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과 기업에 자리 뺏긴 축제 놀이는 커지고 ‘대동’은 밀렸다
  • 김회권 기자 · 이규대 인턴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05.2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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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축제, ‘아이돌’ 공연 트렌드까지 생겨 더욱 현란…일부는 비용 충당하려 철저한 상업주의 표방

▲ 지난 5월13일 서울 신촌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연세대 응원단이 주최한 ‘harmony in yonsei’ 행사가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고려대 학보사 ‘고대신문’에서는 지난 1997년 대학 축제를 비판하고 실종된 대동 문화를 되찾자는 취지의 특집 기사를 낸 바 있다. 당시 ‘새내기의 눈에 비친 대동제’라는 기사에서 “대다수 학생들은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응원단(입실렌티) 공연 외에는 도처에 널린 일일주점에서 ‘교주 아닌 교주’인 막걸리 마시기에만 열을 올린다”라고 지적했다. 또 “그나마 ‘민중문화제’나 ‘학술제’ 같은 행사들은 열린 공간에서 밀려나 안내 게시물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고대신문’은 재학생 2백50명을 대상으로 ‘대동제 의식 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의 절반 이상(53.3%)은 ‘대동제 기간을 친구들과 개별적으로 보낸다’라고 답했다. 대동제 행사 참여 열기가 낮은 이유로는 △대중적 구심점의 부재(35%) △틀에 박힌 행사(24.5%) △일방적인 행사 기획(17.2%) 등을 꼽았다.

14년 전 그들이 고민했던 대학 축제는 2011년에도 비슷한 맥락으로 비판받고 있다. ‘아이돌’ 공연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긴 오늘날 대학 축제는 더욱 현란하고 화려해졌다. 반면 ‘지성’과 ‘낭만’은 반비례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축제를 기획하는 학생들은 매년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즐겁게 놀면서 생각도 공유할 수 있을까?’ 반면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학생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쌓는 데 정신이 없다. 취업 전쟁은 학생들을 도서관으로 떠민다. 요즘은 ‘소동(騷動)’을 부려 ‘대동(大同)’을 꾀하는 대학 축제 때에도 도서관 눈치를 보아야 한다. 지난 5월25일 서울대 축제 둘째 날, 도서관과 마주한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는 ‘관악 딴따라들의 음악 잔치’인 ‘따이빙 굴비’가 열렸다. 소동을 꿈꾸는 아마추어 밴드들의 향연은 어슴푸레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시작되었고, 첫 번째 순서로 무대에 오른 밴드의 보컬은 마이크를 잡고 도서관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도서관에 계신 분들, 오늘은 축제입니다. 괜찮으시죠?”

1990년대 들어 거세진 대중문화와 상업주의는 대학 내에서 어쩔 수 없는 일상으로 굳어졌다. ‘대동제’라는 취지는 크게 하나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 되기 위해서 ‘상업주의’나 ‘연예인’을 수용하느냐 추방하느냐를 결정해야 했다. 대학들의 대세는 ‘수용’이었다.

지난 5월17일, 한양대는 인산인해를 이루며 들썩거렸다. 한양대 축제의 전야제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을 보려고 지역 주민들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까지 출동하면서 난리가 났다. ‘우리 학교 축제에 f(x)가 오다니’, ‘전야제가 소시에 딱~’. 연예인들의 등장을 알리는 총학생회측 현수막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날이었다.

한양대 축제의 라인업은 환상적이었다. 소녀시대, YB, f(x), 김범수 등 요즘 한 인기 한다는 가수들이 한양대 축제를 위해 뛰었다. 학생회비만으로 감당하기 불가능한 출연진이었다. 한양대 총학생회측은 “무대 비용과 섭외 비용 모두 교비에서 이루어졌다”라고 밝혔다.

▲ 이날 걸그룹 달샤벳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각 기업, 홍보 부스 차려 마케팅 열 올리기도

한양대 축제는 ‘확실한 상업주의’를 선택했다. 학교 내에는 광고 부스가 설치되었다. 기업들은 학내에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했다. 게임회사 피망은 밀리터리룩으로 치장한 인원들을 동원해 자신들의 대표 게임인 ‘스페셜 포스’ 홍보용 부스를 차렸다. 자동차 회사 쉐보레는 DJ 파티를 열기 위해 무대를 설치했다. 스피커로 새어나오는 클럽 음악이 교정을 때렸다. 그 한쪽에는 시승용 소형 세단인 ‘AVEO’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전야제 무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관전하고 있던 화학공학과의 한 학생은 이런 기업 홍보 부스가 당연하다는 눈치였다. “예전부터 기업 부스는 죽 있었는데 이번에는 총학생회가 협상을 잘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세대 총학생회는 5월11일부터 13일까지 ‘2011 무악대동제’를 개최했다. 축제의 모토는 ‘청춘예찬’.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 백양로 등지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한 학생 밴드들이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청춘은 어설픔도 용서한다지만 무대 아래 관객들에게까지 그 어설픔이 용서받지는 못했다. 지인이 아니라면 5분을 집중하지 못하는 관객이 대부분이었다. “아는 사람 나온다고 해서 와봤다.” 한 여학생은 팔짱을 낀 채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반면 프로들의 무대인 5월13일의 아카라카. 연세대 노천강당을 가득 메운 파란 티셔츠의 학생들은 2NE1, YB, DJ DOC, 정엽 등 인기 가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환호했고 그 열기는 축제의 마지막 날을 달구며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이제 막 끝난 올해 대동제의 지출을 짐작해보려면 지난해 결산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세대 총학생회가 공개한 2010년 대동제 결산 내역을 보면 총학생회가 주최한 무악대동제에 사용한 지출은 8천23만원 정도이다. 이 가운데 학생회비는 1천만원에 불과하다. 학교가 지원한 교비가 2천5백만원, 기업의 찬조금이 2천4백50만원, 주류 판매로 얻은 수입이 2천만원 정도이다.

연예인들이 총출동하는 연세대의 명물 ‘아카라카’는 총학생회가 아닌 응원단에서 따로 예산을 집행한다. 2010년 아카라카의 총 지출액은 1억2천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 중 가장 큰 비용은 역시 연예인 섭외비이다. 지난해 DJ DOC, 싸이, 애프터스쿨, 타이거JK&윤미래 등을 부르는 데 5천7백50만원을 사용했다.

한양대처럼 학교가 전폭적으로 모든 비용을 치러주거나 연세대처럼 응원단 행사 때문에 총학생회에서 굳이 연예인을 불러도 되지 않는 것은 특별한 경우이다. 대다수 대학은 축제 예산에서 연예인 섭외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부담을 느낀다.

▲ 지난해 5월17일 한양대학교 축제가 열린 서울 캠퍼스에서 자동차회사의 이벤트 행사장에 학생들이 몰려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재미’ 앞세운 현실론과 자성론 해마다 충돌

예를 들어 동덕여대는 지난해 축제에 학교 지원금 1천100만원, 총동문회 지원금 100만원 등을 포함해 3천9백여 만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 중 가수 아이비, 거미, 언터쳐블 등 섭외 비용이 1천6백만원이었다. 고려대 역시 지난해에는 고대 응원제 ‘입실렌티’ 외에도 대동제에 출연할 연예인 섭외비로 1천4백만원을 별도로 사용했다.

대학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결국 ‘무엇’으로 흥겨워질 수 있느냐에 모인다. 함께 즐길 수 있는 흥겨운 행사를 만들고 싶은 것은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나 참여하는 사람에게나 한결같은 욕심이다. 그래서 해마다 행사 규모는 커지고 화려해진다. ‘어쨌든 축제는 재미있어야 좋지 않나’라는 현실론과 ‘대학이 무언가 달라야 하지 않나’라는 자성의 목소리는 해마다 충돌한다. 하지만 이내 현실론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최고 인기 대중 스타가 출연하는 호화 무대는 총학생회 입장에서 거부하기 어려운 요구이다.

“50%이다.” 장윤배 충남대 총학생회장은 “학생회 사업에서 축제의 비중이 절반 정도 차지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책적으로 무엇을 잘하고 잘못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한데, 요즘은 축제로 학생회를 평가하는 경우가 대체적으로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무리하게 연예인 관련 예산을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압박감을 토로했다.

건국대 총학생회 집행부에서 일했던 이수정씨는 2009년 학교 축제를 기획하며 쉽지 않은 고민을 해야 했다. 축제를 처음 준비하는 이들이 대다수여서 일단 시행착오가 많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파편화된 학생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아이디어가 없다는 점이었다. 등록금과 학점 걱정은 잠깐이라도 접어두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이씨는 연예인 중심의 대학 축제 문화를 결코 반기지 않는다. “연예인 중심의 축제 문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새로운 대학 축제 문화를 각 책임 단위별로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축제를 앞두고는 ‘연예인’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다른 구성원들과 ‘다른 부분에 예산을 더 배치하기 위해 지출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연예인을 부르자’라고 결정했다. 보통 연예인을 부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직접 기획사에 연락을 하거나, 하드웨어(무대)를 설치하는 대행사를 경유하는 방법이다. “결국 대행사를 통해 2AM과 소울다이브를 섭외했다.”

현실적으로 연예인을 부르기 어려운 학교도 적지 않다. 특히 수도권과 거리가 먼 지방 대학일수록 섭외가 어려운 편이다. 스케줄 사정상 지방까지 내려가기 어렵다며 기획사 쪽에서 튕기기도 한다.

예산 문제도 걸림돌이다. 일단 몸값이 많이 올랐다. 부산에 있는 한 대학의 총학생회 관계자는 “불과 2년 전 4백만원이었던 2인조 그룹에게 예전 축제에서 반응이 좋았던 기억이 나 올해 다시 문의해보니 출연료가 1천만원이 넘어가 있더라”라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총학생회 관계자는 “2NE1이나 샤이니는 2천만원 정도였고, 재미있어서 인기 있는 UV도 1천3백만원 정도로 비싼 편이었다”라고 밝혔다.

몸값이 올랐다면 예산이 그만큼 더 필요하다. 하지만 지방 대학은 서울보다 기업 협찬금을 끌어오기가 어려워 축제 예산 확보가 어렵다. 한 지방 국립대의 총학생회 관계자는 “서울에 있는 주요 대학들이 1천만원 단위로 기업 지원금을 받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번에 다 합쳐서 1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도 물품 지원이다”라고 말했다.

▲ 지난 5월19일 대동제가 열리고 있는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문화관 1층에서 학생들의 참여로 5·18 관련 사진전과 환경미화원의 하루 일상을 담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등록금 투쟁 중에 수천만 원 펑펑” 지적도

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질수록 역설적으로 더욱 외부의 지원이 간절해진다.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을 외부에서 찾게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캠퍼스를 소재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기업에서 벌이는 대학생 이벤트이다. 최근 기아자동차가 장학금을 내걸고 5개 대학에서 실시했던 ‘슈퍼스타K5’ 이벤트는 여러 지방 소재 대학에서 유치하기 위해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현란한 무대, 재미를 좇는 축제. “그런 것들을 무조건 나쁘다고 보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잖아요.” 경원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경원대는 아이유, 2NE1, 케이윌, 세븐, 싸이, DJ DOC 등 올해 최고의 ‘후덜덜(거리는) 라인업’을 선보였다. 경원대 축제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었다. 경원대 축제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다른 편에는 등록금도 비싼 판에 이런 행사는 과하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었다.

인기 연예인이 출연하는 무대, 기업들의 홍보 부스,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한 대학생들의 ‘어설픈’ 공연들. 지금 5월의 대학 축제는 ‘대동’을 고민하는 갖은 방법들이 한데 뒤엉켜 있다.


 움트는 ‘변화’…“초라해 보일지라도 우리 힘으로 하겠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올해 축제를 준비하면서 ‘축제 때 함께하고 싶은 가수’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축제 예산은 대략 5천만원 정도. 생각보다 빠듯했다. 일단 학생회비를 선별 납부하도록 한 뒤 학생회비 수입이 줄었고, 올해 축제에서는 기업의 협찬을 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학우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축제이니까 유명 연예인을 보고 싶다’라는 의견도 있었고 ‘아예 안 불러도 괜찮다’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UV나 <나는 가수다>의 출연진을 선호하는 의견이 많았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고민 끝에 박성광, 스윗소로우 등 적정한 출연료를 제시한 연예인을 섭외했다. 섭외 비용을 줄이면서 ‘비록 초라할지 몰라도 우리 힘으로 해보자’를 선택했다.

이처럼 대학 축제를 둘러싼 비판이 증폭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숙명여대에서 3년째 축제를 기획하고 있는 전혜경씨는 “가수를 부르는 것에 대해 언론들이 비판하는 것은 대학생들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돈 없이도 자체적으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을 못 찾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충남대는 ‘돈 없이 노는 법’을 골똘히 궁리했다. 일단 예산이 넉넉하지 못했다. 연예인들에게 15~20분 공연 값으로 수천만 원을 지불하는 것은 재정 형편상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우리끼리 하자’였다. 장윤배 충남대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연예인 섭외 비용으로 책정된 비용이 2천만원에 불과했다. 차라리 이 돈을 학생들 장학금으로 사용하면, 당장은 불만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머리를 쥐어짰다. 일단은 참여형 행사를 늘렸다. 동아리에게 공연의 기회를 듬뿍 안겨주었고 외국인 학생들이 함께할 행사도 만들었다. 의외로 대박이 난 곳은 자체 조성한 ‘클럽’이었다. 나름으로 내부에 조명도 갖추고 스모그도 피우며 클럽 분위기를 내려 노력했는데 자체 성공의 기준점이었던 하루 100명을 훌쩍 넘는 8백명이 입장했다. 전구를 이용한 조명 건축물 축제인 ‘루미나리에’도 지역 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부산 지역 총학생회도 축제의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부경대 총학생회는 무대 예산에서 20%를 줄여 장학금으로 사용하기로 했고, 부산외국어대도 가수 섭외비를 1천만원 정도 줄여 축제 때 열릴 자체 공모전 상금으로 쓰기로 했다. 이런 움직임은 내부의 자성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외부 환경 때문에 선택되기도 한다. 부산에 있는 한 대학의 총학생회 관계자는 “사실 연예인을 부르는 것이 가장 편하다. 하지만 학우들이 원하는 연예인의 경우 비용이나 시간이 안 맞아 섭외하기 어렵다. 차라리 장학금 등으로 전환해 명분과 실리를 다 취하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변화는 조금씩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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