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사랑 이야기를 강렬한 색채와 관능적 음악으로 버무려낸 재즈 애니메이션
  • 이지선│영화평론가 ()
  • 승인 2012.01.0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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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 <치코와 리타>

ⓒ 영화사찬란 제공
1996년, 제3세계 음악의 대부였던 라이 쿠더와 영화감독 빔 벤더스에 의해 재발견된 쿠바 뮤지션들의 이야기는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통해 전세계에 감동을 전했다. 쿠바의 허름한 뒷골목에서 ‘동네 노인’으로 하릴없이 늙어가던 이브라힘 페러, 꼼빠이 세군도, 루벤 곤잘레스 등은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195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후 잊히고 만 이들을 오늘의 세계로 다시 불러들여 노래하게 했다면,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는 당대의 분위기를 잔뜩 머금은 음악과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그 영화로웠던 시기와 사랑을 추억하는 작품이다.

한때 추앙받던 피아니스트였으나 모든 것을 잃고 가난한 구두닦이로 살아가던 노인 치코는 피로에 지친 어느 날 저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곡을 듣고 이내 회상에 잠긴다. 야망으로 넘쳤던 1948년, 치코는 클럽에서 노래하는 리타를 만난다. 그들은 젊었고, 동시에 재능이 넘쳤으며, 그만큼 뜨거웠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질수록 질투와 오해가 만든 골 역시 깊어졌고 마침내 이별하고 만다. 헤어지고도 서로를 놓지 못하던 그들은 각자 뮤지션으로서 살아가며 만남과 이별을 거듭한다.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는 뜨거웠던 1950년대 쿠바 재즈의 열기를 되살려 낸다는 점에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그리고 반세기에 걸친 연인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다는 점에서 할리우드 고전 <카사블랑카> 혹은 <러브 어페어>와 닮아 있다. 이야기는 고전적이고, 음악은 익숙하다. 그러나 페르난도 트루에바, 하비에르 마리스칼, 베보 발데스 등 3인의 거장은 이 익숙한 것들 위에 강렬한 색채와 관능적 매력을 더해 놀랍도록 새로운 감흥을 전한다.

향수 어린 음악과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는 오래전 어느 시절의 사진처럼 생생하고 아련하다. 눈과 귀가 호강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험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2011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경쟁 부문 대상 수상작.이지선│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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