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현상’ 제대로 읽기
  • 성병욱 | 현 인터넷신문심의위원장 ()
  • 승인 2011.09.2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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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 출마 의향을 잠시 내비치자 폭발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지율이 그의 10분의 1도 못되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하며 불출마를 선언하자 곧 대권 후보 선호도에서 줄곧 압도적 1위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호각지세를 보였다. 박변호사도 안철수 덕에 시장 후보 지지율 선두로 수직 상승했다.

정당 정치 아래서 정당이 선거에서 소외되는 듯한 기현상마저 나타났다. 박변호사에 이어 여당의 러브콜을 받은 이석연 전 법제처장도 입당을 거절했다. 정당 공천을 받는 것보다 진영을 대표하는 무소속이 명분뿐 아니라 경쟁력도 더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치와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경고에 다름 아니다.

이런 정치 불신, 정치 혐오는 정치인들이 자초했다.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불임(不姙)의 정치가 벌써 몇 년째이다. 청년 실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현격한 격차,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 일로이다. 국민이 한나라당에 절대 다수 의석을 주었지만 자중지란과 의원들의 눈치 보기로 다수당 역할을 방기해왔다. 민주당은 여당 때 체결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에 오히려 제동을 걸고 있다. 중요한 국사가 무엇 하나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이 없다.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국민들이 정치·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런 국민들의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성공한 IT 창업자, 창업의 성과를 사회에 환원한 모럴이스트, 의사→ 기업인→ 교수로 외연을 넓혀가는 끝없는 잠재력의 소유자, 좌절한 젊은이들의 멘토라는 이미지를 쌓은 안철수를 만나 폭발한 것이다. 지금의 기세로는 마음만 먹으면 안교수가 서울시장은 물론 대권도 넘볼 수 있는 잠룡(潛龍)임에 틀림없다.

그가 정말 정치적 대망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공개적으로 밝힌 적도 없다. 다만 의사 출신의 성공한 IT 벤처기업인에 머무르지 않고 경영학을 공부해 KAIST 석좌교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진화하며 장관,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중망을 높여왔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좌절하는 젊은이들을 격려한다는 뜻으로 수년간 폭발적 인기를 누리며 청춘 콘서트를 진행하고 사회적 발언을 해온 것은 그 자체가 정치 행위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자기 말로도 멘토가 수백 명이라니 인맥도 대단하다.

그러나 정치의 장(場)에서 그는, 아직 베일 속의 인물이다. 베일을 벗고 링 위에 나서려면 혹독한 검증뿐 아니라 정당과의 연계를 고민해야 한다. 의회 정치·정당 정치 체제에서 정당의 뒷받침이 없이는 대통령이 되기도, 대통령직을 수행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대망을 실현하려면 새로 정당을 만들든지, 여야 정당 가운데 하나를 택해 경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치권 밖의 인물이 쉽게 결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직은 안철수 현상을 당면한 내년 총선·대선에서 잠룡 승천의 예표이기보다는 기성 정당과 정치에 대해 환골탈태하라는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우리 정치가 과연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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