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자성 선언’도 나와야 한다
  • 손봉호 │ 고신대 석좌교수 ()
  • 승인 2011.08.3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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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종교 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 발표…종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좋은 자극제

지난 8월23일 조계종의 ‘자성과 쇄신 결사본부’ 화쟁위원회 위원장 도법 스님은 ‘종교 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 - 21세기 아쇼카 선언’ 초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사람들이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종교가 오히려 국민이 근심하고 걱정해야 할 정도로 타락했다고 반성하고, 자기 종교 못지않게 다른 종교를 존중하지 못했으며,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철저하지 못했음을 자성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반성은 매우 종교인다운 모습으로 존경스럽지만 동시에 기독교인인 나를 매우 부끄럽게 했다.

기독교계에서 먼저 나와야 할 자성의 목소리가 불교계에서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주로 걱정을 끼친 종교는 불교가 아니라 기독교이며, 다른 종교를 충분히 존중하지 못한 것에나 정치와 종교를 충분히 분리하지 못한 것에도 기독교가 더 큰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기독교는 그런 양심 선언을 할 대표 기관도 없다.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나 양심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해버렸고, 대내외적으로 기독교를 대변할 만한 도덕적 권위를 완전히 상실했다. 한국 기독교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는커녕 세상의 걱정과 조롱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 기관에서는 화쟁위원회의 선언과 같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겠지만, 나온다 해도 오히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고등 종교라면 적어도 돈·명예·권력에 찌든 영혼들이 잠시라도 그런 욕망에서 벗어나서 가장 선하고 거룩하며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것을 찾아보고 자신의 속되고 거짓된 모습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과 공정성에 모범을 보임으로써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향상시킬 의무가 있다. 희생적으로 봉사해 약자들을 돕고 사소한 이해관계로 생겨나는 갈등을 줄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조화롭고 평화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종교 자체가 돈·명예·권력 추구에 몰두한다면 그런 기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종교는 사회에 발붙일 자격이 없으며, 종교에 허용되는 지위와 특혜를 누릴 권리가 없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는 과거에 그런 기능을 비교적 잘 수행해왔다. 고난을 무릅쓰고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에 공헌했으며, 교육·의료·예술·복지 등의 분야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 덕으로 한국 개신교는 사회의 인정과 존경을 받았으며, 1970~80년대의 눈부신 성장도 그런 사회적 인정과 무관하지 않다. 교인과 교회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되었으며 사회 및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연합뉴스

다음 대통령은 개신교인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바로 그런 성공이 실패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돈·명예·권력 같은 세속적인 힘이 커지자 그것을 즐기고 과시하기 시작했으며 그런 것들을 경계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으로 오해해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시체가 있으면 솔개가 몰려오고 세속적 이익이 있는 곳에 사기꾼이 몰려온다. 자격 없는 지도자들이 양산되어 개신교의 교양 수준과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그동안 쌓아놓았던 아름다운 유산을 탕진하고 말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자신과 ‘자기 교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하급 종교로 전락하고 있다. 종교현상학자 판델레우는 “종교는 봉사하는 것이고, 마술은 지배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 개신교가 점점 마술이 되어가고 있지 않는가 걱정된다.    

한때 한국은 세계적인 고등 종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로 알려졌고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한국의 대종교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관용의 미덕을 유지했기 때문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불교의 포용성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나라에도 종교 간에 충돌들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고, 그 원인의 대부분은 개신교의 광신도들이 제공하고 있다. 개신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다른 종교와 국민들에게 죄송하기 짝이 없다.

물론 모든 종교인은 자기 종교가 옳고 좋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어떤 점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진정한 고등 종교라면 그런 확신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행위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누구보다 더 희생하고, 겸손하며, 사랑하고 섬기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 종교가 진정한 종교임을 증명하는 기본적인 시금석이다. 종교 간에도 경쟁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경쟁은 서로 더 많은 신도, 더 많은 재산, 더 큰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더 낮아지고, 더 희생하고, 더 많이 봉사하는 것이라야 하는 것이다.   

정치권력과의 관계에서 문젯거리가 된 것도 주로 개신교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개신교인이 가장 많았고, 그 가운데 몇은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과시했다는 사실이 그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기독교는 좀 더 조심하고 좀 더 겸손했어야 했다. 돈과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으면 어떤 종교도 순수해질 수 없다. 만약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교회는 그가 모범적인 대통령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며, 교회와 기독교인은 모든 면에서 다른 국민보다 더 손해를 보고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그 대통령이 실패하면 기독교도 그만큼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의 지금 상황을 고려할 때 다음 대통령은 부디 개신교인이 아니었으면 한다. 

물론 종교가 정치에 전적으로 무관심할 수는 없다. 정치는 국민의 삶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인은 누구보다 더 정치가 정의롭게 이루어지도록 가르치고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결코 파당 정치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인권 보호, 약자 보호, 환경 보존, 부패 방지, 공명 선거 등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며 모든 국민이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동의할 수 있는 활동에만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불교계의 자성 선언은 한국의 종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 개신교도 철저히 반성해 기독교의 본질에서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가를 발견하고 철저히 회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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