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종교는 ‘기불천교’
  • 조진범│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1.03.0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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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주자들, 어떤 종교 가졌나 / ‘잠룡’들 대다수가 종교 묻는 인터뷰에 난색 표명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운데)와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맨 오른쪽)이 2007년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역시 차기 대선 주자들의 종교관이 무엇인지를 취재하는 작업은 대단히 험난했다. ‘잠룡’들이나 그 주변 측근들은 종교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말문을 닫았다. 그만큼 정치인에게 종교는 피하고 싶은 주제이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논리 정연하게 설명해도 후폭풍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믿음의 문제라 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특정 종교를 갖고 있는 정치인들은 종교 문제로 유권자들에게 항의를 받고는 한다. 표로 먹고사는 정치인들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권 주자는 더하다. 전 국민을 상대해야 하는 대권 주자들은 종교 문제에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최근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으로 촉발된 정치권과 개신교계의 갈등도 모른 척하기 일쑤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 전 대표는 종교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었다. 특별한 종교를 갖고 있지도 않다”라고 짧게 말했다. 마치 종교 문제를 왜 거론하는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박 전 대표에 이어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현재 2위를 달리고 있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정책개발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유원장측은 “정치와 종교를 주제로 한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다. 무슨 말을 하든 가십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유원장의 종교는 무(無)이다. 등장하고 싶지 않은 무대에서는 빼달라”라고 말했다.

유원장의 심정에는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유원장은 한때 ‘한국 교회’를 비판했다가 거센 반격을 받고 사과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지난 2002년 월간 <복음과 상황>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개신교는 예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골라가면서 한다. 기도는 골방에서 하라고 했는데 통성 기도하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드러내놓고 자선 행위를 한다. 얼마나 많은 교회의 설교들이 대중을 무지와 미몽 속에 묶어놓는가. 나는 교회가 무섭다. 종교는 무섭지 않은데 한국 교회가 무섭다”라고 밝힌 바 있다. 유원장은 2004년 총선에 출마하기에 앞서 한국 개신교계의 비난이 비등해지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지난날의 독선과 교만을 회개한다’라는 제목으로 해명과 사과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박 전 대표와 유원장뿐 아니라 다른 대권 ‘잠룡’들도 조용하다. 이슬람 채권법으로 불거진 정치권과 개신교계의 갈등에 대해 일절 말이 없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한 측근은 “종교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손대표가 무슨 종교를 갖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사실 정치와 종교의 문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 표면화되었다는 인식이 대체적이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역대 정부에서는 종교 문제로 갈등이 표출된 적이 거의 없다. 개신교 장로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천주교 신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도 정치권과 종교계가 맞부딪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은 개신교계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었다는 점에서 여파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개신교 장로인 이대통령은 대선을 치를 당시 당내 지지 기반도 크게 없었고, 조직도 취약해 개신교계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진단했다. 차기 대선 주자들에게 이명박 정부에서 나타난 종교 갈등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측면에서일까. 현재 거론되는 ‘잠룡’들은 향후 종교 문제로 크게 갈등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박 전 대표는 아예 ‘기불천교인’으로 불린다. 기독교(개신교), 불교, 천주교와 골고루 인연을 갖고 있다. 박 전 대표는 가톨릭 학교인 성심여고와 서강대를 다녔다. 세례도 받았다. 세례명은 ‘율리아나’이다. 법명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5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당시 주지였던 지성 스님으로부터 신라 27대 선덕여왕과 같은 ‘선덕화(善德華)’라는 법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불교 신자인 어머니 고(故) 육영수 여사의 영향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신학대에 입학한 기록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회창·오세훈·김문수 등은 천주교

▲ 손학규 민주당 대표(맨 왼쪽)가 2월27일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에서 열린 제92주년 3·1절 기념 한기총 및 한일기독의원 연합예배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위 사진).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이 지난해 5월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서 열린 생명의 강을 위한 불교·천주교·개신교·원불교 4대 종단 공동 기도회에 참가해 종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아래 사진). ⓒ연합뉴스

개신교, 불교, 천주교와 두루 인연을 맺은 박 전 대표는 지난 2004년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뒤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조계사에서 3천배하고, 명동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영락교회에서 회개의 예배를 드리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박 전 대표의 종교관을 분명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특정 종교에 심취했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차기 대선에서 내놓을 종교 정책도 없다.

정(政)·교(敎) 분리의 원칙을 가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특정 종교를 공략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개신교계가 이명박 대통령을 지원했다는 점에서 개신교를 공략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지만, 박 전 대표측은 단호히 부인한다. 이정현 의원은 “그런 것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손학규 대표는 개신교 신자로 알려졌지만, 불교와도 인연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천주교 신자이다. 세례명이 ‘스테파노’인 오시장은 정진석 추기경으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기도 했다. 김지사의 세례명은 ‘모세’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현재 천주교가 현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반면, 천주교 신자인 김지사는 적극 찬성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이밖에도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개신교,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천주교를 각각 믿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와 종교는 다르다. 개신교 신자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04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 당시 자신의 신앙에 대해 공격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만약 신앙에 기초해 결정을 내린다면 절대주의에 빠지게 된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지만, 신앙은 그 개념 자체가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다.”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잠룡’들이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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