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때마다 목숨 걸어야 한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12.18 21: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경들 “중국 어선 제압 너무 힘겹다” 토로…“총기 사용에 대해서도 구체적 지침 내려주었으면…”

지난 12월14일 순직한 고 이청호 해경 경장의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해상 공권력이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0여 년 사이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단속하던 해양경찰관 3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2008년 9월 목포해경 소속의 고 박경조 경위가 중국 어민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사망했다. 올해 12월12일에는 인천해경 소속의 이청호 경사가 중국 어선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이에 앞선 11월4일에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현장을 순시하던 정갑수 군산해양경찰서장이 경비함 갑판에서 실족해 순직했다.

우리 영해는 중국 어선들에 의해 ‘무법천지’로 변한 지 오래다. 지금처럼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는 해경들의 무덤으로 변할 판이다. 해경들은 동료를 잃은 슬픔과 우리의 해양 주권을 침해하는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에 분노하고 있다.

불법 조업 단속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중국 어선들은 출항 때부터 철망, 쇠창살, 손도끼, 낫, 투석용 납 등으로 완전 무장한다. 어선 둘레는 철망으로 뒤덮고, 밖으로는 쇠창살을 고정시켜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어선은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다. 단속 현장에 있는 경찰관들은 항상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경비 함정 늘려 세력 우세 확보하는 일 시급”

해양경찰청은 고 이청호 경사의 사건을 계기로 대응 수위를 한층 높였다. 중국 어선의 저항에 총기 사용 등 정면 대응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1차적으로 고무탄 발사기, 전자 충격총 등 비살상 무기를 사용하고, 경찰관의 안전에 위협을 가할 경우에 총기를 사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책임 문제 등이 뒤따르기 때문에 총기 사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마련한 대응 지침은 경찰관의 총기 사용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정당한 총기 사용의 경우 행정적 책임을 일절 묻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속 경찰관이 총기 사용에서 완전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실효성은 여전히 미지수이다.

군산해경 소속 순시선 1001호(1천t급)는 지난 11월 큰 아픔을 겪었다. 고 정갑수 서장이 승선했다가 실족한 함정이기 때문이다. 정 전 서장의 사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이것이 천 가지의 얼굴을 가진 바다의 모습이다.

해상 경비 중인 1001호 김충관 함장(경정)과 통화가 되었다. 김함장은 ‘어선들의 강력한 저항’을 중국 어선을 단속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중국 어선들은 해경의 단속에 연합해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불법 어선을 단속하려고 접근하면 주변에 있던 어선들이 단속 함정을 포위하면서 위협을 가한다. 세력의 우세를 내세워 단속을 방해하고, 더 나아가 단속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이다.

김함장은 “우리가 단속하려고 쫓아가면 어선 10척씩 묶어서 도주하고, 올라오지 못하게 막는다. 이 과정에서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위험이 뒤따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일선 단속 경찰관들은 경비함 등을 늘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함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의 숫자가 많다. 우선 경비 함정 등을 보강해서 세력의 우세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12월14일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에서 열린 중국 어선 불법 조업 규탄대회에서 전국의 어업인들이 거리 행진을 하며 중국 어선의 막장 조업 행태를 규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막장 조업’에 어민들 분노도 극에 달해

단속 현장에서 총기를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해경에서 강한 대응 지침을 내리더라도 막상 그런 상황에 닥치면 총기를 사용하는 데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육지 경찰들의 속사정과 같은 맥락이다. 이전의 비슷한 사건에서 답을 찾을 수가 있다. 정부는 해경의 인명 사고가 터질 때마다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2008년 고 박경조 경위가 사망했을 때는 해경 특공대를 편성하고, 첨단 장비를 갖추는 등 대응 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인명 사고가 되풀이되었다. 김함장은 “위에서 총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책임 문제 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단속하는 입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인천해경의 배종벽 경장은 지난 2007년 12월부터 1년간 경비함에 승선했다. 고 이청호 경사가 승선했던 3005경비함이다. 배경장은 중국 어선을 단속하면서 숱한 위험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바다라는 특수성 때문에 큰 경비정으로는 신속한 나포 작전을 할 수 없어 작은 고속정을 내려서 작전을 한다. 연안보다 파도가 심하고 나포 어선에 승선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중국 어선들은 배에 쇠창살을 장착해서 우리 단정이 접근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아예 승선하지 못하도록 죽창 등의 흉기로 저항하고 있다. 직접 현장에서 겪어보지 않고는 상상이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까스로 중국 어선에 승선해도 선원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난투극을 벌여야 한다. 이때 선원들이 사제 무기를 들고 한꺼번에 저항하면 불가피하게 적잖은 피해를 입게 된다. 배경장도 “어선에 승선해서 선원들을 완전히 제압해 배를 나포하는 과정은 긴장의 연속이다.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한번은 어선에 승선하다가 갑자기 큰 파도가 쳐서 바다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다”라고 아슬아슬했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배경장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국 어선이 우리 영해를 넘어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강력한 외교 노력을 펼쳐야 한다. 중국 정부도 자국 어민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더는 눈감고 있어서는 안 된다. 불법 행위에 적극 대처해서 우리 영해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해양경찰관들은 “단속 해경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처럼 인명 사고가 터질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일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달라는 주문이다. 즉, 국민이 여론을 형성해서 든든한 뒷배가 되어달라는 뜻이다.

해경이 바다의 파수꾼이라면 어민들에게는 바다가 생계의 터전이다. 중국 어선들이 불법 조업에 나서면 최대 피해자는 바로 우리 어민들이다. 생계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어족 자원에도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 어선들의 ‘막장 조업’에 어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어민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뿌리 뽑아야 한다”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에는 ‘불법 조업 근절’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 영해의 황금 어장을 중국 어선에 내준 지금 해양경찰관은 생사를 건 사투를 벌이고, 어민들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