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헤매는 ‘박근혜 조카 살인 사건’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1.10.16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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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용수씨가 용철씨 살해 후 자살’로 사건 종료…신동욱씨측, 제3자 개입설 강하게 제기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오촌 조카 박용철씨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서울 강북구 우이동 현장. ⓒ시사저널 윤성호

지난 9월6일 북한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두 구의 사체 주인공이 모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오촌 조카들로 밝혀지면서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살인 사건이 ‘계획된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났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 강북경찰서는 사촌형 박용수씨(51)가 사촌동생 박용철씨(49)를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수사를 종결하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10월10일 밝혔다.

그러나 수사 종료 후에도 용철씨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용철씨가 자신의 오촌 당숙이 되는 박지만 EG 회장과 오촌 당고모부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무고 및 명예훼손 재판의 주요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신씨는 지난 2009년 박 전 대표의 미니홈피에 처남인 박회장이 박 전 대표의 묵인하에 아내인 박근령씨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자신을 중국으로 납치·살해하려고 했다는 내용의 글을 수차례 올렸다. 이와 관련해 신씨는 현재 박 전 대표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용철씨가 지난해 7월께 육영재단 법인실 부장으로 있던 이 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이야기한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박지만이 살인 청부 비용을 직접 통장으로 보내준 자료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씨는 이를 바탕으로 박회장을 살인 교사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씨는 박회장측으로부터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되었고, 현재 구속 기소된 상태이다.

결과적으로 신씨는 박 전 대표 및 박회장을 상대로 동시에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삼남매 중 차녀인 박근령씨는 언니인 박 전 대표 및 남동생 박회장과 완전히 등을 돌렸다. 

신씨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동래의 조성래 변호사는 “신씨에게 용철씨는 살인 교사 건과 관련해 무고 혐의를 벗겨줄 유일한 증인이었다. 지난 9월 말 열린 재판에서 신씨와 용철씨가 주고받은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했는데, 녹취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서 용철씨를 증인으로 요청해 증인 신문을 준비 중이었다. 가장 중요한 증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용철씨가 살해된 이번 사건에 대해 신씨측은 계속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용수씨가 용철씨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신씨측의 주장이다. 경찰 수사 발표를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용수씨와 용철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박무희씨의 친손자들이다. 무희씨의 장남인 재석씨의 아들이 용철씨이고, 차남인 재호씨의 아들이 용수씨이다. 서로 사촌지간이다. 용철씨는 1998년께 자녀 교육 문제로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갔다. 경찰과 유족에 따르면 용철씨는 이때부터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했는데, 한국에 들어올 때면 종종 만나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사촌 형인 용수씨와 친분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또한 당초 제기되었던 둘 사이의 1억여 원의 채무 관계는 경찰의 계좌 추적 결과 사실무근인 것으로 밝혀졌다.

“용수씨가 용철씨를 죽일 이유 전혀 없다”

한 친지는 “둘 사이는 보통의 형제지간처럼 때로는 다투기도 하지만, 또 화해하기도 하는 그런 사이였다. 사이가 틀어져서 몇 달간 서로 보지 않다가도,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잘 만나곤 했다. 용수가 용철이에게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용철이가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용수에게 술도 사주고 용돈을 주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것처럼 큰돈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씨측은 용수씨와 용철씨 사건에 제3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신씨측의 증인이기도 했던 전 육영재단 간부 출신인 서 아무개씨는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무시했다’고 해서 형제를 죽일 수 있느냐. 그것도 그렇게 잔인하게. 범행 도구인 망치나 칼에서 용수씨의 지문이 나온 것도 아니다. 용철씨의 죽음으로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누리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의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신씨측의 입장은 신씨측이 공개한 녹취록에서도 엿보인다. 지난해 8월12일 신씨와 용철씨의 통화 내용에 따르면, 신씨는 용철씨에게 “이제 신변이 위험해졌다고 우리 조카님(용철씨) 같은 경우는. 조카님 입만 막으면 이거는 뭐 영원히 묻을 수도 있고…. 그러면 얼마든지 신변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박근령씨 역시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촌지간에 칼부림이 날 정도의 이유가 없다. 좀 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은 개인적인 원한을 살해 동기로 보고 있다. 사건을 맡은 강북경찰서의 관계자는 “용철씨가 용수씨의 전화를 잘 받지 않는 등 용수씨를 무시했다. 수사 결과 용수씨가 ‘동생(용철씨)이 잘나간다고 나를 업신여긴다’라는 말을 평소에 했다는 정황이 밝혀졌다”라고 말했다.

용수씨는 10여 년 전만 해도 강남에서 명품숍과 레스토랑을 운영할 정도로 전도유망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사기를 당하면서 가세가 급속히 기울었다는 것이 친지들의 전언이다. 강북서 관계자는 “강남에 살던 사람(용수씨)이 강북으로 이사를 왔고, 사건 직전에는 여관방을 전전할 정도였다. 그러나 용수씨는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에도 열 번의 술자리를 가지면 아홉 번은 자신이 계산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힘든 사정을 주변에 전혀 얘기하지 않아 가까운 지인들도 용수씨의 상황을 몰랐다. 이 와중에 용철씨가 용수씨를 무시하면서 좋지 못한 감정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신씨측이 제기하는 제3자 개입설에 대해 일축했다. 이병우 강북서 형사과장은 “둘은 마지막에 같이 있었고, 용수씨의 통화 내역에도 그 시간 이후에 따로 통화한 내용이 없다. 제3자가 개입했다면 용수씨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 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 용수씨의 옷에 묻은 혈흔과 용철씨의 유전자가 일치했고, 용수씨의 칼에서 용철씨의 혈흔이 발견되었다. 보통 사건의 경우 이 정도의 증거로 피의자를 체포한 후 심문·자백 등으로 사건이 100% 밝혀진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자살했기 때문에 추론이나 정황상의 증거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제3자 개입은 소설 속의 이야기라면 가능하겠지만, 경찰이 그런 가능성까지 일일이 수사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경찰 “계획적 범행”…‘원한 관계’에 의문 남아

경찰은 수사 결과 밝혀진 정황들로 미루어 용수씨가 용철씨를 살해할 계획을 오래전부터 세워온 것으로 보고 있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칼 두 자루를 용수씨가 지난 7월 말께 구입한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강북서 관계자는 “사건 직전 용철씨와 용수씨는 함께 술을 마셨는데, 부검 결과 용철씨는 혈중 알콜 농도 0.19% 정도로 만취 상태였던 반면, 용수씨는 약 0.05%로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둘을 4·19기념탑 사거리까지 태워줬던 대리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용철씨는 차에 탈 때부터 몸을 가누지 못했다. 용수씨가 완력이 센 용철씨를 살해하기 위해 용철씨에게 술을 많이 먹여 인사불성인 상태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용수씨가 준비된 계획 아래 용철씨를 살해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용철씨와 용수씨 가족·친지들을 다각도로 접촉했다. 그런데 용철씨 가족들은 이 사건이 계속 거론되는 것 자체를 대단히 꺼리는 모습이었다. 한 유족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경찰이 알아서 자세히 수사하지 않았겠느냐. 박씨 가문이 좋지 못한 일로 또다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사건과 전혀 무관한 박 전 대표에게 논란이 확산되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 박근령씨의 남편 신동욱씨. ⓒ시사저널 이종현

신씨측이 공연한 분란을 조장하고 다닌다는 성난 목소리도 들린다. 용철씨의 친형은 “용수는 10여 년 전 이혼을 하고 줄곧 혼자 살아왔다.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격이 점점 폐쇄적으로 변했다. 또한 용철이는 성격이 모나고 직설적인 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용철이가 사촌 형인 용수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켜서 용수가 기분 나빠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용수가 욱하는 마음에 이런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둘 사이가 어떤 사이였는지는 둘밖에 모르지 않겠나. 신씨측은 얼토당토않은 의혹을 제기해 유족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이처럼 두 사람 주변 가족 및 친지들 그리고 관계자들의 증언과 반응은 다양하게 나온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모아지는 하나의 의혹은 분명하다. “술김에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그랬다면 모를까 과연 경찰 조사 결과처럼 용수씨가 미리부터 사전에 철저히 계획을 하고 용철씨를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할 정도로 두 사람 간에 원한 관계가 깊었을까” 하는 점이다.

죽은 두 사람은 말이 없고, 목격자도 전혀 없다. 사건은 의혹을 남긴 채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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