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회사 지존’ 넘보는 현대모비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5.2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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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가치는 이미 ‘세계 최강’ 일본 덴소 앞질러…지능형·친환경·IT 부품 개발도 ‘착착’

▲ 현대모비스 진천 공장에서 내비게이션을 검사하는 모습. ⓒ현대모비스

일본 자동차업체 도요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기업이 덴소(denso)이다. 덴소는 세계 시장에서 1, 2위를 차지하는 일본의 자동차 부품회사이다. 이와 비슷한 한국 업체는 현대모비스이다.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이 회사는 올해 세계 시장 10위권 진입을, 2015년까지 톱 5를 목표로 삼았다. 설립한 지 10년이 된 현대모비스는, 더 나아가 설립한 지 60년이 넘은 덴소를 따라잡을 기세이다. 매출에서 두 배 이상 차이가 나지만 현대모비스의 기업 가치는 이미 덴소를 따라잡았다. 현대모비스 시가총액(5월12일 기준)은 3백30억 달러(36조원)로 덴소(2백88억 달러, 한화 31조원)를 앞질렀다. 시가총액은 상장된 총 주식을 시가로 합산한 금액으로 성장성, 수익성, 안정성을 반영한다. 시장이 성장성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현대모비스를 덴소보다 높이 평가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시장 대비 상대 수익률도 50%를 넘어 덴소(9.1%)를 앞섰다. 현대증권은 최근 자료에서 ‘해외 수주 증가, 첨단 전장 부품 증가, 친환경 자동차 매출 증가, 한·미 FTA, 한·EU FTA 반사 이익 등으로 앞으로 10년간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다. 향후 5년간 연평균 순이익 성장률은 20%에 달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현대·기아차의 판매가 세계 시장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호조건이다. 미국 시장 점유율이 10%에 육박했고, 유럽 시장 점유율은 5%를 넘었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인 <오토모티브뉴스>는 지난 3월 ‘일본 지진 이후 현대모비스가 일본을 넘어서려고 한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매체는 2007년에는 세계 50대 자동차 부품업체 가운데 매출 증가율 3위로 현대모비스를 꼽았다.

향후 5년간 연평균 순이익 성장률 20% 전망

▲ 자동차에서 현대모비스 부품 위치를 나타내는 모형도. ⓒ현대모비스

최근 일본 지진과 도요타 자동차 리콜 사태는 부품업체인 덴소에 악재로 작용하는 등 여러 가지 분위기가 현대모비스에 이롭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덴소의 노부아키 카토 사장은 최근 일본 현지 언론을 통해 “회사에 미친 일본 지진의 여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 전망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 여파를 극복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이다”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가 60~100세가 된 세계적인 기업들을 넘볼 정도로 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사후 관리(A/S) 부품 공급을 제때에 맞추려는 노력이다. 과거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에서 차를 팔기만 할 뿐 A/S를 하지 않는 기업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를 산 미국인이 부품을 교체하려면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부품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장윤경 현대모비스 홍보상무는 “지금은 미국 앨라배마와 로스앤젤레스 두 곳에 물류센터가 있어서 부품을 공급하는 데 이틀을 넘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2002년부터 중국·호주·러시아 등 20곳 이상에 모듈·부품 법인을 두고 있다. 현지에서 부품을 공급하면서 해마다 물류 비용 5백억원을 절감하는 효과도 나타났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대모비스는 다른 자동차 부품회사보다 두세 배 정도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면서 지난 5년 동안 덴소보다 세 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지난 10년이 현대모비스가 기반을 다진 기간이라면 앞으로 10년은 도약하는 시기이다. 이 회사는 지금을 창립 이래 최대 위기로 보고 있다. 서경수 현대모비스 이사는 “현대·기아차가 고급 자동차 시장에서 분투하고 있다. 부품 품질이 현대·기아차의 생명인 셈이다. 이에 맞추어 고품질의 부품을 생산해내지 못하면 아무리 친정 기업이라도 내쳐질 수 있다. 지금이 최대 위기이다”라며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현대모비스가 시가총액뿐만 아니라 매출에서도 덴소를 제치고 업계 1위에 오르려면 크게 세 가지 숙제를 풀어야 한다. 우선, 품질 혁신이다. 이 회사는 올해부터 2015년까지 GTQ 프로젝트를 실현하기로 했다. GTQ(Global Top Quality)는 세계 최고 품질을 의미하는 영문 약자이다. 완성차에 들어가는 부품 자체의 결함을 줄이고, 부품 내구성을 높이기로 했다. 두 번째는 첨단 부품 개발이다. 현대모비스는 섀시, A/S 부품, 전장 부품 등 다양한 부품을 생산하지만 외국에 로열티를 받고 팔 수 있을 만한 핵심 기술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지능형·친환경·IT 부품을 개발하는 데에 전력투구할 계획이다.

지능형 부품은 자동차가 차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자동으로 조절하거나, 주차를 자동으로 하거나,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해주는 시스템 등이다. 친환경 부품을 개발하는 데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 선보이기 시작한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휘발유 엔진이 아니라 전기를 이용해 주행할 수 있어서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다. 또, 화석연료 고갈 시대에 대비해서라도 연료전지를 개발하는 것은 자동차 부품업체의 절대 과제이다. IT 부품이란 전자 기술이 접목된 부품을 말한다. 과거의 자동차가 기계식이었다면 미래의 자동차는 전자식이다. 예컨대, 코너를 돌 때 자동차 네 바퀴의 브레이크가 각각 따로 작동한다. 급브레이크가 걸리는 쪽이 있는가 하면 느슨하게 제동되는 바퀴가 있어서 자동차가 원심력에 의해 차선을 이탈하지 않도록 한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2009년 현대오토넷을 합병해 자동차에 들어가는 칩(chip)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LG화학과 자동차용 연료전지 개발을 시작했다. 앞으로도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는 줄이지 않을 예정이다. 현대모비스는 올해 투자비 1조1천억원 중에 3천억원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기로 했다. 연구 인력도 대폭 늘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 자동차 기업의 우수 인력과 외국인 임원도 스카우트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의존도 낮춰야

또 한 가지 넘어야 할 산은 현대·기아차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생산한 부품 대부분을 현대·기아차에 공급했다. 현대모비스의 매출은 현대·기아차가 얼마나 팔리느냐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번 기업이라는 혹평도 따랐다. 현대모비스는 크라이슬러 자동차에 장착될 섀시를 공급하고, 다른 자동차회사에도 램프와 오디오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쳇말로 돈이 되는 주요 부품은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부 핵심 부품의 샘플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간간이 받는 정도이다. 이런 기회를 생산, 판매로 연결하는 것이 현대모비스의 몫이다. 현대모비스는 해외 수주 비율 7%를 2020년까지 20% 이상 늘려 현대·기아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계획이다.

한편, 덴소는 경영 목표를 ‘신뢰’에 두기로 했다. 덴소는 <시사저널>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면서, 고객과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이 되는 것이 덴소의 목표이다”라고 밝혔다. 최근 지진으로 일본 자동차와 부품 생산에 대한 세계 시장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덴소는 1949년 도요타 자동차로부터 분리된 후 자동차, 자동차 부품 등을 생산해왔다. 한국에도 덴소판매㈜를 운영하는 등 세계 35개국에 1백87개 지사를 두고 있다. 종사자 수는 12만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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