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죽음의 땅, 유령 도시 되다
  • 최예용│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
  • 승인 2011.05.2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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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시민조사단 후쿠시마 사고 원전 답사 르포 / 피난민들, “집과 고향에 영영 못 갈 듯” 한숨

▲ 지난 4월16일 일본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60km 떨어진 화견산에 꽃이 만발했다. 방사능 농도가 평상시(0.05)의 70배인 3.36 마이크로시버트로 측정되었다. ⓒ최예용

어느 날 갑자기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일본 후쿠시마는 지금 심각한 방사능 오염으로 무거운 침묵의 봄을 맞고 있다. 4월13일부터 5일간 일본 원전 사고 현장을 방문한 한·일 시민조사단이 처음 방문한 곳은 소도시 이와키였다. 사고 원전으로부터 20~50km 떨어진, 지진과 쓰나미 피해에 더해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피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후쿠시마 현 해안가에 있는 기초자치단체이다. 사고 직후인 3월15~16일에 인구 34만명 대부분이 떠나는 바람에 지금은 유령 도시가 되었다. 4주차가 지나면서 피난민들이 조금씩 돌아오고는 있지만 아직도 3분의 1은 피난 나간 상태였다. 상당수는 아예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4월 초 학교 졸업식에도 나타나지 않은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가 일반 시민들의 방사능 피폭 한도를 20배나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재선 시의원으로 20년 이상 탈원전을 강조해 온 사토 카즈요시 씨에게 ‘현재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시민들의 방사능 피폭 누적량이 높아가자 일본 정부가 일반인의 방사능 피폭 허용 한도를 연간 1mSv(밀리시버트)에서 20mSv로 대폭 올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 수습을 위해 투입된 원전 노동자의 피폭 한도를 100mSv에서 2백50mSv로 2.5배 높인 바 있다. 의학적 판단에 의해 정해진 것인 줄 알았던 노출 기준이 실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일본에 와서 알게 되었다. 노출 기준이 의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원자력 산업계와 관련 행정 관료들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실제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원전으로부터 20~50km 사이의 핫스팟(hotspot: 고농도 오염) 지역이 문제가 되자 사고 발생 40일이 넘은 4월22일에야 추가 대피를 결정했는데 대피 기준이 누적피폭선량 20mSv였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었는데, 위원회는 어린이의 경우 방사능 노출에 취약하므로 대피 기준을 10mSv로 제시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이 때문에 일본 시민단체들은 일본 정부의 대피 기준이 어린이와 시민들의 건강을 보호하지 못한다며 서명 운동에 들어가는 등 항의하고 있다. 원래의 노출 한도인 1mSv와 이번 대피 기준인 20mSv 사이에 있는 오염 지역이 사고 원전으로부터 반경 30~60km에 있는 고리야마 시와 후쿠시마 시 등 대도시를 포함한 후쿠시마 현 대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환경 및 산업보건단체와 학계 전문가 등 여섯 명으로 구성된 한·일 시민조사단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지역 일대를 다니며 방사능을 측정했다. 상황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도쿄의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일본팀과 합류한 후 공항 주차장에서 처음 방사능을 측정해보았더니 0.24uSv(마이크로시버트)로 자연 상태인 0.05uSv의 다섯 배 정도에 해당하는 오염도를 보였다. 후쿠시마 현으로 다가갈수록 오염도는 올라갔다. 사고 원전으로부터 60km 이상 떨어진 후쿠시마 시내 주택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텃밭의 토양에서 최고 6.33uSv의 대기 중 방사능 농도를 보였다. 시내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의 대기를 측정한 결과도 3.65uSv였다.  

후쿠시마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산인 하나미야마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주말인 5월14일 오전 많은 시민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길가 대기 중 농도는 4.13uSv로 연간 노출 허용치의 40배 정도였다. 고리야마 시는 사고 원전으로부터 50km나 떨어진 곳이지만 시내 대기 중 방사능 농도가 1.0uSv를 넘었다. 이러한 조사 내용은 사고 원전으로부터 30km 이내만이 아니라 후쿠시마 현 전역이 높은 농도의 방사능에 오염된 것을 보여준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을 넘기면서 시민들의 방사능 노출 누적 선량이 연간 허용치의 두 배를 넘기는 심각한 상황이다.

안전하다고만 말하는 정부를 믿기 어려워 도쿄에서 의학 전문가를 초청해 이와키 시에서 강연회를 열었는데 4백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 “후쿠시마는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지역입니다. 원전 사고에 의한 방사능 공포가 계속되자 시민들의 의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느낍니다.” 사또 의원이 전하는 후쿠시마 시민들의 여론이다.

“쓰나미는 이겨내도 원전 피해는 감당 못 해”

▲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60km 밖에 있는 고리야마 시에 있는 피난소(위)에서는 2천명의 난민이 생활하고 있다. ⓒ최예용

전반적으로 후쿠시마 시민들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하나미야마로 꽃구경을 나온 한 시민은 “방사능 오염이 심각하지 않은데도 언론이 너무 과장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다수 시민이 사고 초기의 공포에서 벗어나 일상의 생활로 돌아간 듯이 보였다. 하지만 주택 지역을 돌아보면 적지 않은 집들에 커튼이 내려져 있고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한·일 시민조사단은 후쿠시마 시와 고리야마 시 두 곳을 방문해 피난민 대피소를 둘러보았다. 두 곳 모두 원전 인근에 살던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 때문에 외부로 대피한 ‘원전 피난민’ 수용소이다. 고리야마 시 피난소의 경우 시 체육관에 2천여 명이 수용되어 있었다. 지하보도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노숙자들의 생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종이 박스를 펼쳐 두르고 담요를 바닥에 깔아놓은 것이 전부였다. 지치고 피곤한 모습들이었지만 질서는 잘 지켜지고 있었다.

화장실 입구에까지 종이 박스 집이 만들어져 있지만 화장실 냄새가 나거나 바닥이 지저분하지 않았다. 1994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에서 만났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도시인 쁘리파티 시 피난민들이 떠올랐다. 사고가 난 지 8년이 지난 때였는데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었다. 후쿠시마 피난민들에게서도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후쿠시마 원전 피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진과 쓰나미 피해는 힘을 내서 이겨 보겠는데 원전 피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 집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 아니냐?’라고 한숨지었다. 

공해병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름이 미나마타 병이다. 미나마타 병 발병 50주년을 맞아 2006년 미나마타 현지를 방문했을 때 수십 년간 수은 오염 때문에 취해진 어업 활동 금지 조치가 해제되어 여기저기에서 낚시와 조업이 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50년이 지나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금단의 땅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공해병의 대명사 미나미타와 ‘제2의 체르노빌’ 후쿠시마는 가장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이룬 지구촌 경제 대국 일본에 붙여진 어두운 이름들이다.

한국도 일본과 같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면서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로 평가받는다. 원자로가 네 개에서 여섯 개씩 집단적으로 모여 있는 한국의 영광, 고리, 월성 그리고 울진이 제2의 후쿠시마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는 후쿠시마 사태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고리야마 시의 원전 피난소에서 만난 한 피난민이 필자 일행에게 한 말이 귀에 생생하다. “원전은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희생을 만듭니다. 한국에 탈원전 네트워크를 만들어 원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활동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후쿠시마의 교훈입니다.”

한·일 시민조사단은 지난 5월11일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현장 탐사 보고대회를 열었다. 일본 원전 사고에서 교훈을 얻어 현실적인 원전 사고 대비책을 세울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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