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왜 ‘T-50’에 집착하나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2.2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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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 이후 방사청장 등 호되게 질책…이후 너도나도 수출 전략에 매달려

 지난해 12월8일 늦은 밤 이명박 대통령은 전용기에 올랐다. 다음 날인 9일 새벽 6시 인도네시아 발리에 도착한 이대통령은 국제컨벤션센터에서 한국-인도네시아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이날 오후 3시에 서둘러 다음 방문지인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이날 이대통령이 인도네시아에 머무른 시간은 단 아홉 시간에 불과했다. 초스피드 순방 일정이었다. 당시 국내는 11월23일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해 비상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대통령은 일정을 단축해서 인도네시아 순방을 강행했다. 거기에는 중요한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 

▲ 대선 후보 시절 경남 사천시 KAI를 방문해 T-50 조정석에 앉아 회사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는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이날 이대통령은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국산 고등훈련기 ‘T-50’의 우수성과 T-50 수출에 따른 부대 효과를 강조했다. 이대통령의 이날 인도네시아 방문은 사실상 T-50 수출을 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통령을 수행한 인사에 당초 명단에 없었던 장수만 당시 방위사업청장이 포함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대통령은 정상회담 전에 관계자들로부터 “T-50의 인도네시아 수출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통령도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유도요노 대통령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이대통령의 설명에 대한 그의 대답은 “굿(Good). 그럼, 다음 의제는…”이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T-50에 대해서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는 듯 따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이대통령은 대단히 화가 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수만 청장 등 관계자들을 불러 “도대체 사전 의제 조정을 어떻게 한 것이냐”라며 한 시간 이상을 크게 질책했다는 후문이다. 이대통령이 T-50 수출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날 이대통령의 진노를 지켜본 정부 관계자들이 이후 T-50 수출 전략에 얼마나 집착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국방부와 외교부, 국정원 등이 ‘T-50 수출 전략’에 매달리면서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우리 정부는 지난 1월 인도네시아측에 “한국에서 양국 방산협력위원회를 개최하자”라고 제안했다. 2월14일 방한한 인도네시아 특사단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배려는 극진했다. 장관급으로 구성된 특사단에게 대통령 전용 2호기까지 내줄 정도였다. 우리 정부는 특사단측에 “T-50 외에도 다양한 군수 물자를 공동 생산하거나, 기술을 이전하겠다”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가격도 상당히 낮춰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특사단을 T-50 생산 라인이 있는 경남 사천의 KAI(한국항공우주산업) 공장에 데려가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방한이 있기 전 국내 국방안보 분야의 한 전문가는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조만간 T-50과 관련해서 좋은 뉴스가 있을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 보라”라는 것이었다. 이 전문가는 평소 정부의 T-50 수출 전략에 대해서 비판적 견해를 제시해 온 인사였다. 국정원측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월16일 오전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묵고 있던 롯데호텔 숙소에 국정원 직원이 잠입한 것은 양국의 방산협력위원회가 열린 직후였다. 당초 우리 정부측은 T-50 인도네시아 수출 가능성을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잠입’이라는 무리수를 감행한 데에는, 밖으로 희망적 메시지를 던진 것과는 달리 실제 내부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국방안보 분야 전문가는 “인도네시아가 자국의 방위 산업 발전을 위한 협력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현재 인도네시아는 수조 원대에 달하는 고등 훈련기를 사들일 만한 돈이 없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아직 인도네시아측으로부터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도 아닌 상태이다. 한마디로 아직 하나도 진행된 것이 없는데 우리 정부가 너무 조바심을 내고 덤벼들었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2월23일 정부의 한 관계자가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다른 무기에는 관심이 있지만, 당초부터 T-50을 구매할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괜히 우리끼리 난리를 치다가 일이 벌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 2007년 UAE측에 제출했던 T-50 수출 사업 제안서의 표지. ⓒ시사저널 임준선

 결국 ‘T-50 수출’에 대한 이대통령의 강한 집착이 이런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 정부의 지나친 성과 업적주의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체결한 원전 수주 계약에 대해 현 정부가 대대적인 홍보전을 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대통령 ‘세일즈 외교’의 승리라는 칭송가가 울려 퍼졌다. 당시 국정원의 한 관계자 역시 “앞으로 이명박 정부가 나아갈 방향은 세일즈 외교밖에 없다. 대통령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또 이를 통해 경제 발전과 국격 높이기라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전 수주에 이어 T-50 수출이 향후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논의…현 정부 초기엔 ‘무시’

 또 하나의 요인으로, 지난 2009년 2월 UAE와 거의 계약 성사 단계까지 갔던 T-50 수주전에서 이탈리아에 패한 데 따른 향후 책임론 등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3년간 2조원을 들여 2001년에 자체 개발한 T-50은 UAE를 첫 해외 수출 타깃으로 삼아 지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집중 공략해왔다. 이 과정에서 기종 선정의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는 UAE 모하메드 왕세자는 2006년 한국을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한국측에 상당히 호의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 역시 당시 장기적인 ‘한-UAE 산업 협력’ 안을 제시하며 이탈리아 기종보다 다소 가격이 비싼 약점을 공략했다. <시사저널>은 실제 우리 정부가 지난 2007년 10월 UAE측에 은밀히 제출한 영문으로 된 T-50 수출 사업 제안서를 확보했다. ‘사막의 기적을 위한 공동 산업 전략 2007(Joint Industrial Strategy 2007 For a Miracle of Desert)’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자료에는 총 1백41쪽의 분량에 걸쳐 ‘산업 협력을 위한 비전’ ‘항공 산업 개발’ ‘산업 협력’ ‘결론’ 등 네 항목에 걸쳐 자세하게 양국 간의 산업 협력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 자료는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명 ‘사막의 기적 프로젝트’로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된 후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논의되던 이 산업 협력 방안에 대해 시큰둥한 자세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한국 정부는 민간 산업 협력 부문에까지 강제적으로 한국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라는 식의 부정적 견해를 나타내면서 UAE측을 실망시켰다는 것이 당시 관계자의 귀띔이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이라는 비난이 군 주변에서 무성해지자 이명박 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이후 이대통령이 이를 직접 챙기고 나섰다. 청와대가 2010년 1월 수립한 연중 계획에 ‘T-50 수출을 계기로 대통령 주재 방산 수출 전략 대회를 5월에 개최한다’라는 계획을 세운 것만 보아도 이대통령이 여기에 얼마나 집착했는가를 알 수 있다(2010년 7월26일자 <시사저널> 보도). 이대통령은 폴란드와 싱가포르를 직접 방문해 T-50 세일즈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거나, 이탈리아에 또 패했다. 이런 상황이 현 정부가 인도네시아 수주전에 거의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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