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은행에도 돈 맡기기 겁난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09.2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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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은행 등 잇달아 검찰 수사…제1 금융권에도 문제 많아 ‘금융 대란’ 부를 수도

▲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농협 본사. ⓒ시사저널 박은숙

저축은행 비리가 확산되면서 검찰은 금감원 등 유관 기관과 합동수사단을 꾸렸다. 이참에 비리의 온상을 확실히 잘라내겠다는 태세이다. 하지만 제1 금융권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의 금융 사고 건수는 9백91건(4천7백55억원)으로 집계되었다. 이 중 은행권의 금융 사고가 2백40건(2천6백52억원)으로 가장 많게 나타났다. 제1 금융권도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일부 은행은 저축은행 비리에도 연루되어 있어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9월 ‘은행권 금융 사고 예방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12개의 체크리스트를 통해 은행이 자율적으로 금융 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영업점 등 현장 검사 때에도 이 체크리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은행권의 비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금감원이 현재 자료 공개를 거부해 정확한 사고 건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예년에 비해 많으면 많았지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100억원 이상의 대형 금융 사고가 올 들어서 잇달아 발생했다. 은행권의 금융 사고 금액이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농협은 ‘지뢰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부산의 한 지점에서 창구 직원이 79억원을 빼돌리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에도 내부 횡령 사고가 잇따르면서 여러 곳에서 수사 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근 1백20억원 규모의 대출 사고를 낸 부산 연제지점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지점은 지난 2007년 전후로 대출 브로커 이 아무개씨가 알선한 대출을 지속적으로 승인해주었다. 그 대가로 지점장인 하 아무개씨가 네 차례에 걸쳐 2천3백만원을 송금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지난 3월 말 하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부정한 대출에 관여한 감정평가사 이 아무개씨 등도 구속 기소했다. 이씨 역시 담보 부동산의 가치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대출 의뢰자에게 2억5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7월 남원 농협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63억원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이미 대출 브로커 최 아무개씨와 알선업자 심 아무개씨를 구속 기소했다. 현재는 농협 직원들의 금품 수수 여부를 추가로 파헤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금융지주 산하 경남은행은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되면서 은행장이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은행은 지난해 4천4백억원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비리가 불거지면서 물의를 빚었다. 금감원은 당시 경남은행에 대해 특별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조직적인 차원의 비리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관리 책임을 물어 문동성 경남은행장을 문책 경고하는 데 그쳤다. 문행장은 이후 삼화저축은행과 함께 한국캐피탈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남은행이 참여하도록 청탁을 받고 2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되었다.

SC제일은행 역시 저축은행 비리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6월 발생한 6백억원 규모의 대출 사고 때문이다. 검찰은 당시 시중 은행 지점과 투자사 대표, 브로커 등이 낀 대출 사기 조직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이들은 담보 부동산의 감정 평가액을 부풀렸을 뿐만 아니라 시중 은행의 지급보증서까지 위조했다. 이같은 방식으로 수협과 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총 6백억원을 대출받았다. 수협은 위조된 지급보증서를 발행한 SC제일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이렇듯 제1 금융권의 비리가 연일 수사기관에 의해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은 여전히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금융 당국 역시 은행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대처하면서 비난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 내부의 금융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비리 방치하면 저축은행 같은 ‘후폭풍’ 우려

▲ 지난 9월13일 금융감독원이 경찰청과 합동으로 금융 범죄 사고 예방을 위한 실태 점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은행권의 비리를 방치할 경우 저축은행보다 더 큰 ‘금융 대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금융 당국의 지속적인 조치에 제도적인 부분은 상당 부분 정비된 상태이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크로스 감시 시스템을 은행권 내부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2년 가까이 국회에서 표류 중인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금융기관에 대한 조사권을 부여하면서 금감원과 함께 ‘이중의 감시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은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찬반 여론이 엇갈리고 있다. “한은법이 통과될 경우 시어머니 한 명이 더 늘 수 있다”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권 내부적인 자정 노력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한은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 출신 인사들이 퇴직 후에 금융기관의 감사로 들어가다 보니 견제 기능이 약할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제2의 기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은행 부실 통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금감원은 그동안 은행권의 금융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를 잇달아 쏟아냈다. 지난해 9월에 ‘은행권 금융 사고 예방을 위한 종합 대책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앞선 2010년 초에는 금융 소비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 금융 사고 건수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감원 통계에는 증권사와 선물사의 금융 사고만 포함되었다. 은행이나 저축은행의 금융 사고 건수는 공개하지 않아 ‘반쪽짜리 통계’라는 비난이 일었다.

기자는 최근 금감원에 은행권의 연도별 금융 사고 현황 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가’ 입장만을 반복했다. 현행법상 관련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금감원은 뒤늦게 “금융 사고 현황은 언론에 공개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내부적으로 논의를 거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가 언제 이루어질지 여전히 미지수이다.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은행권 봐주기가 아니냐’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은 금융 사고가 터질 때마다 금융권의 ‘온정주의’를 지적했다. 정작 감시 기관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독 기관의 역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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