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밀어붙이다 여론 ‘쓰나미’에 휘청
  • 도쿄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1.11.1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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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다 정권 , 야당과 농어민 단체들의 격렬한 반발 불러 민주당 내에서조차 찬반으로 갈려 갈등 커져

일본 노다 정권이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TPP(환태평양 경제협력 협정) 교섭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야당인 자민당과의 갈등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조차 교섭 참가 문제를 놓고 찬반으로 갈려 갈등이 커지고 있다. 당내 일부 의원은 탈당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노다 총리의 교섭 참가 결정을 저지하기 위해 TPP를 반대하는 농림·어업 단체, 여야 정치인, 시민 6천명이 모였다. 일본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먹을거리를 지켜내겠다는 국민 집회 성격이었다. 야당인 자민당, 공명당, 사회당 외에 민주당의 연립 정권인 국민신당의 의원들까지 참가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도쿄의 번화가인 유락쵸에서 가두 집회를 열고 총리와 지도부의 졸속 처리를 정면으로 비난했다. 자민당의 반대파들은 TPP 교섭 참가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노다 내각 불신임 결의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당일본의 다나카 야스오 대표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커다란 물결이 일고 있다”라며 노다 정권의 TPP 참가 검토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지금껏 일본은 정책 문제에서 여야가 갈등하고 대립하는 경우는 많았으나 여야가 함께 반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 TPP 교섭 참가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거대한 정치적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조직적 반발 잠재울 뚜렷한 전략 없어 보여

▲ 지난 11월3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G20 회의에 참석한 노다 일본 총리. ⓒAP연합

 TPP 교섭 참가 문제는 11월12일 하와이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논의가 시작되었다. 지난 8월 취임 이후 안전 운행을 해온 노다 총리가 액셀러레이터를 밞기 시작했다. 이번 일로 노다 총리의 정권 운영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상대해야 할 세력이 만만치 않다. 야당인 민주당, 공산당, 연립 정권인 국민신당 그리고 소속당인 민주당의 일부 반대 세력까지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농어민 단체가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이 걱정거리이다. 이들의 조직적인 반발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전략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TPP를 추진해야 일본의 미래가 있다는 정도의 당위성밖에 보이지 않는다. 농어민을 포함한 반대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이 없으니 찬반을 둘러싼 대립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화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노다 총리는 민주당이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2009년 이후 하토야마 유기오, 간 나오토를 이은 세 번째 총리이다. 앞서 두 정권은 모두 중도 하차한 단명 정권이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일본 외교의 기본 축인 대미(對美)에서 대아시아로 중심축을 옮겼다. 자연히 미국과의 관계에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었다. 또 내부적으로는 오자와 전 간사장과의 역학 관계에서도 심한 균열이 생겼다. 급기야 국민적 지지가 급격히 추락해 간 나오토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간 나오토 총리 역시 참의원 선거에서 소비세 인상이라는, 내부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선거 공약을 내걸어 대패했다. 게다가 전임자인 하토야마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오자와 전 간사장과의 충돌로 급추락하며 제대로 정국을 운영해보지도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이전 두 정권이 추락한 공통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노다는 총리에 임명되자마자 오자와, 하토야마 그리고 개혁 세력과의 삼각관계 구도를 정립하고 안전 운행하는 노선을 걸어왔다. 내부 갈등 구조를 사전에 정리하면서 롱런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 TPP 교섭 참가라는 첨예한 문제에 부닥쳤다.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복구하기도 바쁜데 TPP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복구’에 방해만 될 뿐이라는 여론의 역풍을 맞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어떻게든 조기에 국회를 해산하고 중의원 선거를 치르고자 하는 자민당으로서는 TPP 문제가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노다 총리의 앞날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TPP에 참가해야 일본의 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겐바 고우이치로 외무대신과 같은 이들의 논리를 지지하는 세력들도 적지 않다. 글로벌 경제에서 고립된 상태에서는 더는 일본 경제의 미래가 없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웃 나라인 한국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기업들이 일찍이 글로벌화를 추진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의 산업 경쟁력은 날로 약화되어 한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전 총리들의 전철 밟을지 주목

▲ 지난 10월26일 일본 미야기 현의 농부들이 정부의 TPP 교섭 참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지난 11월8일 TPP 참여 반대 집회에 여야를 초월해 모인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 목소리에 눌려 잘 들리지 않는다. 특히 농어민 단체들의 생존권 박탈이라는 주장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만일 TPP에 가맹해 미국의 관세가 없어지게 되면 자국의 쌀 산업이 가격 경쟁력을 잃어 산업이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주식인 쌀의 경우 일본산 가격이 kg당 1천 엔인 데 비해 미국산은 kg당 30엔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7백%의 보호 관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만약에 관세가 없어지는 경우 일반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미국산 쌀을 구입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 시위에 참가한 반대파들의 주장이다. 농업뿐만 아니다. 의료 제도나 자동차의 환경 규제, 식품 안전 기준도 미국의 압력을 비켜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경우 국가 안전 보장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TPP에 참가하면 산업마저도 미국에 종속될 수 있다며 깊게 우려하고 있다.

노다 총리가 TPP 교섭 참가를 적극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찬반론자들의 대립은 점점 격화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며 가능하면 TPP에 가맹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 반대론자들의 주장과 글로벌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맹을 해야 한다는 주장 사이에서 입장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찬성파들 중에는 일본인들이 섬나라 근성이 있어서 변화를 싫어하고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하는 반대파들의 생각이 저변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양측의 주장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분간 격론이 계속될 것이다. 하토야마·간 전 총리들이 취임 초기에 정책 이슈를 잘못 관리하면서 단명을 초래했던 길을 노다 총리가 또 밟을 것인지, 새로운 길을 걷게 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TPP 교섭 참가를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지금까지 하토야마 전 총리가 오키나와 미군 후텐마 비행장 기지 이전을 언급만 한 채 질질 끌어왔고, 간 전 총리는 소비세 인상률을 올리겠다고 언급만 하고 연기하는 등 지난 2년간 말만 무성했지 실현된 것이 없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책의 결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TPP 참가가 결실의 예가 될지, 국론 분열의 씨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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