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스크린에 그려낸 그 눈부신 춤사위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4.1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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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를 필두로 무용영화 잇따라 개봉…<블랙 스완> 흥행 성공해 신작들 기대감 부풀어

순수 무용을 소재로 한 영화가 국내 시장에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지난 1월 현대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작품 ‘콘탁트호프’의 연습 과정을 그린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가 개봉되었고, 2월에는 발레를 소재로 한 <블랙 스완>이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오는 4월 말에는 발레를 소재로 한 <마오의 라스트 댄서>가 개봉된다. 이어 하반기에는 3D 영화의 영역을 예술영화로까지 넓힌 빔 벤더스 감독의 <피나>가 개봉될 예정이다.

발레는 순수 무용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장르이다. 할리우드에서도 비교적 자주 만들어진다. 하지만 실제 흥행으로 연결되기는 까다로운 장르가 무용영화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망명한 세계적인 발레리노 미하일 바르시니코프를 내세워 발레를 양념으로 치고 공산 국가에서의 탈출이라는 액션물 형식을 취한 <백야>(1985년)는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여세를 몰아 발레를 전면에 내세운 바르시니코프의 또 다른 주연작 <지젤>(1987년)은 흥행에 참패했다.

▲ ⓒ센브리지인베스트먼트 제공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빌리 엘리어트>(2000년)은 발레 영화로 불렸지만 탄광촌 아이의 성장 과정을 그린 발레 ‘연습’ 영화였다. 본격 발레가 등장한 장면은 마지막에 매튜 본 버전의 <백조의 호수> 중 도약 장면이다. 이 단 한 장면만으로도 국내에 매튜 본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커졌고, 매튜 본은 2003년 이후 네 차례나 같은 레퍼토리로 내한 공연을 펼쳤다. 매번 만석. 공연장이었던 LG아트센터 10년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으로 꼽히고 있다.

<마오의 라스트 댄서>의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은 발레 소재 영화의 흥행 사례를 눈여겨본 듯하다. 그는 영화의 축을 ‘빌리 엘리어트+백야’, 즉 망명을 불사하고 세계적인 발레리노로 우뚝 선 빈농의 아들 스토리로 세웠다. 

<마오의 라스트 댄서>, 춤 실력 볼만…3D 도입한 <피나>도 주목

영미 문화권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중국 출신 발레리노의 자서전이 영화의 원작이다. 주인공 리춘신은 1960년 중국 산둥 성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빌리 엘리어트처럼 발레 하나로 더 넓은 세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찾아 나서고 결국 미국에 망명해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인물이다. 이 사이사이에 <백조의 호수>나 슈트라우스의 <박쥐> <봄의 제전>이 삽입되어 눈을 즐겁게 한다. 주인공 리춘신 역의 츠차오는 영국 버밍햄 로열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발레리노로 영화 속에 배치된 발레 장면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블랙 스완>보다 한 수 위이다.

올 하반기에 개봉될 예정인 <피나>는 지난 2월 베를린 영화제에서 선보이고 유럽에서 먼저 개봉되어 크게 호평받았다. 이 영화의 감독인 빔 벤더스는 최근에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같은 예술영화로 호평을 얻었다. 그는 <피나>에 3D를 도입해 만화영화나 액션영화에서 머무르던 3D의 쓰임새를 확장시켰고 3D 완성도도 호평을 얻었다.

연초에 개봉된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는 피나 바우쉬의 레퍼토리 중 하나인 ‘콘탁트호프’의 메이킹 과정에 집중했다. 반면 <피나>는 피나 바우쉬의 대표 레퍼토리인 ‘봄의 제전’과 ‘카페 뮐러’, 말년작 중 하나인 ‘볼몬트’ 등 4개의 레퍼토리를 통해 2009년 세상을 떠난 피나 바우쉬를 스크린으로 불러냈다. 영화 <그녀에게>(2002년)에 삽입된 ‘카페 뮐러’와 ‘마주르카 포고’는 국내에서 피나 바우쉬의 인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이후 피나 바우쉬의 내한 공연은 늘 만석이었다. 3D로 부활한 피나가 국내 극장 무대에서도 통할지 지켜볼 일이다. 

 



준비되지 못한 이별은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것이 가족의 경우라면 고통은 배가된다. 민규동 감독의 신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제목 그대로 ‘헤어짐’, 특히 준비된 적이 없는 가족의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평범한 가정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였던 인희(배종옥)는 어느 날 말기 암 진단을 받는다. 남편(김갑수)은 어떻게든 그녀를 살려보려고 동분서주하지만, 남은 것은 예정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영화는 노희경 작가의 동명 원작 드라마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일상에 균열을 기도한다. 그리고 그 균열을 통해 서로에게 무심하던 가족이 서로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확인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민규동 감독은 원작의 뼈대 위에 밝은 화면 톤과 꽃, 달팽이 등의 CG, 약간의 코믹 터치를 더해 이야기에 생기를 입혔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폭풍 눈물’은 피할 수 없다. 영화는 소재적 한계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돌파한다. 피를 토하던 인희가 ‘나 죽나 봐’ 하며 남편을 잡고 오열할 때, 인희의 남편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방에 가두고 문에 못질을 할 때, 인희의 망나니 동생이 ‘누나가 좋아한다’라며 호두과자를 내밀 때, 그리고 인희가 시어머니를 향해 ‘같이 죽자’라고 말할 때, 영화는 눈물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한다. 누군가에게는 감동적인 순간이지만, 또 그 때문에 흔하디흔한 신파극이라는 평가에 직면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감독은 영화를 신파의 늪에 빠뜨린 채 허우적대는 길을 피했다. 일상적인 가족의 풍경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각자의 사정을 차곡차곡 담아가는 감독의 전략은 꽤 유효하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공들인 롱테이크 장면은 특히 돋보인다. 치매 노인과 가족 간의 실랑이, 철없는 아들의 여자친구 걱정 등으로 웃을 수 있는 순간을 배려한 각본도 영리하다. 소재와 이야기의 익숙함을 지워내는 배우들의 열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배종옥, 김갑수, 김지영 등 베테랑 연기자가 감독이 그린 이별의 풍경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눈물이 필요한 관객이라면 좋은 선택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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