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 파고든 ‘3불 쓰나미’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1.04.0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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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불안·불만·불신 점차 높아져…잘못된 판단이 피해 키웠다는 여론 고조

 

▲ 지난 3월24일 후쿠시마 현 청사에서 한 어린이가 방사능 오염 여부를 검사받고 있다. ⓒAP연합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엘리펀트 맨(elephant man)>에서 주인공 존 메릭은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공포감을 느낀다”라고 했다. 지금 일본의 상황이 이와 같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파장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좀처럼 이해를 하지 못해 공포감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그동안 정부와 도쿄전력의 발표만을 믿었다. 원전 사고 초기만 해도 정부와 도쿄전력은 자신감을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미국 등 서방의 기술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위대, 경찰, 소방요원들을 투입시켜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방사능에 조금만 노출되어도 지극히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죽음의 사무라이들’이라고 불리운 이들이 투입되었을 때는 무언가 해결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도쿄전력의 가쓰마타 쓰네히사 회장은 방사성 물질이 누출된 지 20일이 지난 3월30일에야 “후쿠시마 제1 원전 1~4호기를 폐쇄할 수밖에 없다”라고 발표했다. 국민들은 뒤늦은 최악의 선택에 분노했다. 그간 극도의 자제를 보이면서 나눔과 배려의 숭고한 정신을 보여주던 사람들조차도 자제력을 잃기 시작했다. 초동 대응 조치가 미숙했고 잘못된 판단이 피해를 키웠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시달리는 시민들 불만 표출 늘어

불안·불만·불신이라는 이른바 ‘3불 쓰나미’가 일본 사회를 덮쳤다. 일상생활이 불안 그 자체이다. 물, 비상식량, 회전 전등, 마스크, 물티슈, 타월 등은 필수품이 되었다. 원전 주변에서 재배하는 시금치에서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었다. 사고 원전으로부터 2백40km 떨어진 도쿄 시와 치바 현 등에서까지 수돗물에서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되었다. 식수 문제로 자녀, 특히 영아들에게 식수를 먹이지 말라는 조치가 있자마자 도쿄 내 편의점의 생수가 동났다.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는 식수가 안전하다는 홍보 차원에서 직접 물을 마시는 퍼포먼스를 해 보였으나 이미 신뢰를 잃은 이후였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으로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생수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불안하기는 생선 먹기도 마찬가지다. 도쿄 주변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자 일상생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도쿄전력은 원전 사고로 전력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자 ‘계획 정전’이라고 불리는 절전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전기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생활과 업무에 많은 불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가정에서는 세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세탁을 하더라도 방사선 피폭을 우려해 외부에 빨래를 말리지 못한다. 특히 아이들의 옷은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다. 4월에는 비교적 날씨가 따뜻해 전기 공급을 제약하더라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에어컨 등 전기 소요량이 급증하는 여름철이 문제이다. 아톰 사의 무라이 사장은 “틀림없이 여름에 전기 부족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 가정용 발전기를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전 사태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계획 정전은 사무실 업무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무실 내 조명을 3분의 1 정도로 줄이고 조도를 낮추고 있다. 야간 테니스장 같은 시설에서는 조명이 사라진 지 오래다.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샐러리맨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계획 정전으로 전철 운행 횟수가 줄어들면서 지각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전기 공급이 제한되어 주어진 시간 내에 집중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식사를 못해 혈압이 떨어져 저혈압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까지도 나타났다. 스트레스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잦은 여진으로 지진 멀미 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상생활이 불안한 것은 직장인들뿐만이 아니다. 어린이들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부모들이 방사능 유출 걱정으로 아이들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자 실내에만 갇혀 있는 어린이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보육원에서는 물을 끓이지 못해 매일 물통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은행들도 ATM 코너의 가동 시간을 조정하고 있다. 미쓰비시 쓰미토모 은행은 3월22일부터 도쿄를 중심으로 무인 ATM 운용을 중지했다. 다른 은행들도 무인 ATM 점포를 닫고 있다.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 불안의 스트레스는 계획 정전보다 더욱 심하고 전방위적이다. 마스크 착용은 필수가 되고 있다. 방사능 유출 탓에 육지·바다·하늘 어느 한 곳 안전한 곳이 없다. 먹고 마시고, 이동하는 것, 심지어는 숨 쉬는 것에서조차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외부의 지원·배려에 눈뜨는 계기 되기도

▲ 3월27일 도쿄 시내에서 한 시민이 ‘핵 반대’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불안한 나날 속에서도 정부를 믿으며 인내해왔던 국민들의 불만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27일 반원전 구호를 외치는 1천2백명이 도쿄전력 앞에 모여들었다. “전력 부족은 거짓말이다. 피폭의 규제 수치를 낮추지 마라. 모든 원전을 폐쇄하라”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원전 사고와 방사능의 위험성을 뒤늦게 알려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로 내몬 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대신 그 자리에는 불안, 불만, 불신의 쓰나미가 밀려들고 있다. 일본인들은 지금 방사능 공포도 공포이지만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할지가 제일 두렵다고 말한다. 정보에 대해 회의를 갖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 언론의 보도 제한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사능 유출 문제 등도 심각하지만 당장 피해 지역의 피난민들에 대한 대책과 피해 지역 복구를 위한 재원 확보가 명확하지 않다. 국채를 발행하는 안과 세금을 인상하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안도 만만치가 않다. 재정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다시 국채를 발행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재정을 더욱 악화시켜 장기적으로는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편 세금을 올리는 방안 또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가계와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선택이 쉽지 않다. 게다가 4월 이후 도산하는 업체가 늘어날 것이며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어 경제 위기까지 덮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그런 만큼 국민적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간 나오토 총리의 리더십으로는 쉽지가 않다.

불안과 불만은 결국 불신으로 이어져 정신적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번 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가 일본 국민들이 일치단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특유의 집단의식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또 외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많은 나라의 헌신적인 지원을 통해 일본인들이 바깥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문화 속에서 살아온 일본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하지만 이번 대지진으로 외부 사람들의 따뜻한 지원과 배려에 새롭게 눈을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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