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도전하는 ‘복제약’ 개발 선두 주자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8.03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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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 세계 최초로 바이오시밀러 시판…10년 들인 공, 보상으로 돌아와

▲ 서정진 회장 1957년 충북 청주 출생1977년 제물포고등학교 졸업1983년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1983년 삼성전기 입사1986년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1991년 대우자동차 기획재무부문 고문2002년 넥솔바이오텍 창업2009년 셀트리온·셀트리온제약 대표이사 회장 ⓒ뉴스뱅크

바이오 약품 개발회사인 셀트리온(celltrion)은 내년부터 돈방석에 앉는다. 세계 최초로 바이오시밀러(biosimilar)를 시판하기 때문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의 복제약을 말한다. 복사하는 것이 대수일까 싶지만, 살아 있는 동물 세포를 이용하는 기술과 첨단 설비도 필요하므로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또 바이오시밀러를 만든다는 사실은 독자적인 신약 개발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할 정도로 큰 성과이다.

경력과 무관한 업종으로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궈

그 성과를 낸 서정진 회장은 낭중지추 같은 인물이다. 마흔의 나이에, 그것도 자신의 경력과 무관한 업종으로 창업해 10년도 되지 않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으니 말이다. 그는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평범한 샐러리맨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서른 초반에 대우자동차 임원으로 고속 승진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아 회사가 휘청거리면서 그는 1999년 졸지에 백수가 되었다. 집에서 눈칫밥을 먹는 생활을 견디기 어려웠던 그는 퇴사 직원 12명과 작은 사무실을 마련했다. 놀더라도 직원들과 모여 놀자는 심산이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시기에 “바이오 산업이 뜰 것이다”라는 지인의 말에 서회장의 동물적 감각이 꿈틀거렸다.

세계 자동차 시장 규모가 5백조원 남짓하던 시기에 제약 시장은 1천조원이었다. 한국 경제가 세계 10위 정도이므로 세계 제약 시장에서 10%를 점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이오 약품을 공부했고, 1년 동안 40여 개국으로 귀동냥을 떠났다. 수백 명의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바이오 산업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나를 믿어준 직원들이 회사 살렸다”

▲ 2009년 9월16일 세브란스병원과 ㈜셀트리온이 공동 연구 협약서를 체결했다. ⓒ뉴스뱅크

2002년 인천 송도 땅에 넥솔바이오텍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대형 제약사의 바이오 약품을 위탁 생산하는 일을 시작했다. 화학 약품과 달리 바이오 약품은 동물 세포를 이용하므로 세포 배양 시설이 필요했다. 수천억 원을 투자해 2003년 설비를 갖추었다. 돈 버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이오’의 ‘바’ 자도 모르는 사람에게 일감을 맡길 제약사는 없었다.

2006년 적자액이 2백65억원을 넘어서자 사기꾼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자살을 결심한 그는 차를 몰고 북한강으로 향했지만 15일만 더 살아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창업 초기 자본금 6백억원 중에 1백30억원을 마련해준 사람들이 직원들이었다. 사촌의 팔촌에까지 손을 벌려 긁어모은 종잣돈이었다. 그런 직원들에게 최소한의 보답을 해야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서회장은 “돈은 참 이상하다. 필요할 때는 돈을 주려는 사람이 없고, 필요 없을 때는 앞다퉈 돈을 주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돈이 필요한데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어려워서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우리 임원들의 자녀는 유치원도 못 갈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그 사람들이 나를 믿고 따라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셀트리온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한 미국 제약사와 10년 동안 관절염 치료제를 위탁 생산하는 계약을 맺었다. 2007년 6백35억원의 첫 매출을 일으키고 단번에 흑자로 돌아섰다. 연 매출이 2008년에 8백36억원, 2009년에 1천4백55억원으로 성장하더니 지난해에는 1천8백억원을 넘어섰다. 올해 매출 목표는 2천9백억원이고, 그 이후부터는 조원 단위로 수직 상승할 기세이다.

매출이 급상승한 비결은 바이오시밀러에 있다. 서회장은 지난 8년 동안 다른 제약사의 약을 대신 만들어주고 번 돈을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쏟아부었다. 내년에 그 결실을 본다. 유방암 치료제(허셉틴)와 관절염 치료제(레미케이드)의 복제약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허셉틴은 스위스 로슈, 레미케이드는 미국 존슨앤드존슨과 셰링프라우가 특허권을 앞세워 판매하는 약품이다. 허셉틴은 2009년 세계에서 5조원, 레미케이드는 7조원을 벌어들인 블록버스터급 제품이다.

그 특허권이 2013년 소멸하므로 누구나 복제약을 만들 수 있다. 그 선두에 서회장이 있다. 유방암 및 류마티즘성 관절염과 관련된 전체 시장은 30조원 규모이다. 서회장이 창업 초기에 예상한 대로 10%만 점유해도 셀트리온은 세계적 제약사로 도약한다. 그는 “임상시험을 거치고 있는 바이오시밀러는 세계적으로 3종뿐인데, 그중에 2종을 센트리온이 해냈다. 임상시험이 마무리되는 올해 말쯤 세계 각국에 시판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내년 초부터 세계 30개국 시장 선점에 돌입한다”라고 밝혔다.

바이오 약품은 화학 약품에 비해 부작용이 적지만, 화학 약품에 비해 수십 배 또는 수백 배 비싼 것이 단점이다. 바이오시밀러 가격은 오리지널의 60% 선으로 낮출 수 있다. 개발 비용이 오리지널 약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며, 개발 기간도 절반 정도로 짧다. 문제는 독점권이었는데, 오리지널 약의 독점권이 2013년 이후부터 줄줄이 소멸한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급팽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셀트리온이 향후 3~5년 정도는 시장을 독점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제약사도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들겠지만, 시설을 준비하는 기간만 4~5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서회장은 시설과 설비를 더욱 늘려 후발 주자의 추격을 따돌릴 계획이다. 그는 기존 5만 리터 규모의 세포 배양 시설에 이어 지난해에는 9만 리터짜리 시설을 추가했다. 그리고 내년에 9만 리터짜리를 또 세운다. 이런 시설을 갖춘 곳은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정도이다.

서회장은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는 시기에 맞추어 2016년까지 해마다 두 개의 바이오시밀러를 출시할 계획이다. 당장 2013년에는 ‘리툭산’과 ‘엔브렐’ 등 대형 오리지널 바이오 약품의 바이오시밀러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러나 그의 최종 목표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앞당기기 위해 그는 바이오베터(bio better)를 준비하고 있다. 바이오베터란 기존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을 개량해 편의성이나 효능을 개선한 약품을 말하며, 신약과 다름없다. 서회장은 “독감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광견병 치료제와 백신도 개발 중이다. 희귀병을 치료하기 위해 세포 치료제도 만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신약과 바이오시밀러 생산 비중을 5 대 5 정도로 맞출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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