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 부르는 국산 바이오 복제약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10.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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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사들, 신약 제조 기술 확보하려 연구·개발 박차…세계 시장 25% 점유 예상되는 치료제도

 

▲ 바이오시밀러의 메카가 될 인천 송도 바이오 산업단지. ⓒ시사저널 윤성호
세계 최대 바이오 제약사인 미국의 암젠(Amgen) 사는 류머티즘 관절염 등에 쓰는 ‘엔브렐’이라는 약으로 2008년 약 7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동안 특허권 보호를 받으며 세계 시장에서 독점으로 판매되었는데 내년 10월이면 이 약의 특허가 만료된다. 이처럼 굵직한 바이오 신약의 특허 기간이 내년부터 줄줄이 종료되면서 거대한 바이오 복제약(바이오시밀러: biosimilar)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8년 3조원이던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2015년에는 32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시장에 10여 개의 국내 제약사가 출사표를 던졌다. 당장 내년에 특허가 만료되는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엔브렐)의 복제약을 한화케미칼, 녹십자, 한올바이오파마, LG생명과학 등이 개발하고 있다. 또 다른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레미케이드)의 특허는 2013년 만료된다. 셀트리온, LG생명과학, 한화케미칼 등 국내 제약사가 이 약의 복제약을 만들고 있다. 셀트리온은 이미 임상시험 막바지 단계에 도달했고, 내년 초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림프종 항암제(리툭산)는 2015년 특허가 종료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녹십자 등이 이 약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 중이다. 셀트리온은 2013년 출시 직전 단계까지 완료할 계획이고, 삼성바이오로직스도 2016년 제품 출시를 목표로 삼고 있다. 2019년 특허가 만료될 것으로 예정된 유방암 치료제(허셉틴)의 복제약은 셀트리온, 한화케미칼, 녹십자, 동아제약, 이수앱지스 등이 준비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신약 개발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신약 중에서도 바이오 의약품 개발은 성공률이 매우 낮다. 자본이 아무리 많아도 기술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영역이다. 국제 사회가 신약에 특허권을 부여해 제약사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약 개발 기술을 확보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바이오시밀러 개발이다. 복제약을 만들면서 실력을 쌓아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것이다. 탄탄한 자본을 가지고 이 시장에 뛰어든 삼성이 바이오시밀러 개발부터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기술·희귀병 치료제에 도전해 성공

신기술·희귀병 치료제에 도전해 성공

 

 

복제약만 가지고 세계적인 제약사들과 시장에서 겨루기에는 벅차다. 기존의 오리지널 약품에 다른 기능을 추가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두 번 투약하던 횟수를 한 번만 투약해도 동일한 효과를 보거나, 한 번 투약으로 일주일간 지속하던 약효를 한 달 이상으로 늘리는 등의 기능이 필요하다.

이런 기능을 추가하려면 신기술이 있어야 한다. 약을 복제하는 기술 외에 독자적인 기술을 더한 약을 내놓아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이 정도라면 바이오 신약 개발에 근접한 제약사로 평가받는다. 오리지널 신약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한 약에 ‘베터(better)’라는 말을 붙여 바이오베터(biobetter)라고 따로 부르는 이유이다.

한올바이오파마는 C형 간염 치료제의 바이오베터를 만들고 있다. 오리지널 약의 3분의 1 정도만 투여해도 같은 효과를 보이는 기술을 추가했다. 또 투약 기간을 1년에서 6개월로 단축했다. 박종도 한올바이오파마 홍보차장은 “적은 양을, 짧은 기간 동안 투여해도 효과는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만큼 부작용이 적다는 의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제약사는 세계 최초로 먹는 바이오베터(성장호르몬 결핍증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바이오 의약품은 주사 투여제로 나와 있다. 주사를 맞기 위해 환자가 병원을 찾는 불편을 덜 수 있는 셈이다.

일부 제약사들은 희귀병 치료제에 도전해서 경쟁력 확보를 노린다. 시장 규모가 작아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받은 희귀병 치료제가 제약업계의 틈새시장으로 재조명받는 것이다. 환자 수는 적지만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정부 지원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헌터증후군 치료제이다. 헌터증후군은 운동 장애·지능 저하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심하면 15세 전후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유전성 질환이다. 2006년 미국에서 개발한 약(엘라프라제)이 유일하지만, 녹십자가 최근 복제약을 개발했다. 박재현 녹십자 홍보과장은 “식약청에 품목 허가를 신청했고, 빠르면 올해 중에 상품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시장을 시작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4천2백억원 규모의 세계 시장에서 25% 이상을 점유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줄기세포에서 경쟁력을 찾기도 한다. 가장 빠른 시기에 나올 줄기세포 치료제는 크론성 치루 치료용이다. 부광약품 관계사인 안트로젠은 2008년 임상시험을 시작해 3년 만에 마쳤고, 최근 식약청에 이 약에 대한 품목 허가를 신청했다. 빠르면 올해 말에 시판될 전망이다. 최승훈 부광약품 홍보팀장은 “이 약은 지방 조직에서 뽑아낸 줄기세포로 만든다. 한국에 2만명, 일본에 3만명, 미국에 50만명의 크론성 치루 환자가 있다. 지난해 일본 제약사에 기술을 수출했고, 현재 미국 제약사와도 기술 이전 협상을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복제약 개발, 속도·규모·가격 경쟁력 있다”

 

▲ 녹십자의 한 연구원이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 과정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녹십자 제공

 

이와 같은 제약사의 바이오시밀러 개발 노력은 인천 송도의 바이오산업단지 조성을 계기로 신약 개발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전망이다. 특히 신약 개발에서 선두를 달리는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 자본이 탄탄한 삼성바이오로직스, 국내 제약업계 1위인 동아제약이 견인차 역할을 할 전망이다. 김용중 셀트리온 기획조정과장은 “유방암,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의 바이오시밀러를 1~2년 사이에 상품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독감 치료제, 폐암 치료제, 광견병 치료제 분야에서는 신약을 개발 중이다”라고 밝혔다. 삼성은 바이오 신약 개발에 더 적극적인 모습이다. 바이오시밀러 개발과 생산 시설에 2020년까지 2조1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김태한 삼성전자 신사업팀 부사장은 지난 2월 “이건희 회장은 바이오제약을 삼성그룹의 미래 산업이라고 당부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2017년께 유방암 치료제(허셉틴)의 복제약을 내놓을 계획인 동아제약도 매출의 20%를 신약 개발에 쏟고 있다. 김용운 동아제약 홍보과장은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바이오시밀러 2호와 3호도 개발할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은 신약 개발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시밀러의 국제 경쟁력은 탄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오리지널 약과 효능은 같거나 더 우수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바이오시밀러를 환자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최종경 HMC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국내 제약사는 바이오시밀러 개발의 속도, 규모,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의미 있는 치료제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보험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정부도 바이오시밀러 처방을 장려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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