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결실 위로 파고드는 ‘이슬람주의’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10.3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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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이집트 등에서 ‘온건’ 표방한 이슬람 정당 급부상 / 새 정부에서 충돌 일으키며 ‘극단’으로 갈까 우려되기도

지난 10월23일 일요일 튀니지에서 총선이 실시되었다. 벤 알리 정권을 타도하고 중동에서 처음으로 ‘아랍의 봄’ 소식을 전한 지 10개월 만이다. 중동의 독재 정권들이 무너진 후 민주 정부를 구성할 자유 선거를 실시하기는 튀니지가 처음이다. 튀니지의 선거는 중동 민주화 혁명의 첫 결실로 세계의 축복과 기대를 모았다. 이 선거에서 온건 노선의 이슬람 정당이 두각을 나타냈다. 이 정당은 이슬람을 표방하면서도 다원주의와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의 약속대로 만사가 진행된다면 튀니지는 혁명으로 독재 정권을 타도한 많은 중동 국가의 귀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극단주의의 잔혹성을 목격한 많은 사람은 이슬람이라는 말 자체에 일단 우려를 나타낸다. 사람들은 9·11에서 그것을 보았고, 시궁창에서 처참한 최후를 마친 카다피의 죽음에서 그것을 보았다. 그래서 튀니지의 온건한 이슬람 정당도 자칫하면 극단으로 갈 수 있다는 기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동의 독재 정권들은 그동안 이슬람을 탄압하고 세속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총선에서 이슬람의 득세는 이 지역의 미래 모습이 과거와는 달라진다는 것을 예고한다. 알제리는 20년 전 이슬람주의자들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쿠데타를 유발해 10년의 유혈 사태를 경험했다. 팔레스타인은 2006년 선거에서 이슬람 집단 하마스가 승리하는 바람에 서방과의 대결 노선으로 진입했다.

튀니지의 이슬람주의자들은 환호했다. 군부 독재자들에 의한 압제의 시대는 가고 이슬람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웃 이집트의 무슬림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다음 달에 있을 선거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하는 정당이 압승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카다피의 사망으로 혁명을 성공시킨 리비아의 과도 정부도 이슬람을 국정의 기본으로 삼는다고 선언했다. 42년에 걸친 카다피의 철권 통치 아래서 숨죽이며 살았던 이슬람주의자들은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향후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위반하는 세력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교 분리 정책 채택’ 약속 지킬지 두고 봐야

▲ 지난 10월24일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반정부 시위자가 튀니지·이집트·리비아·예멘·시리아의 국기를 그려넣은 손을 펼쳐보이고 있다. ⓒEPA연합
튀니지·이집트·리비아의 이슬람 지도자들은 이슬람의 부활을 우려하는 서방을 의식한 듯 자신들이 구성할 새 정부가 ‘온건한(moderate) 이슬람 노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란과 같은 정교 일치가 아닌 터키식 정교 분리 정책을 채택할 것이라는 점도 시사했다.

그러나 이들의 다짐이 종교의 구속으로부터 정치의 자유를 열망하는 세속주의자들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조지타운 대학의 이슬람 전문가 사메르 셰하타 교수의 말을 인용해 향후 새로 탄생하는 정부에서 이슬람과 세속주의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충돌이 새로운 혼란을 만들고 그 결과 다시 이슬람을 탄압하는 독재 정부가 등장하는 사태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검은 그림자는 어른거리고 있다. 카다피는 리비아의 수많은 종파를 단결시키기 위해 이슬람을 탄압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도 동시에 배격했다. 오로지 카다피식 ‘고립주의’로 일관했다. 그의 노선은 4만명을 죽인 유혈 혁명을 초래했음에도 42년의 독재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그가 역사에서 퇴장함으로써 그의 탄압을 받은 이슬람의 복수는 숙명처럼 다가온다.  

서방, 특히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란과 같은 극단주의 이슬람 정권이 중동에 등장하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가 일체 된 이란의 신정(神政) 체제는 지금 서방의 최대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이란은 서방과 유엔의 수많은 제재를 무릅쓰고 핵 개발을 계속하는가 하면 아랍의 혼란을 틈타 중동의 패권을 노리고 있다. 미국이 튀니지와 이집트의 군사 독재 정권을 수용하고 우호 관계를 유지한 것은 독재가 이슬람 극단주의보다는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터키는 군부 통치를 통해 이슬람과 현실주의를 적당히 혼합한 이슬람식 세속주의 정책으로 이 지역에서 촉망받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런 터키마저 최근 이스라엘 및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에는 저류에 흐르는 이슬람주의가 작용하고 있다. 터키는 최근 강진 피해를 돕겠다는 이스라엘의 제의를 거부했다. 그 정도로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가 깊다. 이스라엘이 밉다 보니 그 나라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미국에 대한 시각도 곱지 않다.

튀니지의 선거 결과는 이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혁명이 진행 중인 시리아, 예멘, 바레인에서도 현 정권이 붕괴될 경우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시리아의 반군은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구성하면서 미국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리비아 반군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미국의 군사 지원에 감사의 뜻을 나타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혁명을 성공시키기도 전에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모습에서 앞으로 이 나라에 등장할 이슬람 정권의 반(反)미·반(反)서방 노선을 진작부터 감지할 수 있다. 아사드 정권도 이미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파인 알라위트 이슬람 세력의 지배하에 있다. 시리아 반군의 이단적 낌새를 알아챈 미국은 이 나라에 주재한 자국 대사를 철수시켰다.

국제 사회도 신생 정부의 올바른 모색 도와야

▲ 지난 9월24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회의 참석차 만난 모하메드 바디에 무슬림형제단 최고지도자(오른쪽)와 전 지도자 마흐디 아케프. ⓒEPA연합

아랍에 등장하는 새 이슬람 정권들에 대한 우려가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이들이 터키와 같은 노선을 채택하고 친(親)서방 정책을 펼 경우 아랍 혁명은 모두가 바라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튀니지의 이슬람 정당 나다(Nahda)당의 지도자는 이슬람과 세속주의를 이상적으로 융합하는 가장 모범적인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 당은 2백17석의 제헌의회 의석의 40%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슬람 정당과 경쟁 관계에 있는 세속주의 노선의 에나다(Ennahda)당도 나다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제 사회의 투자도 요청했다. 아랍 세계에서 경합하는 정당들이 상호 제휴를 다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튀니지 선거를 참관한 분석가들은 이 나라가 여성의 인권을 전면 부정하는 아프가니스탄식 이슬람 노선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튀니지의 선거 결과를 본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자신들이 아랍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튀니지에 비해 이념적으로 더 분열된 이집트의 이슬람 세력은 튀니지의 개방적 접근에 고무된 모습이다. 새 정부 구성 과정에서 경쟁 세력을 포섭할 의사도 밝혔다. 다만 살라피스(Salafis)로 불리는 극우 보수 정당들과의 제휴 여부는 미지수이다. 살라피스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이집트는 군부의 집권 연장 욕망 때문에 튀니지와는 사정이 다르다. 민정 이양을 지연시키는 군부의 애매한 태도가 과격한 이슬람 정권의 출현을 초래하는 구실을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랍 혁명은 이제 절반의 성공 단계에 접어들었다. 혁명에 성공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복수 정당을 포용하는 이상적 민주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이 세 나라가 국제 사회의 열망대로 바람직한 길로 간다면 나머지 국가들에게 모델이 될 것이 확실하다. 종교에 함몰되어 국가 발전을 퇴행시키고 있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처지가 이들에게 교훈을 줄 수도 있다. ‘아랍의 봄’은 튀니지 선거로 첫 꽃망울을 터뜨렸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현실화하는 일차적 임무는 당사국들의 몫이지만 국제 사회도 방관만 할 수는 없다. 그 점에서 서방, 중국, 러시아가 이 지역의 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만 할 것이 아니라 신생 정부들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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