 불만이 생길 법도 했다. 중간 다리 역할을 한 것이 유감독이다. 유감독은 밀어붙일 때는 인정사정없다가도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끈을 놓는 스타일이다. 유감독은 노장들의 자존심을 살리면서 젊은 선수들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도록 출장 시간과 타이밍을 조절했다. 시즌 중반 주춤했던 전자랜드가 후반으로 갈수록 견고하게 살아나고 있는 이유이다. 

‘들판의 들개처럼’ KCC 허재 감독

ⓒ연합뉴스

 KCC는 독특한 팀이다. 언제나 우승 후보 0순위이다. 하지만 늘 시즌 초반이 문제였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2라운드까지 성적은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불안할 정도로 심각했다. 하지만 3라운드 이후 단 4패만을 기록하며 3위에 자리매김했다. ‘농구 대통령’ 허재 감독의 자유방임형 리더십도 한몫했다. 허감독은 선수를 풀어주는 타입이다. 개인의 기량을 마음껏 내보일 수 있도록 장점을 부각시킨다. 소소한 일에 선수를 넣고 빼고 하는 일이 없다. 허감독의 선수 평가 잣대는 근성이다.

 허감독은 ‘들개론’을 펼쳤다. 들판에 풀어놓은 들개처럼 먹잇감을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고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허감독은 노장 예우가 확실하다. 추승균이나 임재현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이가 많아도 그만큼 들개에 가장 가까운 선수라는 얘기이다. 후배에게 모범 답안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신 시간이 조금 더딜 뿐이다. 전태풍과 하승진, 강병현이 농구 자체에 신이 나서 코트로 나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이 허감독이다. 스스로 깨우쳐야 할 수 있다는 농구대통령의 지도 방식인 셈이다. 모든 감독이 플레이오프에서 KCC를 가장 두려운 상대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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