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프로야구 감독직을 누가 시켜주기를 바라지도, 하려고 애쓰지도 않겠다”
  • 이영미 기자 ∥일요신문 ()
  • 승인 2011.09.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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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신’에서 ‘야인’으로 돌아간 김성근 전 SK 감독 인터뷰

 

ⓒ시사저널 박은숙

 김성근 전 SK 감독(70)은 담담히 운명을 이야기했다. 불과 보름 전 프로야구 감독에서 잘린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목소리가 차분했다. 김감독은 근황을 묻는 말에 “일본에서 휴식을 취하다 8월26일 귀국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다”라고 답했다. 이번에는 ‘바쁜 일정’이 무엇인지 물었다. 김감독은 “야구 가르치는 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느냐. 과거 제자들이 감독으로 재직하는 아마추어 학교 야구부를 찾아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 야구 꿈나무를 지도하며 야구를 통해 얻은 것들을 야구를 통해 되돌려줄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과거에도 김감독은 소속팀에서 경질되거나 재계약에 실패하면 아마추어 야구 현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야구 저변의 씨앗을 뿌렸다. 지도를 쉬지 않은 덕분에 야구 감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김감독이 다시 프로야구 사령탑에 복귀했을 때 다른 감독과 달리 빠르게 현장 분위기에 적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많은 야구인은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예전처럼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재충전하다가 다시 프로야구로 돌아가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다.

김감독도 이를 아는 것일까. 그는 “진심이다”라는 말로 운을 떼고서 “이제 프로야구 감독직에 연연하지도, 누가 시켜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NC 감독으로 부활하지 못한 이유

지난 8월18일 김감독은 SK로부터 경질 통보를 받았다. “올 시즌을 끝으로 SK 감독에서 물러나겠다”라고 스스로 밝힌 지 하루 만이었다. SK는 “김감독이 구단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자진 사퇴해 큰 충격을 받았다. 어수선한 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라는 논리로 경질 책임이 김감독에게 있음을 시사했다.

SK는 김감독 경질을 반대하는 팬들의 항의와 비판 때문에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정작 김감독 경질로 바빠진 구단은 신생팀 NC 다이노스였다. 당시 NC는 초대 감독 선임을 천천히 준비하고 있었다. 야구인들을 광범위하게 만나며 초대 감독으로 누가 좋을지 의견을 청취하던 차였다. 그 와중에 난데없이 김감독이 SK와 결별하게 되면서 NC는 “김감독을 초대 감독으로 선임하라”라는 야구팬들의 요구에 직면했다.

NC의 고위 관계자는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진출과 3회 우승을 이끈 김감독을 두고 다른 감독을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하면 우리를 보고 ‘바보’라고 하지 않겠느냐. 초대 감독 선임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판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사실이었다. 야구계 일부에서 “NC가 양상문 전 롯데 감독(MBC SPORTS+) 등 경남 출신 야구인을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할 것이다”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8월 중순까지 NC는 감독 후보조차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김감독이 SK 유니폼을 벗자 그를 초대 감독 유력 후보군에 올려놓으며 본격적인 감독 선임 작업에 들어갔다. NC는 김감독을 제외하고, 김경문 전 두산 감독과 몇몇 전직 감독을 후보군에 올려두고서 장고에 들어갔다. 우승 경력과 약팀을 강팀으로 만드는 검증된 능력만 본다면 김감독이 단연 돋보였다. 김감독이 NC 이태일 사장과 막역한 사이라는 것도 호재였다.

그러나 최종 검토 과정에서 신생팀인 만큼 다소라도 젊은 감독이 팀 이미지와 어울린다는 결론이 나왔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김감독이 여섯 번이나 소속팀과 불화를 빚고 하차한 전력 때문에 NC가 부담스러워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NC는 두산 사령탑 시절 무명의 젊은 선수들을 스타급 선수로 이끈 김경문 전 감독을 최종 낙점했다. 여기다 50대 초반으로 아직 젊은 데다 경험도 풍부하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NC를 통해 재기가 예상되던 김감독은 아쉽게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김성근과 ‘김성근 사단’은 어디로 가나

 

▲ 지난 2007년 10월29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SK를 2007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김성근 당시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한 야구해설가는 “NC 감독에서 탈락하며 김감독이 다시 현장에 설 확률은 희박해졌다”라고 평가했다. 두산·삼성·LG·SK 등 4개팀은 이미 김감독이 거쳐간 팀들이다. 한화는 한대화 감독의 임기가 1년이나 남은 데다 구단주가 한감독을 절대적으로 신임하기에 교체 가능성이 작다. 넥센은 김시진 감독이 시즌 중 재계약에 성공하며 앞으로 4년간 더 팀을 이끌 예정이다. 롯데 역시 양승호 감독이 올 시즌 처음으로 팀을 맡아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 있다. KIA는 과거에도 김감독 영입을 고려하다가 “팀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포기한 바 있어 광주에서 ‘야신’을 보는 것은 어려울 전망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김감독이 맡을 팀은 없다. 만약 다시 팀을 맡는다면 제10 구단이 창단한 후가 될 것이다. 하지만 10 구단 창단이 확정되고 1군 진입까지는 최소 3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면 김감독의 나이는 70대 중반이다.

김감독은 자신의 말처럼 앞으로 아마추어 야구 꿈나무를 육성하는 데에 매달릴 참이다. ‘야신’에서 물러나 ‘야인’이 되어 한국 야구 발전에 밀알이 되겠다는 자세이다. 김감독의 지인은 “감독님이 야구 관련 기술 서적과 자서전을 집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인이 된 뒤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라고 귀띔했다.

많은 야구인이 걱정하는 것은 김감독과 함께 팀을 떠나거나 떠날 준비를 하는 SK 코치와 직원들이다. 김감독이 경질되면서 이른바 ‘김성근 사단’이라 불렸던 SK의 상당수 코치들이 사표를 제출했다. ‘현미경 야구’로 불렸던 SK 전력 분석팀도 와해될 조짐을 보인다.

여기다 프런트 직원도 짐을 싸 팀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도 김감독처럼 재기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구단의 단장은 “원체 김감독의 색깔이 강하다 보니 ‘김성근 사단’의 능력이 출중해도 그들을 다른 팀에서 영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김감독과 함께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야구계를 영원히 떠날 수도 있다”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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