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처럼 패스하고, 맨유처럼 득점하라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06.15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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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전·가나전 잇단 승리에서 엿보는 ‘조광래식 만화 축구’의 현재와 미래

▲ 김영권. ⓒ연합뉴스

조광래호가 유럽과 아프리카의 강호를 상대로 한 평가전에서 내실 있는 승리를 거두었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6월3일 세르비아, 7일 가나를 상대로 한 국내 평가전에서 모두 2-1로 이겼다. 비록 상대가 최정예 멤버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한국 축구가 늘 맥을 추지 못했던 국가들을 상대로 얻은 승리라 그 의미가 각별하다. 무엇보다 내용 면에서 조광래 감독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선수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능력이 만화에서나 가능한 것처럼 복잡하고 어렵다는 데서 ‘만화 축구’로 명명된 조광래 축구가 현실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닮은 미드필드 운용

현재 세계 축구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바르셀로나 축구이다. 그 핵심은 역삼각형 미드필더 포진에 있다. 공·수 밸런스를 조율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을 포백 수비 위에 배치하고 그 앞에 활동량이 많고 공격적인 두 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한다. 바르셀로나에 대입하면 꼭짓점에는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그 앞에는 챠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 이니에스타가 나선다.

아시안컵 때까지만 해도 조감독은 이와는 반대의 미드필더 포진을 구성했다.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기성용, 이용래)와 한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구자철)를 두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한 명만 둘 경우 안정감이 부족해 경기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덕분에 조광래호는 볼 점유율은 많이 가져갈 수 있었지만 공격에서는 다양한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또한 일본과 같은 미드필드 플레이가 수준급인 팀을 상대로 해서는 강점이 먹히지 않았다.

아시안컵 이후 조감독은 바르셀로나식 미드필드 운영을 위한 변화를 준비했다. 핵심은 기성용이었다. 공격적 재능이 뛰어난 기성용에게 상대 공격 차단, 포어체킹을 통한 압박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역할을 주문했다. 소속팀 셀틱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부여받기 시작한 기성용은 빠르게 변신했고, 이번 평가전 2연전에서 자신의 몫을 1백20% 수행했다. 조감독은 세르비아전을 치른 뒤 “기성용을 숨은 MVP로 뽑고 싶다. 완벽한 투사로 변신했다”라고 평가했다.

기성용의 앞에는 이용래와 김정우가 배치되었다.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구자철이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뒤 팀 내 경쟁에서 밀려 출전 시간이 줄어들자 조감독은 K리그에서 공격수로 변신해 매서운 골 감각을 발휘하던 김정우를 중용했다. 본래 중앙 미드필더인 김정우는 K리그에서의 변신 덕에 처진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자유자재로 오갔다. 구자철은 가나전에서 후반에 투입되어 극적인 결승골을 기록했지만 김정우의 등장으로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조감독이 경남 FC 시절부터 애제자로 키운 이용래는 가장 많은 활동량을 보이며 공격과 수비에 부지런히 가담하는 중간자적 역할을 맡았다.

조감독은 이번 평가전을 앞두고 미드필더들에게 드리블을 줄이고 빠른 전진 패스를 시도할 것을 주문했다. 볼 점유율이라는 허울 좋은 수치에 만족하기보다는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대표팀은 우세한 볼 점유율을 유지하면서도 공격 주도권을 확실히 잡는 성과를 보였다.

맨유처럼 공격 포지션 파괴한 ‘제로톱 공격’

▲ 지난 6월7일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지동원 선수(왼쪽)가 첫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감독은 공격에서는 또 다른 흐름을 주목했다. 최근의 축구는 중앙과 측면 공격 포지션에 적합한 선수를 고정으로 세우던 과거의 개념을 파괴하고 있다. 최전방에 덩치 큰 공격수를 세우고 측면 돌파와 크로스 등으로 돌파하는 단조로운 공격을 지양했다. 좀 더 복잡한 움직임과 다양한 포지션 플레이가 이어져야 한다. 중앙과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만능 공격수로 하여금 경기 중 수시로 서로의 위치를 바꾸는 무한 스위칭을 통해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제로톱 공격이 그것이다.

제로톱 공격은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를 분쇄하고 득점 기회를 만드는 확실한 원톱이 없는 시스템을 말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웨인 루니와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투톱, 혹은 박지성이 가세한 스리톱을 내세우는데 세 선수 모두 1백80cm가 안 되는 평범한 체격이지만 넓은 활동 반경과 민첩한 움직임, 뛰어난 기술, 전술적으로 준비된 플레이로 많은 골을 뽑는다. 바르셀로나 역시 최전방에는 1백68cm의 리오넬 메시를 세우고, 왼쪽에는 1백75cm의 다비드 비야, 오른쪽에는 1백69cm의 페드로 로드리게스가 선다. 과거의 전술 선호에 따르면 스트라이커 역할을 소화하는 비야가 중앙에 서고 드리블과 스피드가 뛰어난 메시가 측면으로 나와야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그런 구분을 짓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전방의 공격수가 위치를 바꾸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제로톱 공격을 가동했다. 최전방에 박주영, 오른쪽에 이청용을, 왼쪽에는 이근호와 지동원을 세르비아전과 가나전에 각각 선발 출전시켰다. 특히 가나전에서 박주영, 지동원, 이청용의 스리톱을 세우고 경기 내내 포지션을 바꿔가며 상대 수비진을 흔들었다. 조광래 감독은 “왼쪽 측면에는 순간적으로 최전방 공격에 가담해 스트라이커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선수를 기용했다”라며, 지동원과 이근호가 사실상 제2의 스트라이커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박주영은 순간적으로 2선과 측면으로 빠져 최전방으로 들어가는 지동원, 이청용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는 역할도 맡았다.

조광래 감독은 가나전 승리로 두 차례의 평가전을 마친 뒤 “결과는 100점이었다. 수비의 조직적인 밸런스를 강화하고 상대 진영 깊숙이 찔러주는 패스의 정확도를 더 높이는 것이 남은 숙제이다”라고 말했다. 조광래호는 오는 9월2일 3차 예선 첫 경기를 시작으로 브라질 월드컵을 향한 대장정에 돌입한다. 결과와 내용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한 그만의 만화 축구가 대한민국의 월드컵 본선 8회 연속 진출로 이어질지에 관심이 모인다.


 ‘포스트 박지성’과 ‘포스트 이영표’의 성적표

조광래 감독이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한 박지성과 이영표의 후계자를 찾는 것이다. 아시안컵 이후 네 차례의 평가전(터키, 온두라스, 세르비아, 가나)을 통해 시험에 오른 선수들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 포스트 박지성군

지동원 9점-스트라이커지만 활동 폭이 넓고 영리한 선수. 조광래 감독은 지동원을 측면에 세워 경기 중 박주영과 계속 스위칭시키는 전술로 박지성의 공백을 메우고자 한다.

이근호 7점-올림픽 대표팀부터 함께한 박주영과 호흡 ‘척척’. 측면에서도 빠르게 적응 중.

김보경 6점-박지성이 자신의 후계자로 직접 거론했을 정도로 테크닉이 뛰어나다. 지동원, 이근호와 달리 측면과 중앙을 훑을 수 있는 미드필더. 가나전 후반 43분에 교체 출전했다.

▒ 포스트 이영표군

김영권 8점-센터백이지만 조광래 감독의 요구로 왼쪽 풀백을 소화 중이다. 온두라스·세르비아·가나전에 선발 출전했다. 세르비아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공격력도 자랑했다.

홍철 5점-풀백이지만 오버래핑과 왼발 킥이 뛰어나 윙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박원재 4점-2008년 허정무호에 잠시 승선한 뒤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하다 소속팀 전북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최근 복귀했다. 가나전 후반 44분에 김영권을 대신해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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