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국물 쿠데타’에 요동치는 라면 시장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1.12.12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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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면·나가사키 짬뽕 등의 인기에 업체 간 희비 엇갈려…1개월 만에 주가 160% 급등하기도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한 고객이 라면을 카트에 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라면업계의 ‘영토 전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꼬꼬면(한국야쿠르트), 나가사키 짬뽕(삼양식품) 등 이른바 ‘하얀 국물’ 라면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신라면(농심)의 아성을 잠식해가고 있다. ‘백색 국물의 쿠데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 점유율 역시 요동하고 있다. 오뚜기는 그동안 농심, 삼양식품에 이어 3위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최근 불어닥친 ‘꼬꼬면 열풍’으로 3위 자리를 내주었다. 부동의 1위인 농심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위와의 격차 때문에 점유율이 역전되는 수모를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작지 않은 점유율 하락이 예상된다. 농심이 최근 2천원대 쌀국수 짬뽕으로 맞불을 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더 방치했다가는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오뚜기 역시 최근 기스면을 출시하면서 ‘국물 전쟁’에 동참했다. 시장 자체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라면업계는 치열한 1위 전쟁을 벌였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라면 판매율은 최근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5년간 성장률은 4.4%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3년 동안의 성장률은 2.1%에 그쳤다. 지난 2010년을 전후로 불어닥친 웰빙 열풍으로 라면 소비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편의점에서는 라면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한때 10대 인기 상품에 꼽혔던 라면은 최근에는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내년에는 시장의 성장률이 0.3%로 낮아지고, 2013년에는 0.5% 하락할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최근 계속되고 있는 ‘국물 전쟁’은 침체된 시장 분위기를 바꾸어놓았다. 입소문이 난 꼬꼬면이나 나가사키 짬뽕을 맛보기 위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고 있다.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시식 후기가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라면 시장의 파이가 5% 이상 커질 것으로 증권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꼬꼬면이 반란의 주인공이다. 꼬꼬면은 지난 8월 출시한 후 한 달 만에 9백만개가 팔렸다. 이후에도 1천3백50만개(9월), 1천7백50만개(10월), 2천만개(11월) 등 판매량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한때 제품이 없어 팔지 못할 정도였다. 대형 마트나 슈퍼마켓에서는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 8천만개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한국야쿠르트측은 전망하고 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회사에서 생산한 라면 가운데 업계 10위 브랜드에 유일하게 포함된 왕뚜껑도 월 6백만개 수준이다. 꼬꼬면은 출시 4개월 만에 왕뚜껑의 판매율을 넘어섰다”라고 말했다.

매출액 역시 수직 상승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이 회사의 매출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런데 3분기 들어 매출이 17.3%나 증가했다. 올해 전체 판매량은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 11월 이천 공장의 생산 라인을 증설했다. 12월 중순에 한 개의 생산 라인을 추가로 증설할 계획이기 때문에 무난하게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양식품, ‘라면 명가’ 회복 여부 주목

나가사끼 짬뽕과 꼬꼬면이 신라면의 매출을 깎아먹고 있지만 농심은 이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라면 원조인 삼양식품 역시 나가사키 짬뽕 출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 7월 출시 한 달 만에 3백만개가 팔렸다. 10월과 11월의 판매량도 각각 1천4백만개와 1천7백만개에 달한다. 8월부터 11월까지 월평균 판매량 증가율은 78.3%에 달한다. 한때 이마트에서 신라면의 판매액을 제쳤다는 발표도 나왔다. 양사는 현재 발표 내용의 사실 여부를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조차도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김윤오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진실 공방 과정에서 나가사키 짬뽕이 소비자들에게 강하게 인식되고 있다. 나가사키 짬뽕의 판매는 향후 더욱 가속이 붙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삼양식품의 주가는 최근 1년간 2백40%나 상승했다. 특히 나가사키 짬뽕의 판매가 안정화된 지난 11월 중순 이후부터 주가가 급등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주가가 1백60%나 치솟았다. 2만원대에 불과하던 주가는 12월8일 현재 5만6천원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농심의 주가 상승률은 10%대에 그쳤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김윤오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3분기 농심의 성장률은 업계 평균을 밑도는 4.7%에 그쳤다. 나가사키 짬뽕의 판매가 본궤도에 접어든 만큼 2013년까지 실적 모멘텀이 이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업계 1위인 농심은 자존심을 구겼다. 삼양이나 한국야쿠르트와 달리 실적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기존의 라면 시장은 사실상 농심이 독차지하는 구도였다. 조사 기관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농심은 그동안 라면 시장의 70%를 독차지했다. 나머지 시장을 삼양식품과 오뚜기, 한국야쿠르트가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최근 꼬꼬면과 나가사키 짬뽕이 인기를 끌면서 농심의 점유율은 5% 정도 하락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심측은 “3% 정도의 변화는 있었다. 이같은 수치는 시장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농심측은 “최근 출시한 쌀국수 짬뽕의 판매량이 1개월 만에 2백만개를 돌파했다. 하얀 국물 라면의 인기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쌀국수 짬뽕의 출시 효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혜승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라면 부분에 대한 농심의 대응 부재로 입지가 많이 약화되었다. 쌀면의 제한적인 수요를 감안할 때 성장성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라면 상식을 깬 것이 ‘하얀 쿠데타’ 성공의 비결로 꼽고 있다. 기존 라면 시장에서는 붉고 매운맛의 라면이 대세였다. 꼬꼬면 등은 맑은 육수와 칼칼한 맛으로 라면의 성공 방정식을 바꿔놓았다. 임문수 에이어스컨설팅그룹 이사는 “기존의 소비자들은 ‘라면=빨간 국물’부터 연상한다. 꼬꼬면은 전혀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내면서 소비자들에게 호감을 얻었다”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라면 시장이 지난 1980년대 격변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국내 라면 시장은 현재 농심, 삼양,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사 체제로 굳어져 있다. 농심은 현재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당시만 해도 삼양식품과 농심의 시장 점유율 차이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삼양식품의 매출이 농심을 앞질렀다. 1980년대 중반 들어 두 회사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농심은 안성탕면, 짜파게티, 신라면 등을 잇달아 성공시켰다. 삼양식품은 사업을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농심의 추격을 허용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양식품은 우지 파동까지 겪었다. 결국 삼양식품은 지난 1998년 화의를 신청했고, 2위 자리까지 오뚜기에게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얀 국물 열풍이 얼마나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관련 제품이 출시되면서 시장이 크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라면업계의 ‘지각 변동’으로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이 있다. 오너 2세들의 성적표이다. 라면업계는 최근 2세 체제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전인장 삼양식품 대표와 함영준 오뚜기 대표가 나란히 회장에 취임했다. 농심 역시 신춘호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아들인 신동원 부회장이 맡아서 하고 있다. 특히 이들 세 명은 그동안 사실상 국내 라면 시장을 삼등분해 운영해왔다. 라면 시장의 최근 점유율 변화가 오너 2세들의 성적표와도 같기 때문에 주목되고 있다.  

그동안의 성적에서는 신동원 부회장이 가장 앞섰다. 지난해 농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8천9백52억원과 1천72억원으로 2년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삼양식품이나 오뚜기는 영업이익 상승률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라면 시장 악화로 오뚜기나 삼양라면의 매출 및 영업이익이 소폭 감소했다. 농심은 꾸준히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삼양의 전인장 회장이 상황을 역전시켰다. 규모 면에서는 여전히 농심이 10배 가까이 앞서 있다. 하지만 올 8월 나가사키 짬뽕을 출시하면서 반격을 가하고 있다. 삼양식품의 주가에서도 이런 추세를 엿볼 수 있다. 최근 1년간 이 회사의 주가 상승률은 2백40%에 달한다. 같은 기간 농심과 오뚜기의 주가 상승률은 각각 29.62%와 16.22%에 그쳤다. 내년 전망 역시 밝은 터여서 주가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전문가들의 예측을 뛰어넘을 정도이다. 김윤오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에도 삼양식품의 라면 판매량은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 역시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반영되었다”라고 말했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하얀 국물’ 열풍으로 최근 회사의 점유율이 소폭 하락했다. 결국 3위의 자리조차 한국야쿠르트에 양보했다. 시장조사 전문 업체들에 따르면 오뚜기의 점유율은 현재 10~11% 정도이다. 올해 들어 점유율이 하락했지만, 해마다 상승세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향후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뚜기 역시 한때 삼양식품을 제치고 점유율 2위까지 치고 올라간 전례가 있다. 3%의 점유율 차이는 마케팅이나 시장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만큼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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