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감 즐기며 암벽과 완벽 ‘합체’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7.1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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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클라이밍 세계 제패한 ‘작은 거인’ 김자인씨
▲ 스포츠 클라이밍 세계 챔피언인 김자인씨가 서울 수유동에 있는 노스페이스 연습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시사저널 전영기
스물두 살의 대학생, 1백53cm-42kg의 작은 체구. 김자인(고려대·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은 스포츠 클라이밍의 여제라고 불린다. 

지난 7월14일 김자인은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스포츠 클라이밍 월드컵대회 리드 부문에서 공동 우승했다. 지난 4월 중순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IFSC 스포츠 클라이밍 월드컵대회 볼더링 부문에서 정상에 올라 여자선수 가운데 세계 최초로 리드와 볼더링 우승을 동시에 석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샤모니에서 올 시즌 처음으로 열린 리드 대회에서 예선 2회, 준결승과 결승에서 모두 완등하며 최종 우승했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주 종목인 리드 부문에서 5개 대회를 연속 우승했던 김자인은 이로써 월드컵대회 리드 부문 6회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김자인이 뛰고 있는 분야는 실내 암벽 등반이다. 선진국에서는 프로스포츠로 자리 잡은 분야이다. 국내의 클라이밍 인구는 10만명 정도이고, 국내 실내 암벽장은 2백40개 소이다. 실내 암벽 타기는 어느덧 실내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1988년 정식으로 국내에 도입되었지만 세계를 제패한 것은 김자인이라는 작은 거인의 평지돌출이었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가 그랬듯이.

산악 등반 마니아인 아버지 영향 받아 초등학교 6학년 때 입문

클라이밍은 리드와 볼더링, 스피드 세 분야로 나뉜다. 이 중 김선수의 전공은 리드이다. 리드란 자일을 몸에 묶고 등반하는 것이다. 볼더링은 두 발과 신체만을 이용해 암벽에 매달린 작은 돌을 디딤판 삼아서 올라가는 경기이고, 스피드는 말 그대로 정해져 있는 루트를 누가 빠른 시간에 올라가느냐를 놓고 겨룬다.

리드와 볼더링 분야를 동시에 제패한 것은 김자인 말고는 1999년 프랑스 출신 여자 선수가 유일하다. 지금 김자인은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것이다. 오는 7월21일에는 클라이밍계의 오스카 상으로 불리는 락레전드어워드의 ‘라 스포르티바 컴피티션 상(La Sportiva Competition Award)’ 시상식이 열린다. 당연히 김자인도 후보인데, 세 명의 후보 중 김자인이 온라인 투표에서 과반에 가까운 지목률을 보이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프랑스 대회 출전을 앞두고 서울 수유동 다이노월 연습장에서 만난 김자인은 여유가 넘쳤다. 작고 호리호리해 보이는 몸매였지만 암벽에 매달리는 순간 그의 팔과 다리 근육은 잘게 찢어지며 운동으로 단련된 시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김자인이 산악 등반에 뛰어든 것은 태생적이었다. 산악 등반 마니아인 그의 아버지는 2남1녀에게 산과 관련된 이름을 지어주었다. 큰 아들 김자하는 산악 장비인 자일과 하켐에서 한 글자씩 따왔고, 둘째 자비의 ‘비’는 카라비나에서 따왔다. 자인의 ‘인’은 인수봉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김자인은 브라질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한국 생활을 접고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을 때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김자인의 부친은 인수봉을 잊지 못해 다시 귀국했다.

김자인이 클라이밍에 입문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5년이었다. 처음에는 겁이 많아서 만날 울었다고 한다. 그런 김자인을 암벽장에 계속 도전하게 만든 것은 막내 특유의 샘이었다. 먼저 암벽 등반에 입문한 큰오빠와 작은오빠를 보고 ‘나도 오빠만큼 잘할 수 있다’는 오기로 도전한 것이다. 김자인은 “오빠들이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를 한다는데, 멋있고 부럽고 그랬다”라고 말했다.

지금 이 오빠들은 나란히 김자인 선수와 함께 세계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샘쟁이 막내는 국제 대회 성적에서 이미 오빠들을 추월했다. 이번 프랑스-이탈리아 대회 투어는 삼남매가 동시 출전하는 마지막 대회가 되었다. 큰오빠 김자하씨가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군에 입대하기 때문이다. 그는 “큰오빠가 코치 겸 선수로 뛰면서 배려를 해주었다. 둘째오빠는 먼저 군대를 다녀와서 올해 선수로 재등록했다. 이제는 둘째오빠가 보디가드를 해줄 것 같다”라며 웃었다. 김자인에게 큰오빠는 코치였고, 둘째오빠는 운동 파트너였다. 세 명 모두 주 종목은 리드이다. 

“작은 체격이 불리하지는 않아” 2014 아시안게임 시범 종목 포함되어 ‘기대’

▲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 주고 운동하는데, 그 몰입감이 너무 좋다. 추락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안전 장비도 다 차고, 안전하다는 것을 아니까 전혀 안 무섭다.” ⓒ시사저널 전영기

김자인은 “일단은 가벼워야 하지만, 키가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안 좋다”라고 말했다. 여자는 1백62~1백63cm 정도의 키가 적당하고 남자는 1백75cm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근력은 운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늘게 되기에 문제가 안 된다고. 오히려 크고 작은 부상이 문제이다. 김자인도 손가락 마디마디에 찾아온 직업병(관절염) 때문에 정형외과를 자주 찾고 있고 어깨 부상 때문에 2008년 한 해 동안 시즌을 거른 적도 있다.

스포츠 클라이밍이 무섭지는 않을까. 어떤 매력이 김자인을 스포츠 클라이밍으로 이끈 것일까.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 주고 운동하는데, 그 몰입감이 너무 좋다. 굉장히 힘들지만 완등했을 때 엄청나게 짜릿하다는 점, 그것이 좋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올라갔을 때는 밑을 보지 않는다. 추락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높이가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든다. 추락을 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떨어지는 순간만큼은 무서울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안전 장비도 다 차고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아니까 전혀 안 무섭다”라고 말했다.

김자인 선수의 소속사인 노스페이스 산악지원팀의 이재용 팀장은 “스포츠 클라이밍은 일반인도 할 만한 스포츠이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클라이밍이 특별히 위험하다는 선입관이 문제이지 접해보면 어려운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집중력을 요구하는 전신 운동이자 다이어트 운동이다”라고 스포츠 클라이밍을 소개했다.

지원팀이 보는 김자인의 전성기는 향후 적어도 3년 이상이다. 국내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층도 김자인을 롤 모델로 삼아 성장세가 가팔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8 대 2 비율로 남자가 많았지만 요즘은 남녀 선수 비율이 5 대 5 정도이다. 이재용 팀장은 “20년 전과 10년 전을 놓고 비교해보면 국내 스포츠 클라이밍의 발전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남자 선수의 세계 기록은 중·상위권, 여자 선수 분야는 김자인 덕분에 단숨에 월드 클래스로 치고 올라갔다.

클라이밍이 일반인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것도 스포츠 클라이밍계를 고무시키고 있다. 이재용 팀장은 “한 자리에서 움직임과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사이클이나 러닝 같은 경우 움직임만 있지, 함께하는 사람 간에 소통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실내 암벽장에서는 5~15m의 암벽을 반복적으로 오르면서 소통과 움직임을 함께한다.      

김자인은 지금 이탈리아 아르코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의 볼더링·리드 부문에 출전하고 있다. 7월24일부터는 리드·볼더링·스피드 각 부문별로 세계 랭킹 상위 네 명만 출전할 수 있는 왕중왕전 ‘락 마스터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실내 암벽 등반은 오는 2014년 아시안게임 시범 종목에도 포함되어 있다. 리드와 볼더링, 스피드 3종목 모두 채택되었다. 이변이 없는 한 김자인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두 개 따낼 것이다. “적어도 서른 살까지는 현역 생활을 하고 싶다”라는 김자인은 그 뒤에도 클라이밍과 관계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중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기 전에도 김자인은 깜짝 놀랄 만한 재능으로 스포츠 클라이밍이라는 스포츠를 우리 눈앞에 끌어다주었다. 

작은 거인 김자인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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