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파도에 잠기는 석유 수출 길목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1.0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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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서방의 제재에 맞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 / 미국, 이란 중앙은행에 일방적 제재 가할 국방 법안 서명

지난 1월1일 이란 남부 호르무즈 해협 근처에서 이란 해군 함정의 사격 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 AP연합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전략적 수로이다. 걸프 만에서 아라비아 해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란과 아랍에미리트(UAE) 사이에 있는 이 해협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폭 54Km의 이 해협을 두고 미국과 이란은 수없이 충돌했다. 이란의 핵 개발 계획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첨예하게 대립되기 때문이다. 이란이 또다시 이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란 관영 이르나(Irna) 통신은 서방이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강행하면 ‘한 방울의 석유’도 이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라고 보도했다. 이란 해군 제독은 이 해협을 봉쇄할 만반의 준비를 완료했다고 말했다. 이란은 자신들의 경고가 엄포가 아님을 입증하듯 이 해협에서 10일 간의 해상 훈련을 실시하고, 훈련 마지막 날에는 두 발의 장·단거리 크루즈 미사일까지 발사했다. 이란의 메시지는 단호하고 분명했다. 서방의 추가 제재가 있을 경우 해협을 봉쇄하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한 무력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이란은 이미 2004년부터 해협 봉쇄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완벽한 수준의 봉쇄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이란 자신은 물론 세계의 석유 수급에 일대 혼란이 온다. 봉쇄가 단행되면 1차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이란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2위의 산유국인 이란은 이 해협을 통해 산유량의 80%, 하루 2천4백만 배럴의 석유를 세계 시장에 수출해 외화를 획득한다. 이란이 스스로 석유 수출 통로를 포기하면 ‘자살행위’로 간주되지만, 서방과의 대결에서 배수진을 치겠다는 결의의 표시로도 읽을 수 있다. 

해협 봉쇄가 이란에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세계 석유시장이 즉각 요동치기 시작했다. 봉쇄 얘기가 나오면서 세계 유가는 4% 올랐다. 특히 이 해협을 통해 석유를 공급받는 유럽 국가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란의 석유 수출이 중단되면 여타 산유국들이 부족분을 메울 수 있다. 특히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사우디 역시 이 해협을 통해 석유를 수출하는 만큼 수급에 차질이 생기기는 마찬가지다.

이란, 크루즈 미사일 발사 등 긴장 고조시켜

서방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해협 봉쇄를 전쟁 행위로 간주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무력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제5함대 소속 항모 스테니스를 해협 인근 해역으로 급파했다. 이란은 이 항모를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양측의 기 싸움이 갈수록 팽팽해지고 있다. 페르시아 만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도 나돌지만 전쟁이 나면 이란의 석유 수출은 완전 차단되고 가뜩이나 취약한 이란 경제는 붕괴되기 때문에 이란이 실제로 해협을 봉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서방은 해협 봉쇄 경고보다는 호르무즈 해협 부근에서 두 발의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이란 정부의 발표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란이 새해 1월2일 시험 발사한 카데르(Qader) 미사일은 지상에서 바다로 발사되는 사정거리 1백25마일의 신형이다. 이 미사일은 걸프 지역에 주둔한 미군 함정을 타격할 수 있다. 이란은 이보다 사정거리가 짧은 지대해(地對海) 메라브(Mehrab) 미사일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이란은 이보다 하루 앞서 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핵 연료봉을 자체 기술로 생산했다는 것이다. 이르나 통신은 이 핵 연료봉이 물리적 검증을 성공리에 거쳐 실험용 원자로에 주입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이 모든 과정이 평화적 목적의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서방은 이를 핵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본다. 이란은 결국 4차례에 걸친 유엔의 제재를 무릅쓰고 핵 프로그램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는 것이 서방의 판단이다. 핵 연료봉으로 폭탄을 만들고 이 폭탄을 크루즈 미사일에 장착해 목표물로 발사할 수 있는 능력에 다가갔다는 말이다. 미사일 발사 및 핵 연료봉 생산을 발표하면서 이란 해군 사령관은 “이제 해협 봉쇄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라고 말해 이란 군부 내의 지휘 계통 혼선을 나타내기도 했다.  

백악관은 비상이 걸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중앙은행에 대해 일방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국방 법안에 서명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이란의 일련의 행동을 ‘전쟁 행위’로 간주한다고 논평했다. 프랑스와 독일도 이란의 도발 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종합하면 서방은 이란의 핵 개발 저지에 적어도 전술적으로는 실패한 셈이다.

그러나 이란이 해협 봉쇄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서방의 제재가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이란이 핵폭탄 제조에 근접했다는 지난해 11월8일자 유엔 보고서가 나온 후 이란에 대한 다섯 번째 제재를 시도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미국과 유렵연합(EU)은 유엔을 통하지 않는 자체 경제 제재를 강화했다.

핵 프로그램 둘러싸고 사생결단 대결 시작

유가 폭등 소식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미국 뉴욕 상업거래소 직원들. ⓒ AP연합
중앙은행에 대한 강력한 제재 법안이 오바마에 의해 서명되었다는 발표가 있은 후 이란 리알 화는 다른 통화에 대해 12% 하락했다. 그동안 인위적으로 높게 책정되었던 리알 화 가치는 지난해 9월 이후 30% 하락했다. 이란 국민들은 즉각 달러 사재기에 나섰다. 이란의 외환 보유고가 바닥이 났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란 내 민심은 매우 흉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이래저래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말 이라크에서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켰다. 이라크전은 전쟁에서는 미국이 승리했으나 평화는 상실한 상태로 귀결되었다. 성공도 실패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는 얻은 것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한때 소원해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조치도 병행했다. 양국 관계는 사우디의 동맹인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 붕괴를 방관한 미국의 태도 때문에 한동안 서먹서먹해졌다. 미국은 이런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3백30억 달러의 신형 전폭기를 사우기에 판매하기로 합의했다. 혼란에 빠진 이라크 대신 사우디의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서 중동에서 이란의 독주를 막겠다는 전략이다. 페르시아 만 주변의 역학 구도가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적 포위망이 조여오자 이란도 대응에 나섰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새해 초부터 중남미 4개국 순방에 나섰다. 그는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쿠바, 니카라과에서 대서방 공조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 국가들은 반미 노선을 표방해 이란과는 죽이 맞는다.  

중남미에서 이란의 영향력 증대는 서방의 가혹한 제재에 시달리는 이란에 큰 힘이 될 듯하다. 서방과 이란은 이제 핵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사생결단의 전방위 대결에 진입했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는 나름대로 한 가지 기댈 구석을 갖고 다소 안도하는 모습이다. 이란 경제가 비틀거리고 있고, 이란 내부에 권력 투쟁이 가열되고 있다는 정보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란이 무력 출동까지 가는 도발을 하기에는 자체 취약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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