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여풍’, 사법부 뒤흔들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5.0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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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판사 65.4%가 여성이고 위상도 점차 높아져…여성 법관 5분의 1은 외고 출신

 

▲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 2월28일 대법원에서 열린 판사 임명식에서 신임 판사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의 여풍(女風)은 오뉴월 서릿발보다 매서웠다. 우리나라 전체 법관 중 25.7%가 여성이다. 법관 일곱 명 중 세 명이 여성이라는 말이다. 연도별 신임 법관의 임용 비율을 보면 여풍의 현주소를 뚜렷이 엿볼 수 있다.

지난 2006년에 신임 여성 법관 비율이 60%를 기록하며 남성 법관을 추월했다. 2009년에는 역대 최대치(71.7%)를 기록했다. 지난해에 70.8%로 약간 주춤했으나 남성 법관과 차이가 많기는 비슷했다. 올해는 전년보다 약간 떨어진 65.4%를 차지했다. 이런 추세로 가면 향후 10년 이내에 전체 법관의 성비(性比)가 뒤바뀔 전망이다.

여성 법관의 숫자만큼 위상도 달라졌다. ‘금녀의 벽’을 처음 깬 이는 이영애 전 춘천지방법원장(현 자유선진당 의원)이다. 이 전 법원장은 1995년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여성 최초의 고법 부장판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질주는 거침이 없었다. 2004년 2월 춘천지방법원장에 임명되면서 또다시 ‘여성 최초의 법원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여성 최초의 헌법재판관은 2003년 8월에 탄생했다. 전효숙 당시 특허법원 부장판사가 헌법재판관에 임명되었다. 그녀는 또 2006년에 여성 최초의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되었으나 자격 논란으로 지명이 철회되는 불운을 겪었다.

2004년 8월에는 김영란 당시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현 국민권익위원장)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대법관에 임명되었다. ‘보수’의 상징인 대법원이 여성에게 문을 연 최초의 일이기도 하다.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에게도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여성 지원장은 김소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2005년에 공주지원장을 맡은 것이 시조다. 올해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영장 전담 판사로 이숙연 판사를 임명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여성 판사가 영장 판사에 임명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지금까지 사법연수원 1~40기에서 여성이 수석으로 졸업한 경우는 일곱 명이 나왔다. 여미숙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21기·총괄심의관)가 여성 최초로 수석을 차지한 이후 이경민 서울중앙지법 판사(37기), 정현희 서울동부지법 판사(38기), 강인혜 서울중앙지법 판사(40기) 등이 수석을 차지했다.

이은재 국회 법사위원(한나라당)은 "사법부에 여성 판사들의 숫자가 늘고는 있으나 주요 보직에는 여전히 남성 판사들 위주이다. 여성 판사들이 주요 보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대원외고·한영외고·명덕외고 순

여성 법관들 속을 들여다보면 변화가 무쌍했다. 여성 판사의 주도권은 이미 특목고 출신들에게 넘어갔다. 전체 법관들 중 특목고 출신이 2백56명(20.64%)이었다. 외고 1백29명(19.29%), 과학고 7명(1.05%), 국제고 2명(0.3%) 순이었다. 10위권에 외고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외고’의 득세가 뚜렷하다. 학교별로 살펴보면 1위에서 4위까지는 대원외고(41명), 한영외고(28명), 명덕외고(21명), 이화외고(16명)가 싹쓸이 했다. 5위인 은광여고(12명) 뒤에 대일외고(11명)가 간발의 차이로 다가선 형국이다. 전체 법관에 이어 여성 법관의 출신 고교에서도 대원외고가 최고 강자로 부상했다.

올해 임명된 여성 법관(연수원 40기)들도 마찬가지다. 80명 중 특목고 출신이 20명(25%)이었다. 외고 출신이 19명이고, 나머지 1명은 국제고 출신이다. 학교별로는 대원외고 6명, 대일외고·명덕외고가 각각 4명이었고, 한영외고는 3명이었다. 여성 판사들도 검정고시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전체 일곱 명으로 순위로는 19위에 랭크되었으나, 7위인 숙명여고와는 불과 세 명 차이이다.

 

 

여성 판사 출신 대학도 ‘SKY’가 주류

전국 4년제 대학 2백1곳 중 여성 판사를 배출한 대학은 31개교에 불과했다. 서울대의 독주는 여전했다. 전체 절반에 육박하는 3백15명(47.09%)이 서울대 출신이었다. 고려대(1백17명)와 연세대(60명)가 그 뒤를 따랐다. 경찰대도 두 명의 판사를 배출했다. 여자대학은 이화여대(57명)와 숙명여대(1명)가 유일했다. 출신 지역은 서울이 2백59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다음은 부산(52명), 전남(50명), 대구(46명) 순이었다.

사법부 내에 여성 법관들이 늘어나면서 해프닝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중앙지법은 ‘여성 배석판사들과 함께 근무하는 부장판사의 유의점’이라는 지침을 작성해서 여성 배석판사와 재판부를 구성하는 부장판사들에게 돌렸다. 여기에는 남성 부장판사가 여성 배석판사와 재판을 진행할 때, 회식 등에서 여성 배석판사를 배려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여성 판사가 급증하자 섣부른 오해나 불편한 상황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법원이 자구책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권위적이고 근엄한 법원 내부에서 나온 ‘성차별주의’ 문건이다 보니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해 조경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성차별이 은연중에 존재한다는 시각에 대해) 그렇지는 않다. 그보다는 세대 차, 즉 나이 든 법관과 젊은 법관 사이의 의식 차이에 대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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