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뉴월에 자살 사망자 많나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5.10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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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의 자살 현황 분석 / 30대 남성·충남·화이트칼라 ‘위험군’…경제 악재 반복이 주원인

 

ⓒ시사저널 전영기

우리나라는 약 30분에 한 명씩, 하루에 4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이다. 국민 10만명당 자살자가 28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11명)은 물론, 이웃 나라인 일본(19명)보다 월등히 많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망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자살자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시사저널>이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10년간의 자살 현황을 분석한 결과 10년 전에 비해 한 해 자살자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1999년에는 7천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는데, 2009년에는 1만5천여 명이 자살했다.

연령별 자살자 수만 따지면 60대 노인이 가장 많다. 자식들에 대한 부담감, 급격한 이농 현상, 경제적 빈곤, 신병 비관 등이 직·간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60대의 사망 원인은 자살보다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등이 많다. 반면, 질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작은 10~30대에서는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10대 사망자 10명 중 세 명, 20대는 네 명, 30대는 세 명 이상이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20대 여성 자살률 급증…“치열한 경쟁 탓”

임정수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자살자가 줄어들지 않는 원인을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경제 불황이 자살과 관련이 있다. 1990년대 후반 경제 위기, 2000년대 초반 카드 대란, 2009년 이후 금융 위기 등 경제 악재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자살이 끊이지 않았다. 젊은 사람의 맷집도 약해졌다. 작은 실패와 고통도 견디지 못하고, 회피하는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노인 자살이 많은 이유는 상부상조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옆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의논하고 돕던 관심이 실종되었다. 노인이 암에 걸렸다고 치자. 치료비는 없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고, 자신을 돌봐줄 사람도 곁에 없다. 우울증까지 심해져 자살을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특히 20대 여성들의 자살률이 증가한 점이 눈에 띈다. 1999년과 2009년을 비교하면, 남성 자살자는 10만명당 17명에서 25명으로 1.4배 늘었지만, 여성은 10명에서 25명으로 2.5배나 증가했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여성들이 사회 활동을 하는 경우가 늘면서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었다. 그 나이 때에는 사회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게다가 여성은 남성보다 좌절이나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20대 여성의 자살이 급증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층 자살도 심각하지만 한창 사회 활동을 하는 젊은 층의 자살도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초·중·고교 시절에는 일류 대학에 가기 위해 청춘을 희생한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취업을 위해, 취업 후에는 승진 때문에 고생한다. 목표를 성취하는 가르침은 늘 받아왔지만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자살자의 90%는 조울증을 경험한다. 조울증은 기분이 좋고 나쁜 상태가 반복되는 질환으로 20~40대가 전체 환자의 60%를 차지한다. 이런 상태에서 작은 요인이 촉발제로 작용하면 자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윤대현 한국자살예방협회 이사(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교수)는 “자살 예방을 의학적으로만 접근할 일이 아니다. 문학, 철학, 예술,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 또 조울증이나 우울증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예방해야 한다. 예컨대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자살자 유가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일반 가족보다 자살률이 4~10배 높다. 연예인 최진실과 최진영이 비근한 사례이다”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살 충동에 휩쓸릴 수 있다.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생각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고 생활할 때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목표 성취에 무게를 두지 말고 그 과정을 즐기는 태도도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죽고 싶을 정도의 위기에 봉착했다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생명의 전화, 자살예방센터, 정신보건센터 등 주변에 있는 관련 기관과 상담하면 새로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 중인 1백64개 정신보건센터(전화 1577-0199)로부터 24시간 정신 건강과 위기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한편, 부모는 자녀가 20~30대가 되면 다 컸다며 방치하다시피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가족 간에 대화 시간을 늘려 관심사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정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따뜻해져 감정 기복 심해지는 시기 ‘조심’

직업별로는 사무직 종사자의 자살률이 높다. 전체 사망에서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본 결과, 이른바 화이트칼라 사망자 10명 중 두 명이 자살자로 집계되었다. 농업·임업·어업 종사자는 한 명 미만으로 가장 자살률이 낮은 직군으로 조사되었다. 또 4년(2004~08년) 동안의 자살 실태를 살펴본 결과, 자살자 10명 중 두 명은 5~6월에 사망했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기온이 상승하면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시기여서 자살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충남(10만명당 38.8명)이며 가장 낮은 곳은 서울(10만명당 24.6명)이다. 충북과 강원도도 37명 이상으로 자살률이 높은 지역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자살률이 가장 낮다고 하지만 미국 뉴욕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임정수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남성이 여성보다, 노인이 젊은이보다 자살률이 높은데, 충청과 강원도 인구 구조가 그렇기 때문으로 유추할 수 있다. 또 같은 리(里)라도 전라도와 강원도가 다르다. 전라도에는 50~60가구가 모여 있는 반면, 강원도에는 5~6가구뿐이다. 개인 문제를 터놓고 얘기할 상대가 적은 것도 그 지역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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