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밟고 치솟는 물가, 고삐 잡아라
  •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 ()
  • 승인 2011.03.2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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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금리 인상 정책, 가계 부실 더 악화시켜…공급 측면에서 실마리 찾는 정책 기조로 바꿔야

 

물가 비상이다. 지난 2월 소비자물가가 4.5% 올라 정부의 억제 목표 3%를 크게 벗어났다. 문제는 생활필수품 가격의 급등이다. 국내의 한 대표적 유통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매일 접하는 78개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전년 동월과 비교해 9.4%나 올랐다. 신선 식품 가격이 30% 가까이 치솟아 생활필수품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 이는 물가 상승의 고통이 서민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구당 월평균 식품비가 60만원 수준이다. 부유층의 경우 총소득 대비 식품비의 비중은 극히 낮다. 따라서 식품비가 크게 올라도 충격이 별로 없다. 반면, 빈곤층은 총소득 대비 식품비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식품비가 조금만 올라도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예컨대 소득이 88만원인 임시직 가구의 경우 식품비의 비중이 70%나 된다. 이런 가구에 30% 수준의 식품 가격 상승은 사실상 생계 불안을 뜻한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물가 불안의 끝이 안 보이는 것이다. 구제역 여파로 축산물 가격이 급격한 상승세이다. 수급 불안으로 인해 농산물 가격도 계속 오를 전망이다. 더욱이 국제 곡물 가격의 상승이 국내에 반영될 경우 국수·라면 등 기초 식품 가격의 고삐가 풀린다. 여기에 전세난으로 인해 주거비마저 크게 오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전기·수도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을 잇고 있다. 서민 가계의 숨이 막힐 지경이다.

서민 가계의 물가 고통은 성장 위주의 정부 정책에 책임이 크다.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고환율·저금리 정책을 폈다. 이 정책 기조는 금융 위기를 맞아 더욱 강화되었다. 정부는 수출 증가를, 경제 위기 극복은 물론 성장률을 높이는 최선의 대책으로 간주해 달러당 1천1백~1천4백원 수준의 고환율 정책을 견지했다. 여기에 한국은행은 경제 불안을 해소하고 투자를 늘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2%까지 내렸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우리 경제는 빠른 시일 내에 금융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세를 회복했다. 지난해 우리 경제의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6.1%나 된다.

▲ 물가 점검에 나선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왼쪽)이 지난 3월1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 주유소에서 한진우 한국주유소협회장(오른쪽 두 번째), 주부모니터단 등과 함께 기름값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환율·저금리 정책, 대기업에게만 혜택

문제는 이러한 정부 정책이 대기업에게 혜택을 준 반면 서민층에게는 고통을 안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환율에 힘입어 대기업들의 수출은 날개를 달았다. 지난 1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수출 증가율은 47.1%이다. 품목별 수출 증가율을 보면 자동차 1백58%, 반도체 1백22%, 액정 디바이스 1백3% 등이다. 몇몇 대기업이 수출을 주도하고 경기 회복을 이끌고 있다. 반면 고환율로 인해 수입 물가는 급등세로 돌아섰다. 지난 2월 현재 수입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16.9%나 된다. 결국 고환율은 서민들에게 물가 고통을 강요하고, 그 대가로 대기업의 수출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저금리 정책도 유사한 결과를 낳았다. 대기업에게 저금리 정책은 감세, 규제 완화와 함께 주요 혜택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증권과 부동산 등 자산 가치를 높여 고소득층의 부를 증가시켰다. 반면 서민에게 저금리 정책은 대출이 늘어 빚더미에 올라앉는 화를 입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 부채는 사상 최대 규모인 8백96조원에 달한다.

더욱 큰 고통은 고용 없는 성장이다. 경기 회복과는 반대로 대기업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 주요 원인이다. 지난해 말 현재 종사자 3백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의 취업자 수는 1백95만2천명으로 전년보다 3만1천명 줄었다. 따라서 불완전 고용을 포함한 사실상의 실업자가 4백만명을 넘어섰다. 또 구직을 단념한 청년 실업자는 100만명을 넘었다. 이런 상태에서 원유와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이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폭발시켰다. 지난 2월 현재 국제원유 가격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31.4% 올랐다. 원자재 가격은 평균 32.7%나 올랐다. 특히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구리·알루미늄·니켈·밀·원당 등 주요 원자재의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결과 서민은 가계 부채와 실업의 수렁에서 물가 대란에 휩싸이는 3중의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해 ‘MB 물가지수’를 개발해 관리했다. 그러나 결과는 빈 수레이다. 52개 MB 품목의 평균 가격은 지난해 5.2%나 올랐다. 52개 품목 중 1년 전에 비해 가격이 오른 물품은 41개, 내린 품목은 8개, 변동이 없는 품목은 3개이다. 정부의 물가 억제 정책은 모순투성이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배추 대란이 다시 일어났다. 정부는 이상 기후로 원인을 돌리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한편 전세 대란이 일어나 서민들의 주거가 극도로 불안했다. 정부는 매년 이사철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전제하고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구제역이 발생한 후 육류값 상승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고기 소비 감소로 문제가 없다고 전제하고 병든 가축을 묻는 데 급급했다. 휘발유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자 대통령이 직접 시정을 지시했다. 지식경제부가 원가 계산을 직접 하는 등 문제 파악에 나섰으나 업계의 반발로 가격을 잡지 못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이 금리 정책이다. 금리 정책은 선제적으로 펼 때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크다. 이런 견지에서 금리 인상 정책은 지난해 경기 회복이 본격화할 때 미리 실시했어야 했다. 뒷북치기로 뒤늦게 금리를 올려 물가 안정 대신 가계 부실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 부채가 늘어 국내총생산의 80.6%에 이른다.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백53%나 된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자 가계의 이자 부담만 2조원이나 증가했다. 여기에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부동산 대출의 부실이 확산하고 있어 가계 부문과 금융 시장의 동반 붕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올라 물가·실업 동시 악화 우려

이번 물가 상승은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cost push inflation)의 성격이 강하다. 지난 2월 현재 6.6%나 오른 생산자 물가의 상승이 이를 입증한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우리 경제는 스테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져 물가와 실업이 동시에 악화되는 구조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러한 위기는 중국 경제 침체, 중동 정세 불안, 유럽 재정 위기 등으로 더블 딥이 나타날 경우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향후 우리 경제는 어떻게 물가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먼저 정부는 물가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5% 성장, 3% 물가라는 두 토끼 잡기 목표를 물가 안정 우선으로 바꿔야 한다. 그 다음 모든 대책을 동원해 전방위적인 물가 잡기에 나서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정부는 중간 상인의 폭리 취득 행위를 막기 위해 생활필수품에 대한 가격 감시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또 원유, 원자재, 곡물의 수입원을 다원화하고 정부의 비축 제도를 확대해 주요 품목의 수급을 안정시켜야 한다. 더 나아가 금리와 환율 정책도 성장 대신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물가 안정은 공급 측면의 안정에서 찾아야 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예측력을 높이고,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동시에 해외 에너지 및 원자재 개발과 식량 생산 기지를 대규모로 확보해 자급도를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소기업과 내수 산업을 살려 경제의 고용 창출 능력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 그리하여 물가가 올라도 근로자가 스스로 이겨내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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