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하던 MB 뒷배 ‘형님’은 면목 없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12.1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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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이자 버팀목이었던 이상득 의원의 ‘권력의 성’이 허물어지고 있다. 잇단 정계 퇴진 요구에도 꿈쩍 않고 버텨오던 그도, 자신의 ‘양 날개’나 다름없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보좌관 박배수씨가 연이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자칫 ‘형님 게이트’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상왕 정치’라는 말을 들으며 권력을 행사해온 그의 앞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11월28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 의원연맹 대표단 접견에 앞서 이상득 한국측 회장과 접견실로 향하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역사는 어김없이 또 반복된다.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법도 하건만 5년마다 닮은꼴을 반복한다. 역대 정권을 돌이켜보았을 때, 임기 말이 되면 어김없이 두 가지 징크스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바로, 대통령의 탈당 및 거국 중립 내각 구성과 권력형 친인척·측근 비리의 분출이다.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등 대형 정치 일정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중립 내각 구성 시점도 예전보다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벌써 공개적으로 “이대통령은 탈당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친인척 및 측근 비리 의혹도 여전하다. 정권마다 그 행태가 항상 똑같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형 기환씨가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제 교체 개입 혐의로, 동생 경환씨가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수십억 원대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각각 구속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고종사촌인 박철언 전 정무장관이 슬롯머신 사건으로,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차남 현철씨가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혐의로 각각 구속되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세 아들 가운데 두 명이 구속되는 비운을 겪었다. 특히 YS와 DJ는 모두 현역 대통령 시절 자신의 아들들이 비리로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형 건평씨가 세종증권 매매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이처럼 불행했던 과거사가 지금의 이명박 정부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양상이다. 측근 비리의 봇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 임기 중에 측근 비리는 없다”라고 단호하게 공언했다. 지난 9월30일 열린 청와대 확대간부회의에서도 “우리 정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다. 측근·친척 비리일수록 더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이대통령의 ‘공언’은 ‘공염불’로 전락하고 있다.

“1~2월에 대형 측근 비리 터질 수 있다”

SLS 일본법인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박영준 전 차관이 12월14일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되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측근 비리의 봇물이 터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6월이었다. 은진수 감사원 전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되면서부터였다. 7월에는 이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윤만석씨가 저축은행 브로커에게 1억원을 받은 혐의로, 8월에는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낸 김해수 전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이 부산저축은행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청와대와 사정 당국이 친인척 및 측근 비리 첩보 수집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도 그 시점부터였다. 지난 8월 초 만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VIP(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 비리 수집을 위해 안테나를 풀가동해야 한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슷한 시점부터 사정 당국 관계자들도 기자들에게 “요즘 시중에 나도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 소문은 없느냐”라고 탐문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동시에 청와대는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 비리와 관련된 언론 보도가 있는지 확인하느라 더 분주해졌다.

청와대와 사정 기관이 쌍심지를 켜고 측근 비리를 단속하고 차단하려 했지만 이는 역부족이었다. 이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12월14일 구속되었다. 이 정권 들어 대통령 친인척이 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은 2008년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으로부터 30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에 이어 두 번째이다. 게다가 김여사의 둘째언니 남편인 황태섭씨가 거액의 제일저축은행 고문료를 받아 물의를 빚고 있다. 

사정 당국의 한 간부는 “역대 정권에서는 임기 마지막 해 3월 이후에나 측근 비리들이 하나씩 터져나왔다. 하지만 내년 4월에 총선이 있어서인지 현 정권에서는 역대 정권들에 비해 빨리 터지고 있다. 특히 총선이 임박한 내년 1~2월쯤에 대형 측근 비리 사건이 잇달아 터질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현재 여의도 정가에서는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들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소문 두 가지가 나돌고 있다. 하나는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친인척이 대기업에 입사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이 이권 사업에 개입해 금품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현재 사정 당국에서는 이 소문들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모두 김여사 쪽인 처가에 한정되었지만, 최근 이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SD) 한나라당 의원이 전면 등장하면서 현 정권의 존립 기반을 완전히 뒤흔들고 있다. SD의 핵심 측근들이 잇따라 검찰청사를 드나들고 있는 것이다. SD의 국회 보좌관 박배수씨는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6억원,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1억5천만원을 각각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급기야 SD는 12월11일 기자회견을 열어 “보좌관의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라며 총선 불출마 카드를 빼들었다. 한나라당 내 최고령(76)이자, 최다선(6선)인 SD는 이명박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이자 버팀목이었다. 따라서 그의 퇴장은 현 정부의 큰 축이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당 내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의 실권을 장악한 데다, SD까지 퇴진하면 이대통령의 당무 개입 여지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라는 수군거림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당수 의원실,  ‘비밀 계좌’ 갖고 있다”

이상득 의원 보좌관에게 돈을 건넸다고 밝혔던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씨의 금품 수수 사건 자체가 SD에게 미칠 파장도 클 전망이다. 당장 박씨가 국회 의원회관 419호 사무실(이상득 의원실) 내 다른 보좌진들의 계좌를 통해 돈을 세탁한 정황까지 포착되었다. 단순 개인 비리가 아닐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회 의원회관의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박씨에게 돈을 준 사람들이 보좌관인 박씨 개인을 보고 주었겠느냐”라면서 의심의 화살을 SD에게 돌리는 분위기이다. 또한 “의원실 직원 여럿이서 돈 세탁을 할 정도면 의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라는 말도 들린다.

이국철 회장은 지난 9월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여권 최고 실세(SD)의 핵심 측근(박씨)이라고 해서 만났고, 만나서 상당한 거액을 전달했다”라며 ‘여권 최고 실세’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국회에서 만난 한 중진 의원의 보좌관은 “모든 의원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당수 의원실에서 후원 계좌 등 ‘공식 계좌’ 이외에도 별도의 ‘비밀 계좌’를 가지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적지 않은 의원실에서 ‘비자금’을 관리하는 통장 등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박씨가 이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이 ‘박씨의 것’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라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이 향후 SD를 소환 조사할지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국철·유동천 회장 이외의 제3 인물이나 조직에서 돈뭉치가 박씨의 계좌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추가로 포착되었기 때문에 이의원에 대한 소환 가능성은 더 커졌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SD의 ‘복심’으로 불리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까지 SLS그룹 일본법인장으로부터 일본에서 수백만 원의 접대를 받은 의혹이 불거졌다. 박 전 차관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SLS 이국철 회장과 권 아무개 일본법인장 등은 “분명히 SLS 일본법인의 법인카드로 접대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양 날개’였던 ‘박영준-박배수’가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자, 그동안 여러 차례 여권 내에서 불거져나왔던 ‘정계 퇴진’ 요구에도 꿋꿋하게 버텨오던 SD도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1988년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에 입성했던 SD의 방을 거쳐간 수많은 보좌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 박영준 전 차관과 박배수 보좌관이다. 나머지 역대 보좌진 가운데는 지난 16대 국회 때 보좌관을 지냈던 한 아무개씨만 현재 한 국책연구원 간부로 근무하고 있을 뿐, 다른 보좌진의 현재 활동 내역은 특별히 파악되는 것이 없다. 박 전 차관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1년 동안 SD를 ‘주군’으로 모셨다. 박보좌관은 1996년부터 최근까지 무려 15년 동안을 한결같이 SD를 측근에서 보좌해왔다. 따라서 ‘양박(兩朴)’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동고동락했던 기간만 무려 9년이다. 그만큼 SD와 ‘양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군신지간’이었다. 박 전 차관이 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의 품으로 갔다가 대선 캠프를 거쳐 청와대까지 입성했던 것도 모두 SD의 파견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박 전 차관은 ‘MB(이명박)맨’이라기보다 ‘SD계’의 핵심 고리로 보는 것이 적확하다.

SD계 기반 하루아침에 와해되지는 않을 듯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영장이 발부된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가운데). ⓒ 연합뉴스
SD의 거미줄 인맥도 관심거리이다. 그가 주요 당직을 여러 차례 거치다 보니 인간관계도 상당히 넓은 편이다. 심지어 한나라당 내에서는 “SD에게 한 번쯤 덕을 안 본 의원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이다. 그중에서도 같은 민정계로 6선인 박희태 국회의장과는 각별하다. 박의장이 이명박 경선 캠프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것도 SD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의장도 요즘 고민이 많다. 자신의 비서가 10·26 재·보선 당일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대선 경선 캠프의 고문을 지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SD와 함께 ‘평범한 정치인’ MB(이대통령)를 ‘대통령’으로 등극시킨 창업 공신이다. ‘SD-최시중’은 대표적인 ‘형님 라인’이다. ‘친이계’의 핵심 인사는 지난 10월 한 사석에서 “MB 정부 초기에 ‘친박계’로 분류되었던 의원들 가운데 일부가 ‘친이계’로 말을 갈아탄 적이 있다. 그때 SD와 최시중 위원장 등이 친박계 의원들을 설득시키는 등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때 친이계 의원은 100명을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 토막 났다”라는 말까지 들린다. 그 친이계 가운데 SD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대략 20명이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SD가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근혜 전 대표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친이계가 친박계로 이동하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한편에서는 이 정권을 탄생시킨 SD계의 기반이 하루아침에 와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2월12일 청와대를 떠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도 SD계에 속한다. 평소 임 전 실장을 눈여겨봐왔던 SD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뒤 후보 비서실장으로 적극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MB 캠프 내에서 “박 전 대표와의 경선 때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럼에도 ‘형님’의 강한 천거를 MB가 받아들였던 것이다. 임 전 실장은 물러났으나, 수석급인 청와대 총무기획관에는 SD계인 장다사로 청와대 기획관리실장이 임명되어 SD의 정치적 위상에 큰 변화가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와 어린 시절 처음 알게 되어 친분이 돈독한 권재진 법무부장관도 ‘SD계’로 꼽힌다. 따라서 SD가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오를 경우, 권력 실세를 향한 검찰의 칼날이 얼마나 예리할지도 주목되는 관전 포인트이다.

이대통령과 같은 포항 출신인 이병석 의원은 대통령과 중학교만 다를 뿐 영흥초등학교-동지상고-고려대 등 나머지 학력은 동일하다. MB의 당선인 시절, 이의원은 “전세계에서 대통령을 후원회장으로 둔 정치인은 나 하나뿐일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의원 역시 SD계 정치인이다. 지난 5월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황원내대표는 원내수석부대표에 SD계 이명규 의원을 임명했다. 이 밖에 이은재·이춘식·주호영 의원 등이 당내에서 SD와 상당히 가깝다.

이명박 정부 초기 대표적인 유행어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과 ‘강부자’(강남 땅 부자) 그리고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님을 통한다)이었다. 왕 위에 또 다른 왕이 존재한다는, 이른바 ‘상왕(上王) 정치’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SD의 파워는 그만큼 막강했다. 하지만 현 정권의 임기가 서서히 집권 5년차로 접어들면서 이대통령을 필두로 한 권력 실세들의 파워도 자연스럽게 빠지고 있다. 그와 반비례해서 검찰의 칼날은 더욱 예리하게 파고들고 있다. 특히 SD의 경우 인사 전횡과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등 무수한 의혹 더미에 둘러싸여 있다. 정치권과 사정 당국 안팎에서 “마침내 ‘형님 게이트’가 터지는 것이냐”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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