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의 강물, 큰 바다로 흐르다
  • 이춘삼│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9.2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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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 전경. ⓒ뉴스뱅크이미지

군산은 금강 하구와 만경강 하구로 둘러싸인 옥구반도에 자리 잡고 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1899년 5월1일 개항한 항구 도시로서 근대 문화의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본인들에 의해 문호가 개방되었고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거점 구실을 했다는 면에서 목포와 비슷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어쨌거나 당시 군산은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되고 성장한, 일본인들의 도시로 인식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군산 인구 중 조선인과 일본인의 비율이 5 대 5 정도에 이르렀다. 내항을 중심으로 한 시가지는 대부분 일본인 거류 지역이었다. 현재 구 도심 지역 건물 가운데 약 20%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가옥이다.

시내 금광동에 있는 동국사(東國寺)는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등록문화재 제64호’이다. 인근 신흥동에는 ‘히로쓰 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다. 포목상으로 큰돈을 벌어 군산부 의원을 지낸 일본인 히로쓰의 저택이었던 이 전형적인 일식 가옥은 ‘등록문화재 제183호’이다. 내항에 자리한 구 군산세관은 1908년에 완공되었다.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산(産) 붉은 벽돌로 지은 유럽풍의 건물이다. 부잔교도 수탈의 상징이다. 조수 간만의 차가 커 큰 배가 정박할 수 없자 수위에 따라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부잔교를 설치했다.

이처럼 군산시에는 일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의 시대상은 군산 출신 소설가 고 채만식의 <탁류>에 그려져 있다.

군산부로 존립하던 이곳은 1914년 중심지만을 군산부로 남기고 나머지 지역과 임피군 등을 합쳐 옥구군을 설치했다가 1949년에 이르러 군산부를 군산시로 승격하면서 옥구군의 일부 읍·면을 차츰차츰 군산시로 편입하기 시작했다. 1995년 1월1일 마침내 군산시 일원과 옥구군 일원을 합쳐 도농복합형태인 오늘날의 군산시가 탄생했으며 ‘옥구’라는 지명은 옥구읍으로 명맥을 이었다. 군산시 인구는 2011년 7월31일 기준 10만7천9백18세대, 27만4천4백75명이다. 1990년 10월30일 금강 하구둑이 준공되었고, 2008년 4월25일 새만금과 함께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군산시는 호남 공업지대의 대표적 도시로 발돋움했다.

군산의 인물을 얘기하면서 군산고를 빼놓을 수는 없다. 군산 인물의 산실인 군산고는 전주의 전주고, 익산의 남성고와 함께 전북 3대 명문고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1923년 개교해 88년의 역사를 가진 이 학교는 올해 84회 졸업식이 있기까지 모두 2만3천7백41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군산고 출신 중에 중앙 무대로 진출한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군산 지역에서 행세하려면 군산고를 나와야 한다는 말까지 나돈다. 군산고 역대 총동창회장 중에는 김판술 전 보사부장관(작고), 강근호 전 군산시장(작고), 강현욱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 위원장(전 농림수산부장관), 문동신 현 군산시장이 있다.

정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고건

서울대 정치학과

전 국무총리

강봉균

군산사범고-서울대 상학과

국회의원(민주당·군산시) 

김용화

군산고-전북산업대 경영학과

전북도의회 의원(민주당·군산시 2) 

문면호

명지고-건국대 축산학과

전북도의회 의원(민주당·군산시 1) 

엄대우

강문고-중앙대 심리학과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함운경

군산제일고-서울대 물리학과

한국정치발전포럼 대표 

     
법조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강지식

군산고-고려대 법학과

춘천지검 원주지청 부장검사 

김관용

군산고-서울대 사법학과

전주지법 부장판사 

문홍성

군산제일고-연세대 법학과

창원지검 밀양지청장 

박형남

전주고-서울대 법학과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종관

전주고-서울대 법학과

서울고법 부장판사 

     
관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강현욱

군산고-서울대 정외과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 위원장 

고석주

군산고-전북산업대 행정학과

군산시 경제산업국장 

문동신

군산고-단국대 법학과

군산시장(민주당) 

문충실

군산고-육사

서울 동작구청장(민주당) 

박청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부천 오정경찰서장 

양기대

전주고-서울대 지리교육과

광명시장(민주당) 

유광열

군산고-서울대 경제학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관 

은성수

군산고-서울대 경제학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 

     
재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고두모

군산고-서울대 경제학과

대상그룹 고문 

고병우

군산고-서울대 경제학과

한국경영인협회 회장 

김동수

한양대 경영학과

군산도시가스 대표이사 사장 

문재우

남성고-원광대 경영학과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

박노길

군산고-건국대 경제학과

군산상공회의소 회장 

송삼석

전주고-서울대 경제학과

모나미 회장 

송진규

군산고-한국항공대 통신공학과

SK네트웍스 정보통신컴퍼니 사장 

이효율

남성고-서강대 철학과

풀무원 대표이사 사장 


군산고 출신들, 각계에서 약진

특히 민선 군산시장직은 3대 강근호씨의 뒤를 4대~현 5대의 문동신씨가 이어받아 군산고 출신들의 저력을 말해주고 있다. 문시장의 경우 70대의 고령임에도 4회 선거 당시 28.4%이던 득표율을 5회 선거에서 71.4%로 끌어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영식 전 문교부장관, 고병우 한국경영인협회 회장(전 건설부장관), 이종훈 덕성학원 이사장(전 중앙대 총장), 노철래 국회의원(미래희망연대), 이원희 대원학원 이사장, 조재토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 김은기 전 공군참모총장이 군산고를 빛낸 인물로 꼽힌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청해부대 최영함의 함장 조영주 대령도 군산고 출신으로, 후배들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주었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군산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부친인 고형곤 전 전북대 총장의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본적이 옥구군 임피면 월하리인 그는 ‘군산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무리수를 두지 않는 원만한 성격에 ‘행정의 달인’이라는 명성을 얻은 그는 비중 있는 관직을 두루 섭렵한 끝에 국무총리직까지 올랐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기간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는 최고의 관운을 누렸다.

관계 인물로는 강현욱 전 장관과 강봉균 국회의원이 그 뒤를 잇는다. 군산중·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온 강 전 장관은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 관료 출신이다. 동력자원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농림수산부장관, 환경부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또 전북도지사를 관선·민선 한 차례씩 두 번 지냈다. 한나라당에서 새천년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꾸며 군산에서 15·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었으며, 16대 국회 임기 중 전북도지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18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강봉균 의원에게 패했다. 그 후 새만금 사업의 전도사로서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과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강봉균 의원 역시 행정고시 합격 - 경제기획원 근무의 경력을 갖고 있다.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서울대 상대에 늦깎이 입학을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노동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며 청와대에 들어가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친 후 나와서는 재정경제부장관을 역임했다. 경제 관료 시절 얻은 별명은 ‘꾀주머니’였고, 단신(短身)에다 웃음기를 머금은 눈빛에 재기가 넘친다. 16대 국회 임기 중 강현욱 의원이 전북도지사로 자리를 옮긴 후 치른 보궐 선거에서 당선되어 여의도에 입성했다. 연이어 17·18대 총선에 당선되어 3선을 기록했으며, 18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나선 강현욱 후보를 득표율에서 52.8% 대 40.7%로 이긴 바 있다. 내년 19대 총선에서도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강의원의 4선은 확실할 것으로 지역민들은 보고 있다.
  

언론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신효섭

군산고-서울대 공법학과

조선일보 기사기획에디터 

양기엽

남성고-서울대 사회학과

CBS 해설위원장 

최준석

전주고-연세대 신방과

<주간조선> 편집장 

     
종교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장경동

침례교신학대

대전 중문교회 목사 

     
학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강희성

대광고-한양대 경제학과

호원대 총장 

김기곤

삼육고-삼육대 신학과

삼육대 총장 

김영식

군산고-전북대 기계과

KIST 기술정책연구소장 

이길여

서울대 의대

가천길재단 회장 

이승우

경기고-서울대 법대

군장대 총장 

이종훈

군산고-중앙대 경제학과

덕성학원 이사장 

채수일

한신대 신학과

한신대 총장 


고은 시인 등 문화계에서도 유명인 다수 배출

▲ 차량으로 북적이는 새만금 방조제의 군산시 방면 배수관문 도로. ⓒ연합뉴스

내년 총선을 바라보고 뛰는 사람들 가운데는 엄대우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이종영 세아제강 대표, 함운경 한국정치발전포럼 대표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엄 전 이사장은 김홍일 전 의원과 연계된 연청(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활동을 통해 동교동계에 몸을 담았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16대 때 보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중도 사퇴했고 17대에도 출마했다. 18대 때는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티켓이 이종영 후보에게 돌아갔다. 예전에는 군산 시내에서 금은방을 운영했고, 현재는 봉화공원묘원 대표로 있다.

함운경 대표는 1985년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 당시 서울대 삼민투위원장으로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을 지휘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16대 총선에 민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강현욱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결과는 낙선. 2002년 8·8 보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강봉균 후보에게 지기는 했으나 37.6%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제4회 지방선거에서 군산시장에도 출마하고 지역사회 활동을 병행하며 정치의 꿈을 계속 불사르고 있다. 올해 그의 나이는 47세이다.

이종훈 덕성학원 이사장의 동생인 이종영 대표는 한나라당 후보로 18대 총선에 출마했었다.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끊임없이 이름이 오르내리는 고은 시인이 근자에 아내인 이상화 교수(중앙대 영문학과)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담은 시 <아내를 그리는 노래>를 써내 화제를 모았다. 군산중을 다니다 6·25의 혼란 통에 출가해 스님이 되었다가 환속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인 그에게는 시·소설· 수필·평론 등 다방면에 걸쳐 엄청난 양의 저술이 있으며 수상 경력도 다양하다.

고세현 창비 사장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창작과 비평> 편집국에 들어간 이래 한 우물을 파 대표이사·사장이 되었다. 창작과비평사는 2003년 사옥을 파주출판단지 안으로 옮기며 사명(社名)을 ‘창비’로 바꿨다. 현재 정기구독 9천부를 포함해 1만3천부를 찍어 계간 문예지 중 최고의 수준을 지키고 있으며, 단행본 위주의 출판에서 탈피해 중등 과정의 국어 교과서를 펴내는 등 사업 다변화 모색에 부심하고 있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은 한마디로 여장부이다. 그의 모교인 서울대 의대나 서울대 총동창회 활동에서 남성 동문들이 “이회장 앞에 서면 주눅이 든다”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동창회를 위해 기부하는 규모에서도 그렇거니와 주변을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가 여간 아니다. 올해 가천의과학대학과 경원대학을 통합하는 일을 성사시켜 어깨에 날개를 달았다.

재계 인물로 고판남 전 한국합판 회장(작고)이 이름을 날린 시대가 있었다. 군산상업보습학교를 나온 그는 시골 토호(土豪)의 전형인 정미소를 바탕으로 입신하고, 세대제지·한국합판을 일궈내며 명성을 얻어 군산·옥구에서 11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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