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중독을 인정하고 나니 원인이 보였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11.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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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에서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준영이네 가족의 ‘인터넷 게임 중독 극복기’
▲ 지난 11월8일 경기도 군포시에서 인터넷 중독으로 문제를 겪었던 준영군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우태윤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중독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2010년 인터넷 중독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초·중·고교 학생들의 인터넷 중독률은 12.4%에 이르러 20대(8%)와 30대(4%)를 포함한 성인의 중독률(5.8%)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청소년의 수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한국청소년상담원에 따르면 게임 중독과 관련해 상담을 받은 청소년의 수는 지난 2007년 3천4백40명에서 지난해에는 10만8천7백74명으로 불어났다.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문제를 겪고 있는 청소년의 수가 지난 4년 동안 3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청소년의 게임 중독이 부른 참극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부산에서는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부모와 갈등을 겪던 한 남학생이 고교 입학식을 앞두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이 게임하는 것을 말리는 어머니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뒤따라 죽은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게임 중독이 자살과 폐륜적인 범죄로 이어지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불거지면서 ‘게임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들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를 보며 ‘내 아이도 게임 중독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게 되는 부모가 많을 것이다. 

가족 간 불화로 이혼 직전까지 가기도 

경기도 군포시에 살고 있는 박 아무개씨(여·41)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박씨는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아들 준영(15·가명)을 보며 ‘이상한 낌새’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워킹맘이었던 박씨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아들의 종적을 찾을 수 없어 속을 태울 때가 많았다. 박씨는 “준영이가 초등학생일 때 집에 돌아오지 않아 경찰에 신고한 적도 많았다.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날이 어두워져 집에 오는 길을 잃어서였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박씨의 통장 잔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박씨는 “통장에서 매달 적게는 70만원, 많게는 100만원 단위로 돈이 빠져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준영이가 내 주민번호 등과 휴대전화 번호를 도용해 게임 아이템 등을 구입한 것이었다. 당시 준영이가 초등학생 때여서 아이가 쓴 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박씨는 아이가 게임을 좋아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준영이의 상황은 엄마의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준영이의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결국 학교 선생님까지 나서서 ‘상담’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박씨는 “지난해 학교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하셨다. ‘아이가 인터넷 게임에 너무 빠져 있는 것 같은데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말했다. 날벼락 같은 통지였다”라고 말했다.

준영이는 영재교육원에서 영재 교육 대상자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영특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늘 100점짜리 성적표를 들고 와 엄마 앞에서 한참 자랑을 늘어놓던 아들이었다. ‘엄마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박씨는 한동안 아들의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했다. 하지만 계속 방치할 수는 없었다. 박씨는 준영이를 설득해 함께 인터넷 중독 치료를 위한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다. 상담은 지난해 7월부터 1년 동안 꾸준히 이어졌다. 

준영이와 함께 정신과 병원과 상담 기관을 다니면서 박씨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준영이가 너무 외로웠다’는 점이었다. 처음 상담 기관을 찾았을 때 준영이가 받았던 질문은 ‘가족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에 부모 모두 준영이를 돌볼 틈이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크고 작은 다툼도 잦은 편이었다. 사실 준영이는 그동안 ‘자신은 부모의 관심 밖에 있다’라는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준영이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따로 할 일이 없어서 친구들과 함께 PC방에 가는 것이 방과 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준영이는 “처음 PC방에 간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다. 담배 냄새도 심하고 폐인처럼 잠들어 있는 사람도 많아서 자주 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PC방에서 어울리는 친구와 형들이 많아서 외로운 생각이 안 들었다. 나중에는 내가 그곳에 폐인처럼 있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30분 정도 게임을 즐겼는데 그 시간이 점차 길어졌다. 매일 보통 5시간 이상 게임을 했다고 한다. 준영이는 “원래 집중을 잘해서 그런지 게임을 하면서 친구들한테 꽤 인정을 받았다. 한번 인정을 받으니까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것저것 게임을 위한 아이템을 구입했다. <던전앤파이터>라는 게임을 할 때는 엄마 명의로 몇백만 원 정도 쓴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였는데,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내가 얼마나 쓴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어머니인 박씨가 조심스럽게 ‘치료를 하자’라는 제의를 했을 때 준영이는 의외로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준영이 역시 내심 ‘계속 이렇게 게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준영이는 그동안 밤낮이 바뀐 생활 때문에 힘든 점이 많았다고 한다. 준영이는 “학교에서도 무기력해지고, 게임 이외의 모든 것이 다 귀찮아졌다. 원래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고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었는데 나중에는 게임 이외에 관심 가는 것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엄마의 자존심’ 버려야 아이 살릴 수 있다  

▲ 준영군의 어머니 박씨가 아들이 받은 상장 등을 모은 자료집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저널 우태윤
 지난 7월 준영이는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인터넷 중독 치료를 위한 특화 프로그램인 ‘인터넷 레스큐 스쿨’에 참여했다. ‘인터넷 레스큐 스쿨’은 인터넷 게임 중독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인터넷이 단절된 환경에서 11박12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레스큐 스쿨’에는 준영이와 부모 그리고 한 살 어린 준영이 동생도 함께 참가했다. 가족 네 명이 모두 나선 셈이다. 

준영이는 “캠프에서 나보다 더 심각하게 인터넷 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많이 보았다. 하루 15~16시간을 게임만 하는 경우도 있고, 너무 심하니까 벽을 치고 스스로 자해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경우를 보면서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캠프에 다녀온 이후 준영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우선 치료 상담을 잇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고, 게임하는 시간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관심거리도 생겼다. 요즘 준영이가 푹 빠져 있는 것은 바로 ‘기타’이다. 준영이는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놓쳤다는 생각이 든다. 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캠프를 다녀오고 난 뒤 달라진 것은 다양한 쪽으로 관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지금은 학교 통기타부에 가입해 기타를 배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요즘 준영이는 공부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달라진 아들의 모습을 보며 박씨는 “예전에는 이 문제로 가족 간에 싸움도 많았고, 이혼 소송까지 갈 뻔했다. 이것이 모두 밖으로 드러낼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어둠 속에 갇혀 살았다. 준영이도 그동안 가족 문제로 힘든 것이 많아서 그렇게 게임에 몰두했을 것이다. 그동안 준영이에게 관심을 쏟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준영이 가족은 이제야 서로 마음을 여는 첫 단계를 밟고 있다. 예전에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던 모자 사이는 이제 눈짓으로 서로의 기분을 파악하는 사이가 되었다. 만약 박씨가 ‘게임하는 준영이’를 그대로 방치했더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을 변화였다. 박씨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매일 감사한다. 정신과 병원을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준영이가 스스로 결정을 잘 내렸다”라고 말했다.

준영이와 박씨는 인터넷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중독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씨는 “주변에 심지어 아이가 너무 힘들어서 치료받으러 가자고 하는데, 엄마가 이 부분을 인정하지 못해 싫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자존심을 버려야 내 아이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일로) 부모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회에서 외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시행하는 인터넷 중독 치료를 위한 특화 프로그램인 가족 숲 치유 프로그램(왼쪽)과 인터넷 중독 청소년과 레스큐 스쿨(오른쪽)에서 가족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제공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중독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한국청소년상담원은 지난해 ‘인터넷 중독 대응 TF팀’을 새롭게 꾸렸다. 청소년상담원 인터넷중독대응팀은 상담 이외에도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중독 치유 특화 프로그램인 ‘인터넷 레스큐 스쿨’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가족 숲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중독 실태는 어느 정도인가?

여성가족부에서 올해 초3, 중1, 고1 등 3개 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중독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36쪽 표 참조). 전국의 청소년지원센터를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와 관련된 예산 책정은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인터넷 중독과 관련해 치료를 받는 경우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은 날로 커지지만 그 치유 면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인터넷 게임 중독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들 역시 폭력 사건이라든지 심각한 상태로 이어져야만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청소년상담원을 찾게 되는 대부분의 경우를 보면 아이가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식의 폐륜적인 행동을 보이고 나서야 이것이 문제라고 인식해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이런 아이들을 지원하는 기관이 그리 많지 않다. 청소년상담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만 해도 상설 센터를 통해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부모님들은 정신과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부모들이 자비 부담으로 치료를 해야 해 부담이 컸다. 앞으로 예산을 더 확보해 인터넷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넓힐 예정이다. ‘레스큐 스쿨’만 해도 내년에는 참가 규모를 약 6백명 정도로 잡았다.

오는 11월20일 여성가족부가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셧다운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야간 시간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을 제한하는 내용인데 시행 전부터 논란이 거세다.

한국은 인터넷 문화가 성숙한 나라가 아니다. 인터넷 발달 속도에 비해 그에 대한 연구는 미흡했다. ‘셧다운제’는 청소년 인권 및 가정의 영역에 대한 침해 등의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아직 연구가 미흡한 데 따른 결과이다. 나중에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미숙한 부분을 조정해나갈 필요가 있다.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꾸준히 건의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게임 종류에 중독과 관련된 조심성을 알리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인터넷 중독으로 인한 증상을 증명할 구체적인 연구물이 없어서 진행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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