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내 진심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3.2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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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신의 수인번호를 제목으로 한 자전 에세이집 <4001>을 발간해 큰 파장을 일으킨 신정아씨가 책 출간 후 처음으로 <시사저널>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신씨는 일부 유명 인사를 실명으로 거론한 책 내용과 관련해 이번 에세이집에 담지 못한 민감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다고 밝히고, 최근 언론 보도가 자신의 진심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와 곤혹스럽다는 심경도 내비쳤다.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2007년 여름 내내 대한민국은 이른바 ‘학력 위조 파문’에 휩싸였다. 유명 대학 교수부터 연예인까지 그동안 감춰져왔던 ‘학력 위조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대한민국의 학벌 위주 풍토가 적나라하게 확인되는 순간들이었다. 그 서막을 열어젖힌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신정아씨(39)였다. 당시 동국대 교수였던 신씨는 미국 예일 대학 박사 학위 소지자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학위가 위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신씨는 그해 10월 구속되어 2009년 4월까지 1년6개월 동안 복역했다.

신정아씨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염문설’로 옮겨붙으면서 폭발력을 더했다.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변양균씨와의 불륜 관계가 드러나면서 ‘신정아 파문’은 학계, 미술계에 이어 정치권까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권력’과 ‘치정’이라는 극적 요소가 한데 뒤얽히면서, 이를 바라보는 세상 모든 사람을 마치 관음증 환자인 양 몰아가기도 했다.

기자는 지난해 6월, 검찰의 핵심 인사로부터 신정아씨가 2007년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했던 진술 내용의 일부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신씨가 변양균 전 실장과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와 그녀의 숨겨진 가족사 등에 대한 얘기였다. 이후 기자는 신씨의 변론을 맡고 있는 김 아무개 변호사를 통해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변호사는 “신씨가 자서전을 준비 중이니 그때까지만 기다려달라”라고 했다. 그렇게 약 7개월을 기다린 끝에 지난 3월22일 신씨의 자전 에세이집 <4001>이 발표되었다. 

신정아씨의 책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신씨는 2007년 이후 4년 만에 또다시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는 무대 위로 올려졌다. 사람들은 다시 신씨를 찾느라 아우성이었고, 신씨는 다시 꽁꽁 숨고자 했다. 김변호사는 “신정아씨의 출판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정치권으로 파문이 일어서 지금 신씨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신씨의 책이 나오자마자 세간의 관심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국회의원 C씨 등의 부도덕한 언행에 초점이 맞춰졌다.

“책에 담지 못한 민감한 내용 굉장히 많다”

▲ “사실은 사실대로 얘기하고 내가 잘못한 부분은 더 혼 날 각오를 했다. ‘사건 속의 신정아’ ‘소문 속의 신정아’하고 완전히 이별하고 싶었다. 정 전 총리와 C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관련해 기사가 나올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 ⓒ시사저널 임준선

신정아씨는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책이 나온 뒤에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신씨는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서도 3월24일 저녁 6시에 기자와 만나 약속을 지켰다.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그녀는 “너무 시끌시끌해서 상당히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항상 내 진심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라는 심정부터 털어놓았다. “2007년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 같다”라는 말까지 했다.

2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자서전 출간 후 첫 단독 인터뷰에서 신씨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단호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기자의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말할 수 없다”라고 딱 잘랐다. 그러면서도 “책에 담지 못한 민감한 내용들이 굉장히 많다”라는 말로 책에 담긴 내용은 상당히 절제된 것임을 강조했다.

여전히 폭발력 있는 ‘뇌관’을 남겨두고 있는 셈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 차례 더 후폭풍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씨는 “참여정부 때 정치하라는 제안을 받았다”라는 비화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변양균 전 실장에 대한 감정, 가족들과 연락을 단절한 사연 등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3월22일 기자간담회 이후 어떻게 지냈나?

간담회가 열리기 전날 얼굴에 열꽃이 피고 두드러기가 났다. 내게 남았던 마지막 울화가 치밀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간담회장에 안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나갔다. 간담회 후 병원에 갔다가 집에 가서 저녁 약속에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정운찬 전 총리와 C의원 등에 집중된 기사가 터지면서 그날 저녁 약속도 취소했다. 그리고 계속 집 안에만 있었다. 밖으로 나갔다가 누가 알아볼까 봐 못 나갔다.  <시사저널> 인터뷰 때문에 오늘 처음 외출한 것이다.


애초에 이 책이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나?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이렇게 언론 보도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나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파문이 일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책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서전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나는 2007년 7월부터 지금까지 4001번(신씨의 수인번호)으로 살아왔다. 감옥에 있는 것과 집에 있는 것으로 공간만 바뀌었을 뿐이다. 너무 많은 콤플렉스가 생겼다. 루머나 소문도 나를 압박했다. 하루를 살아도 ‘신정아스럽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사실은 사실대로 얘기하고 내가 잘못한 부분은 더 혼 날 각오를 했다. ‘사건 속의 신정아’ ‘소문 속의 신정아’하고 완전히 이별하고 싶었다. 정 전 총리와 C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관련해 기사가 나올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신정아’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아, 사실은 이랬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읽어주기를 바랐다.


어떤 점을 특히 얘기하고 싶었나?

가장 억울한 부분이 ‘학력 위조’와 ‘꽃뱀’ 부분이다. 내가 학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학위를 내가 위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징역을 살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국대와 미국 예일 대학의 소송 결과에서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학력 위조와 꽃뱀이라는 부분을 털고 싶었다.


책에서 대부분 실명을 밝혔고, 일부는 익명으로 처리했다. 그 기준이 뭔가?

2007년 7월16일부터 4년 동안 썼던 일기로 된 오리지널 원고에는 전부 실명으로 되어 있다. 책에서 일부 익명으로 처리한 것은 법적인 문제를 고려해서였다.  


정 전 총리와 C의원, 전직 청와대 간부 등은 당신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책에 있지 않나.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정 전 총리와 C의원 외에 책에 담지 못한 사람들이 더 있나?

물론이다. 유명한 분들도 있다.


왜 책에 안 담았나?

이 책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폭로를 하거나 나쁜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그저 지난 4년간 4001번으로 살아온 신정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두 사람만 공개했나?

내가 2007년 검찰 조사를 받고 있을 때, 두 사람의 얘기 때문에 내가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당시 정 전 총리가 ‘서울대 교수직을 제안한 적이 없다’라고 하면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그래서 최대한 사실을 밝혀야 했다. 꼭 정 전 총리이기 때문에 (공개)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다. C의원에게서도 당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정 전 총리의 경우, 4월 재·보선 출마설과 이익 공유제 논란 등으로 요즘 언론의 큰 관심 대상인데, 공교롭게도 이 시점에 책이 나왔다. 정치적 의도나 혹은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것이 아닌가?

나는 정치적인 사안은 모르겠다. 이 책은 원래 지난해 8월쯤 나오려고 했다. 그것이 미루어지다 지난 설날 전에 나오려 했다. 하지만 책 표지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디자인하다 보니 늦어졌을 뿐이다. 지난해에 출판하려 했던 원고에도 정 전 총리와 C의원 얘기는 있었다. 


일각에서는 “유부남과 불륜 관계였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덕성을 운운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지적한다.

그 사람들의 도덕관념을 얘기한 것이 아니다. 당시 내가 거짓말쟁이로 몰린 것에 대해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부터 책 얘기를 좀 하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못했다. 감추고 싶은 것, 부끄러운 것도 조금씩 가려두었다’라고 했는데.

어떤 부분인지 말씀드릴 수 있으면 책에 썼을 것이다. 남들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얘기하지 않았다. 일부는 법리적인 문제 때문에 얘기하지 못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편집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책에 실었다.


책에 담지 못한 내용 가운데 민감하거나 큰 파문을 일으킬 만한 것이 있나?

물론이다. 그런 부분이 굉장히 많다.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어서 책에 담지 않았다.


변양균 전 실장을 ‘똥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부른 것은 성 때문인가?

그렇다. 내가 짓궂어서 ‘똥아저씨’라고 놀려먹기 위해 오래전부터 썼던 호칭이다. 다른 호칭들도 있었는데 ‘똥아저씨’가 편한 것 같아서 책에도 썼다. 사람들이 의도적인 만남으로 오해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면도 있다.


‘아빠였고, 친구였고, 한 남자’였던 ‘똥아저씨’에 대한 현재의 감정은 어떤가?

이 부분은 내가 가장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고, 기자들은 반드시 물어보는 질문이다. 그래서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책에도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인연이었지만 타의에 의해서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에서 마무리되었다.


‘내가 (2007년 9월16일 미국에서) 서울로 귀국하려 하자 노대통령은 한사코 나의 귀국을 반대했다고 한다’라고 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서 전해 들었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노대통령님 얘기도 책에 쓰지 않으려고 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고, 아직도 좋아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쓰는 것 자체가 누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7년 사건 당시 나에 대한 무궁무진한 배후설이 나오지 않았나. 그 배후설이 틀렸다는 점을 해명할 필요가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분향소에는 갔나?

그때 자유롭게 밖을 나다닐 처지가 아니어서 그렇게 못했다. 그 심정, 죽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심정을 나는 이해했다. 책에도 썼지만 오죽하면 그러셨을까 싶은 생각에 되게 참담했다. 비보를 듣고 마음이 아팠고, 지금까지도 마음이 아프다.


당시 청와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글쎄.


노 전 대통령이 당신에게 ‘홍보나 대변인 같은 일을 해도 잘하겠다고 하셨다’라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제안은 없었나?

참여정부와 연결되는 부분이니까 내가 굳이 말씀드릴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그 정부 시절 얘기니까, 민폐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신씨는 기자에게 갑자기 “제가 (홍보나 대변인) 소질이 있어 보이세요? 없어 보이세요?”라고 물었다. 기자는 “소질이 있어 보인다”라고 답했다. 신씨는 “그러면 ‘소질이 있어 보인다’라고 써 달라”라며 웃었다.)


‘내가 미술계 밖의 일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심지어 노대통령은 측근인 ‘모 의원’을 소개해주셨다.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남자’라며 여러 사람을 거론했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생각하는 당신의 사람은 내게 소개해준 의원이라는 것이 내 직관적인 느낌이었다’라고 했다. 그 ‘모 의원’은 누구인가?

말씀드릴 수 없다. 내가 좋은 이미지의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그 ‘모 의원’에게도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하고 나하고는 그 사실을 아니까 그러면 된 것이다. ‘모 의원’은 현재도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도 나와 연락한다. 아주 좋은 분이다. 


‘미술계가 아니라 더한 일도 할 수 있는 그럴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거절했다’라고 했는데, ‘그 기회’는 무엇인가?

참여정부 때, 정치 쪽이었는데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정치 쪽에 관심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내 전문 분야에서 연륜이 쌓이고 웬만큼 일했다고 생각했을 때 할 일이었다. 그때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미술계를 떠나 더 잘되었을지도 모른다.  


‘신정아 누드 사진’을 보도한 문화일보와의 민사 소송이 재판부의 조정 결과, 지난 1월 배상금 8천만원을 받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그런데 이번 출판 이후 문화일보에서 ‘신정아 사진은 진본’이라고 다시 주장했다.

조정으로 끝난 소송이었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해 책에서도 일체 내 주장을 싣지 않았다. 그런데 문화일보가 다시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기사를 보고서 정말 더럽고 구질구질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일각에서 당신의 책에 대해 대필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내 일기를 어떻게 남이 쓸 수가 있겠는가. 만약 내가 대필 작가를 내세웠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내가 워크홀릭(workholic : 일 중독자)인데 책을 인쇄하고 나니 허무하더라.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직장이 있으면 정말 소개시켜달라. 좋은 직장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소개시켜달라.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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