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접촉’에 냉풍 맞은 남북 관계
  • 진희관│인제대 통일학연구소장 ()
  • 승인 2011.06.2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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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만남’ 시점·내용 두고 의혹만 불거져 비난 여론 확산…향후 기류에도 상당한 악영향 예고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586군부대(정찰총국) 지휘부를 시찰하고 있다. 김정일 왼쪽이 김영철 정찰총국장, 오른쪽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연합뉴스

대북 정책의 투명성을 주창해 온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비밀 접촉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더욱이 어느 때보다 안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시점에서 ‘돈 봉투’까지 건넸다는 북한의 폭로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단지 북한과 ‘비밀 접촉’을 한 사실 자체만 가지고 현 정부를 비난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외교 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것이 비밀 접촉이며, 좀 더 엄격히 표현하면 ‘비공개 접촉’이라는 표현이 맞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이번 남북 비공개 접촉에서 불거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은 향후 남북 관계에서 상당한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먼저 현 정부는 이번 비밀 접촉에 대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한 회담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장 “그렇다면 더욱더 떳떳하게 공개회담을 개최해서 풀어나가야 하지, 비공개로 만날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다”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과를 받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사과를 가장한 ‘거래’를 하기 위한 만남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돈 봉투를 건넨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과거 김대중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북한에게 현금을 보낸 일로 인해 사법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현행 남북교류협력법과 외환관리법 위반에 해당되며, 마땅히 이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법률적으로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접촉 시점과 함께 우리측의 제안에 대해서도 다분히 졸속적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의 비공개 접촉이 5월9일 이루어졌고, 곧바로 5월10일 오후(독일 현지 시각으로는 9일 오후) 베를린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에 ‘진전된 제안’을 제시했다. 즉, 9일의 비공개 접촉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시점에 이미 독일에서의 제안은 계획되어 있었던 셈이다. 비공개 접촉에서의 성과 여부도 확인이 안 된 상황에서 미리부터 언론에 ‘중대 제안이 있다’는 식의 행동을 보인 것은 경솔했다는 지적이 제기될 만하다. 이는 비공개 접촉 날짜인 9일보다 앞서서 또 다른 접촉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낳게 한다.

북한과의 접촉에 나선 우리측 대표가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과연 청와대의 대외전략비서관이 나서야 할 만큼의 일이었는가이다. 비공개 첫 접촉이라면 정보기관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런데 청와대 비서관이 참여한 것은 한꺼번에 어떠한 성과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현 정부의 조급함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대북 강경파’ 비서관이 대표로 나선 것도 의혹

▲ 지난해 2월 대북 정책 성과 및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한 토론회에서 기조 연설을 하는 김태효 대통령실 대외전략비서관. ⓒ연합뉴스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인물이며, 이러한 인물이 중요한 비공개 접촉의 대표로 참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기피 인물일 수도 있는 이명박 정부 ‘매파’의 상징적 인물인 김태효 비서관을 회담 대표로 내세웠다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 자체에 남한 정부가 과연 진정성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부터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심하게 말하면 판을 깨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판단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이번 남북한 비공개 접촉은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졸속성으로 인해 오히려 향후 남북 관계에 상당한 악재를  예고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비공개 접촉에서 우리측의 주장과 이후 우리의 대응 자세는 북한으로 하여금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행동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즉, 우리측에서 북한과의 비공개 접촉을 먼저 흘리는 (김희정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5월18일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하는 문제에 대한 정부의 진의가 북측에 전달되었다”라며 비밀 접촉 자체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등 금기를 깨버린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폭탄 발언’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 역시 남북 관계를 더욱 위태롭게 몰고 가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북한이 녹취록을 공개하겠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남북 관계는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형국이 되고 있다. 사태는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으며, 우리 정부는 ‘공개할 테면 해보라’라는 식의 반응이다. 이렇게 된다면 북한은 공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갈 것이며, 남북 관계는 막장으로 치닫는 ‘치킨 게임’에 다름 아니게 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 지난 2007년 10월2일 평양시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만난 남북한 정상. ⓒ연합뉴스

결국 북한에 의한 녹취 내용 공개는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과거 냉전과 대립의 시기에도 남북한 간 비공개 접촉이 당국에 의해 폭로된 바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에서 현 사태를 대단히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이와 같은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은 남북 관계의 험난한 노정을 예상케 하고 있다.

대다수 북한 전문가는 “사실상 현 정권하에서 남북 관계가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라는 점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을 가졌던 것은, 올해가 북한이 주장해 온 바와 같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 제끼겠다’라고 해 온 2012년의 바로 직전이라는 점에서 무언가 대북 지원을 염두에 두고 대화 제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 추석 즈음까지 실마리가 풀린다면 북한도 숨통을 트고, 남북 관계는 개선되며, 우리 정부의 대북 입지는 좀 더 강화되어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가져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가능했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 남북의 자세는 이러한 희망들을 모두 앗아가고 있다. 지난 5월30일 북한의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의 문장을 보면 과거와 같은 ‘조건문’이 아니라 ‘단정문’으로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계속해서 어떠한 행동을 한다면’이라는 조건문의 형태가 빠져 있으며, 이는 이제 대남 정책에서 남측의 변화 유무와 무관하게 강경 노선을 택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6월1일자 ‘폭로’의 마지막 문장은 한 가지 암시하는 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와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라는 입장 표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데서 남한을 배제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중국·미국 등의 주변국과의 대화는 지속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제 남북 간의 관계 변화는 이미 이명박 정부 다음 정권의 몫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점점 더 굳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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