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렸던 저항의 함성, ‘혁명의 도미노’ 정수리 치다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12.2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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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월가 점령’ 등 국경 넘어 지구촌을 움직인 분노의 시위대들

2011년은 억압과 모순에 항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해였다. 이를 두고 ‘변화’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고 더 나아가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12월14일 미국 <타임>은 이들 ‘시위자’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해 커버로 내보냈다. 전세계에 민주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이들 시위자들은 올해 뉴스의 중심에서 세상을 각성시켰기 때문이다.

아랍에서는 정치적 압박을 풀기 위해 시민들이 나섰다. 이들은 스스로를 묶고 있는 속박을 하나 둘 끊어냈고 이들의 요구는 ‘혁명’으로 분출되었다. 딱 1년 전인 2010년 12월17일에 튀니지의 과일 노점상으로 일하는 20대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끼얹고 성냥불을 붙여 죽었고, 이 억울한 죽음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전파되면서 커다란 물결로 변했다. 이들은 만성적 실업과 23년의 독재로 점철된 튀니지를 바닥부터 흔들었고, 벤 알리 대통령의 장기 집권은 그렇게 끝이 났다. 튀니지 시위는 ‘재스민 혁명’의 신호탄이 되었다.

국경은 무의미했다. 재스민 혁명의 바람은 이웃 국가로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알제리, 이집트, 예멘, 요르단, 시리아, 리비아 등 독재로 억압받는 국가에서 민주화 요구가 들끓었다. 이집트의 시위자들은 30년 장기 집권 중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리비아에서는 민주화 요구가 내전으로 확장되었고, 결국 독재자 카다피는 반군과의 교전 중 사망하면서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시위대에 무력으로 보복하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은 주변 중동 국가들까지 외면하자 결국 지난 11월, 33년간 손에 쥐고 있던 권력을 내려놓는 이양안에 서명해야 했다.

지난 11월25일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군부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이집트 군중. ⓒ EPA 연합

무능한 정부에 대한 항거의 물결 확산

연초 아랍에서 불기 시작한 시위대의 정치적 민주화 요구는 이후 1세계 국가에서 경제적 민주화 요구로 번져나갔다. 유럽, 특히 정치·경제적으로 뒤처진 남부 유럽의 젊은이들은 정부의 긴축 재정과 무능력한 행정력에 분노하며 거리로 나섰다. 지난 6월부터 현재까지 스페인에서는 정부의 긴축 재정에 쪼들려온 ‘로스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의 항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위의 주체도 다양하다. 실업에 항의하는 젊은이, 정부의 대학 예산 감축에 반대하는 교사와 학생들, 임금을 받지 못한 경찰, “교황을 위해 쓸 돈이 없다”라며 교황 방문을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그 주체와 요구는 다양했지만 표적은 단 하나, ‘무능한 정부’였다. 유럽 금융 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에서도 정부의 무능함과 복지 지출을 축소하는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개되었다.

미국에서는 ‘1%의 독점’에 항의하는 청년들이 ‘경제적 민주화’와 ‘공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며 세계 금융 자본의 상징인 ‘월스트리트’를 점령했다. 지난 9월17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에는 수백 명의 청년들이 모여 텐트를 설치하고 월스트리트를 행진했다. 언론에서 외면받던 이 시위대는 이후 SNS에 올라타 미국 전역과 세계 82개국 1천5백여 개 도시에서 동조 시위가 일어나도록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처럼 2011년은 정치·경제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행동하는 시위자’들이 세계의 권력 지형도를 다시 그린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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