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청 높여 ‘열정’을 부른 그들, 경연 열풍에 불을 지피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12.25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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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포맷으로 대중의 인기 끌어모은 <나는 가수다>

올 한 해 TV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계 전반에까지 영향력을 과시한 것은 ‘경연’이다. 그동안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해 최후의 1인을 가렸던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등이 주류를 이루어왔다면 올해는 조금 달랐다. 앨범 발매나 여타 활동을 통해 실력을 입증받은 가수가 직접 경연 무대에 섰다. 이미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1위 다툼을 해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면 아직까지 해당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일 터.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이 긴장에 몸서리치는 모습은 고스란히 안방까지 전달되었고, 그들을 현장에서 바라보는 관객들의 떨리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잔인한 서바이벌 경쟁 체제 탓에 뒷말도 많았던, 하지만 관객과 시청자를 웃고 울게 하며 문화계를 뒤흔들었던 출발점에는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있었다.

<시사저널>이 올해 문화계를 대표하는 이슈로 <나가수>를 선정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나가수>는 입맛 까다로운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으는 데 성공했다. 지난 3월6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매주 일곱 명의 가수가 진지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삐걱거림도 있었다. 방송 초기 김건모 재도전 논란으로 김영희 PD가 방송 3회 만에 스스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이후 한 달여 동안 결방을 하는 등 프로그램 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아이돌 천하’였던 가요계에 새바람 몰고 와

하지만 박정현, 김범수, 정엽, 이소라 등으로 이루어진 나가수 1기는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휩쓸며 <나가수>를 안착시켰다. 장기호 <나가수> 자문위원 단장은 “처음에는 단명할 프로그램으로 인식했었다. 김건모 재도전 논란 때에는 종영 얘기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장수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제작진의 엉뚱한 아이디어는 어느새 닮은꼴을 만들어낼 정도로 힘을 갖게 되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나가수>가 보여준 생존 방법은 시청자에게 먹혀들어갔다. <불후의 명곡2> <오페라 스타> 등 <나가수>의 포맷을 변형시킨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했고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가창력을 새롭게 입증받는 가수들이 대거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수를 노래 실력으로 재평가하는 이 역설적인 체계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아이돌 천하였던 국내 가요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서민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라는 기본 명제에 충실했다. <나가수>가 방송 초반 폭발적인 관심을 끈 이유는, 인지도가 부족하더라도 철저하게 가창력이 검증된 가수들을 기용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나가수>가 요즘은 정체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주변의 반응을 보면 다양하다. 여전히 진지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마니아층들은 김이 빠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대중은 여전히 신비스러워하고 다음 주에 어떤 가수가 나올지, 누가 몇 등을 할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 중 어느 하나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처음만큼의 폭발력은 아니지 않나 싶다.

이렇게 신드롬이 일 것이라고 예상했나?

전혀 하지 못했다. 처음에 청중평가단 5백명을 모아야 하는데 이 인원을 어떻게 모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것은 기우였다. 이 공연에 한 번 오기 위해 수백 번 신청을 해도 안 된다고들 말한다. 그만큼 이 공연에 청중평가단으로 참여하고 싶은 국민이 많다.

<나가수>는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나?

외부에서 이 쇼를 만들게 되면 약 6억원 정도 든다고 한다. 우리는 매주 6억원짜리 쇼를 하는 것이다. 공간, 무대, 음향, 조명, 출연진 등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았을 때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나가수>를 통해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면?

(자문위원의 입장에서) 획일화되어 있는 대중음악의 무드를 바꿔보고 싶었다. <나가수>를 통해 일방적이었던 음악 공급이 다양화되었고, 결국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우리는 잊힐 뻔한 가수들을 재조명했고, 잊혀가던 노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우리 가수들의 잠재력이 엄청났는데 여태까지 이런 시도를 안 해보지 않았나. <나가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많은 것 같다.

장기호 단장은 그 과정을 쭉 지켜봐왔는데.

<나가수>는 한 편의 드라마이다. 이 가수가 <나가수> 무대에 들어와서 곡을 부여받고 중간 평가 기간을 통해서 음악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대입시키고 어떻게 무대에서 보여줄 것인가, 만날 부르던 노래를 똑같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대중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엄청나게 하는 상황 자체가 바로 드라마이다. 열심히 했는데도 누구는 결과가 안 좋고 누구는 좋고, 이것은 우리 인생하고 비슷한 것 같다.

최근에는 가수 인순이가 탈락하면서 충격을 주었다.

우리 자문위원단은 최근 두 번의 인순이 공연을 음악적으로 가장 좋은 공연으로 평가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나가수> 공연 중에서 가장 음악적인 공연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음악적 가치로 보았을 때는 가장 극치였다. 하지만 떨어졌다.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과 대중들이 보는 시각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나가수>는 일종의 게임이다. 노래를 평가하는 측정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청중평가단이 음악 전문가도 아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가수들이 청중평가단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어 놓느냐, 그들에게 어떻게 감동을 주느냐이다. <나가수> 자문위원으로서 청중평가단이 내린 결과를 보면서 음악적으로 훌륭했던 무대가 저평가되는 경우를 보았다. 대중들은 음악을 보는 시각에 더해 뭔가 다른 시각으로 가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엇갈린 평가가 나온 가수가 또 있다면?

이소라가 그중 하나였다고 본다. 조규찬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화려한 가창력보다는 다른 음악적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다른 성분을 가진 가수라고 보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나가수>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나가수>의 백미는 가수들의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누가 떨어지고 누가 1등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음악을 아름답게 만들고 연주했는가에 있다. <나가수>를 정말 제대로 보았다면, 가수들의 피땀 어린 열매를 보고 듣고 즐거워했다면 이미 <나가수>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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