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끼’ 있는 노래 계속 만들고 싶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1.0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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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많이 따라 부르는 노래를 만든 조영수씨

ⓒ 넥스타엔터테인먼 제공
SG워너비의 <내 사람> <라라라>,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 <거짓말>, 오렌지캬라멜의 <마법소녀> <샹하이 로맨스>, 다비치의 <사랑과 전쟁>, 김종국의 <제자리걸음>,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신화의 <Brand new>….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곡부터 아이돌 그룹의 댄스곡, 뽕짝까지 다 섞여 있는 이 노래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작곡가가 조영수(36)라는 점이다.

발라드·댄스곡보다 뽕짝이 가장 어려웠다는 36세의 작곡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람이 노래방에 가서 가장 많이 부르고 방송에서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 그의 노래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집계하는 저작권료 수입에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해마다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저작권료 수입만 해마다 10억원이 넘는 규모이다. 그가 지금껏 발표한 노래는 대략 4백곡 정도이다. 이 가운데 80% 이상은 노래방 기계에 수록되어 있다. 지금 한국인은 그의 노래를 부른다.

연세대 생명공학과에 아직도 휴학 중(?)인 그의 음악 경력은 199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열두 번째 테마’라는 이름으로 팀을 결성해 대상을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듬해 동명 앨범을 냈지만 ‘쫄딱 망하고’ 난 뒤 군대를 다녀오고 이런저런 모색 끝에 2004년 가수 KCM의 1집 앨범에 수록된 <흑백사진>과 2005년 김종국 3집에 실린 <제자리걸음>이 대박을 치면서 대중은 조영수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가수도 그렇지만 대중가요 작곡가도 ‘운때’가 있고 수명이 길지 않다. 트렌드에 제대로 올라타면 몇 년간 히트곡을 쏟아내다가 대중에게서 멀어진다. 하지만 조영수는 일명 소몰이 창법이라고 불리는 SG워너비의 전성기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도 걸그룹인 티아라나 오렌지캬라멜의 대표곡을 쏟아냈고, 그 사이에 <사랑의 배터리> 같은 뽕짝 히트곡도 탄생시켰다.

“2005년부터 미디엄 템포 곡이 유행했다. 그때 SG워너비와 김종국, KCM이 동시에 히트하니까 사람들이 그때 나온 노래를 다 내가 쓴 줄 안다. 겁이 났다. 잘하는 음악만 하다가는 언젠가는 사람들이 질려 할 것이다. ‘미디어 템포 곡=조영수’라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내 좌우명이 음악을 가리지 말고 최대한 다양한 연령대가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자는 것이다. 2007년 다비치의 <사랑과 전쟁>이 내 노래 중 댄스곡으로 처음 히트했다. 그때부터 미디엄 템포 곡은 안 쓰고 댄스와 트로트곡만 썼다. 트로트는 40~60대도 즐길 수 있으니까. <사랑의 배터리>를 발표했을 때 부모님이 처음으로 내 노래로 컬러링을 하시더라. 그런 것이 재밌었다.”

다비치 ⓒ SBS
대학가요제 출신이 ‘뽕짝’을 들고 나와 성공한 사례는 심수봉 이래 그가 처음일 것이다. 게다가 그는 대학가요제 출전 곡은 물론 대학 시절 내내 리듬앤블루스 쪽에 심취했었다.

“예전에는 ‘뽕’이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음악을 하다 보니 뽕이 곧 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이란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정서이다. 그런 음악을 대중이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내가 무시했던 음악을 막상 해보려고 하니 더 어렵더라. 어렸을 때는 화성 멋있게 가고 그런 것이 최고인 줄 알았다. 나는 기존 가요에서 쓰는 화성은 절대 안 쓰겠다고 하고.(웃음) 그게 나 혼자의 만족이었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또 그런 것은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많았다. 기본적인 감성에 충실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한국의 뽕은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도 있다. 나이 든 사람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음악이 나중에 명곡으로 남더라. 이제 뽕끼가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그는 “뽕은 정서이고 한이다. 화성학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감정을 건드리는 음악은 뽕끼가 있는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또 “내가 정의를 내리는 것은 건방지지만 음악을 하면 할수록 단순하고 쉽게 하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 더 어렵다. 그런 것이 좋은 음악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노래 중 짧은 기간에 가장 크게 히트한 곡은 SG워너비의 <내 사람>, 서서히 불붙으면서 오랜 기간 히트한 곡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이승철)와 <사랑의 배터리>(홍진영)이다. 유행이 두 바퀴 도는 동안 히트곡을 계속 만들어내는 그는 어떤 영감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것일까.

“한국인은 들어서 좋기만 한 노래보다 따라 부르기도 좋은 노래 선호”

“곡에서 다루는 사랑의 감정은 주위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을 통해서 곡을 쓴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곡을 받을 가수의 이미지이다. 그 가수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이미지로 나가야 하는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영감을 얻는다.”

성공이 큰 만큼 스트레스도 많다고 한다. “음악 자체를 만드는 고통도 있지만 ‘납기일’을 맞춰야 하는 스트레스가 크다. 가수는 컴백 일자에 맞춰 뮤직비디오나 의상, 안무를 짜는데, 일단 곡이 먼저 나와야 그것이 가능하다. 또 곡이 히트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K팝 붐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K팝의 발전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2007년 빅뱅의 <거짓말>과 원더걸스의 <텔미>가 분수령이었다. 이 노래가 국민 가요 수준으로 확산되면서 아이돌 음악이 퍼포먼스 위주에서 멜로디 음악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2009년까지 후크송 유행으로 이어졌다. 2009년 이후에는 단순한 후크송을 벗어나 질이 높아졌다. 다양성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금은 단순한 멜로디로 매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사운드와 멜로디로 사람을 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리가 일본 음악을 듣고 동경했는데 지금은 일본인이 K팝을 듣는다.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가수가 일본에 진출하면 일본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했지만 요즘은 일본 제작자가 한국에서 히트한 곡을 그대로 가져오기를 고집한다.” 그래서 그의 노래 <너 때문에 미쳐>(티아라)와 <이 죽일 놈의 사랑>(이수영) 등이 일본과 타이완에서 수차례 리메이크되었다.

김종국 ⓒ SBS
그가 팬을 자처하는 가수는 신승훈, 이승철, 김건모, 나얼이다. 신승훈과 이승철은 그의 노래를 불렀다. 특히 신승훈에 대해 그는 ‘작곡 인생의 은인’이라고 불렀다.

“작곡가로서 데뷔한 것이 2003년이다. 옥주현 1집에 깔리는 곡으로 두 곡을 넣었는데 신승훈이 이 앨범을 죽 들어본 뒤 ‘이 두 곡 쓴 친구가 김형석만큼 될 것이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스타 신승훈이 그런 얘기를 했다고 전해 들은 후 그는 “너무 큰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했다. 몇 달 뒤에 신승훈은 그에게 새 앨범에 참여해달라고 불렀다.

그는 가요판의 달라진 풍경을 안타까워했다. “2007년 무렵까지는 대다수 가수가 앨범을 냈다. 요즘은 디지털 싱글이라고 해서 딱 한 곡 사와서 녹음하고 발표한다. 신인 작곡가가 얼굴 내밀기가 어려워졌다. 나만 해도 선배들이 프로듀싱하면서 앨범에 내 노래를 끼어넣어 주어서 기회를 얻었는데 지금은 한 곡 싸움이니까 제작자들이 알려진 작곡가에게만 간다.”

그가 보기에 한국인은 어떤 노래를 좋아할까. “듣기만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따라 부르기도 좋은 노래를 좋아한다.” 가장 겁나는 것은 저작권료 수입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족하는 음악이 안 나오는 순간이다”라는 이 멜로디 메이커는 차에서도, 집에서도 음악을 절대 안 듣는다. “내 귀는 항상 음악에 열려 있는데 그때만큼은 쉬고 싶다. 대신 노래방에서는 내 노래만 부른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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