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쇼킹… ‘반값 TV’ 매진 행렬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2.01.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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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형 저가 TV 판매 경쟁 치열…대형 유통사·중소 제조사 합작품 인기 끌며 대기업 시장 독식 끝나

지난 1월6일 이마트에서 판매를 재개한 ‘드림뷰TV’를 고객들이 카트에 싣고 계산대 앞에 줄지어 있다. ⓒ 뉴시스

지난 1월3일 오픈마켓 11번가가 선보인 ‘쇼킹TV’ 5백대가 출시된 지 5분 만에 모두 팔리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이마트의 ‘드림뷰TV’ 5천대가 이틀 만에, 롯데마트의 ‘통 큰 TV’ 2천대가 두 시간 만에 다 팔린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이다. 대형 마트에서 시작된 ‘반값 TV’ 경쟁은 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제품군도 다양해졌다. 20인치대 보급형을 넘어서 37인치 LED TV까지 고급 사양을 탑재한 TV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그동안 유통업체가 출시한 TV는 보급형 저가 제품을 지향했다. 삼성·LG 등 대형 제조업체와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소형에 기본 기능만을 탑재해 ‘가격 대비 경쟁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이제 대형 제조업체와도 정면 승부를 벌일 수 있을 만한 사양을 갖춘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국내 중소 TV 제조업체 관계자는 “대기업 패널을 쓰면서 중국이나 타이완에서 제조한 보드를 탑재한 TV라면 대기업 제품 절반 가격에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3D와 스마트 기능에서도 소비자들이 대기업 제품과 비교해 느끼는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저가 TV는 고물가, 디지털TV 전환 등 중·소형 TV에 대한 수요와 맞물려 폭발적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LG 등 대기업이 독식하던 시장에 유통업체와 손잡은 중소기업이 등장하면서 2012년 TV 시장은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대형 마트 반값 제품, 인터넷쇼핑몰까지 장악

반값 TV 열풍은 지난해 10월 유통업체 이마트가 내놓은 ‘드림뷰 TV’에서 시작되었다. 타이완 제조사에 주문 제작해 49만9천원에 판매된 이 TV는 출시 이틀 만에 5천대가 모두 팔리면서 저가형 제품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비슷한 시기에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가세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6월 이미 ‘통 큰 시리즈’로 한 차례 주목받은 바 있다. 중견 가전업체 모뉴엘과 제휴를 맺고 출시한 40만원대 ‘통 큰 32형 LCD TV’는 판매 5개월 만에 9천여 대가 넘게 팔려나갔다.

이에 힘입어 롯데마트는 지난해 12월 ‘통 큰 TV’ 2탄을 선보였다. 성능과 사양이 대폭 업그레이드된 ‘통 큰 LED TV’였다. 롯데마트는 LG디스플레이의 국산 풀HD급 패널을 사용했고 화면 주사율이 1백20Hz(초당 깜빡임)로 이마트의 드림뷰 TV(60Hz)보다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1백20Hz는 초당 1백20 프레임의 영상이 재생되어 60Hz보다 빠르고 역동적인 디지털 영상을 즐기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기술이다.

49만9천원에 판매된 ‘32형 통 큰 LED TV’는 판매를 시작한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준비한 2천대가 모두 팔렸다. 매출액으로 따지면 9억8천만원가량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개점 전부터 일부 고객들이 대기하고 있을 정도였다. 판매가 완료된 뒤에도 구매를 원하는 고객들은 예약을 받았고, 2차 물량이 준비되는 대로 우선 공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준비했던 물량이 모두 소진됨에 따라 3천대의 물량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홈플러스 역시 지난 12월10일부터 ‘엑스피어’라는 자체 상표로 판매 중인 ‘32형 LED TV’가 준비 물량(2천대)의 90% 이상 판매되면서 추가 주문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피안르와 손잡고 출시한 ‘엑스피어’는 저가 디지털TV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가격(32인치, 45만원)으로 판매되었다.

대형 마트 빅3가 자체 상표를 내걸고 벌이는 ‘저가 LED TV’ 판매 경쟁은 이마트가 2차 판매에 들어가는 시점에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까지 경쟁이 확대된 상황이다. 지난 연말 옥션과 GS샵이 제품을 선보였고, 11번가도 대열에 동참했다. 인터파크도 2월쯤 중소기업 인사이드디지털과 연계해 기획한 TV를 선보일 예정이다. 두 회사는 기존 유통업체가 내놓은 세컨드 TV의 개념을 넘어 40인치대 스마트·3D TV까지 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가격은 기존 제품의 60%대로 저렴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PC 명가인 TG삼보도 TV를 유력한 차세대 사업군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 홈쇼핑 관계자는 “지난해 반값 TV가 인기를 끌면서 유통업체들이 중소기업과 연계해 TV 출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인터넷쇼핑몰까지 달려들었다. 출혈 경쟁의 소지가 다소 있지만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이제 모두의 경쟁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지난 12월 출시된 옥션 TV는 국내 제작 및 사양 향상 등으로 삼성전자나 LG전자 제품과의 격차를 크게 줄였다. 핵심 부품인 패널은 LG디스플레이의 풀LED 제품을 사용했고 스캔 방식도 1백20Hz로 높여 삼성전자의 보급형 모델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저가 TV는 어떻게 이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될 수 있는 것일까?

비밀은 유통 구조에 있다. 비교적 좋은 사양을 갖추고도 대형 가전업체보다 20만~30만원가량 저렴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유통업체라는 강점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주문자 생산 혹은 제조사 직거래로 유통 비용을 최소화하고 마진은 낮췄다. 옥션이나 11번가와 같은 경우 온라인 전용 상품으로 오프라인 매장 유지 비용이 빠졌다는 점까지 더해졌다.

복잡하지 않다. 그동안 삼성·LG 등 거대 제조업체가 TV 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해왔다면, 나머지 5%에 속해 있는 국내외 중소 TV 제조업체의 존재감이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한 셈이다. 옥션은 국내 중소업체 태림전자에서 제작한 32인치 풀HD LED TV ‘에이뷰’를 판매했다. ‘에이뷰’는 저가 TV로 돌풍을 일으켰던 이마트의 ‘드림뷰 TV’보다 2만원 더 저렴한 47만9천원에 판매되었다. 삼성이나 LG의 동급 제품과 비교하면 반값 수준이다. 옥션 관계자는 “TV 가격의 80% 비중을 차지하는 패널을 타이완산이 아닌 국내산 LG디스플레이 패널을 사용했다. 마진을 최대한 낮추고 제조사와 직거래를 통해 가격을 낮췄다”라고 설명했다.

그 밖에도 11번가는 TV 제조업체 엘디케이와 공동으로 기획해 생산하는 ‘쇼킹 TV’를 판매했다. 홈플러스 역시 중국 피안르와 손잡고 ‘엑스피어’를 출시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세계 14대 테스코그룹사들과 공동 소싱, 직수입을 통해 원가를 절감했다”라고 설명했다.

보급형 저가 TV 판매는 인터넷쇼핑몰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왼쪽). 가운데는 ‘쇼킹 TV’, 위는 홈플러스가 내놓은 32인치 LED TV ‘엑스피어’. ⓒ 홈플러스

가격은 낮아지고 품질은 상향 평준화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 TV 제조사가 만나자 품질은 상향 평준화되고 가격은 낮아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기술력 있는 중소업체들의 활로를 오히려 막고 있다고도 하지만 대형 유통사와 중소 TV 제조사와의 결합은 서로에게 기회가 된다고 자신한다”라고 말했다.

유통업체는 TV 판매를 통해 수익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고객을 유치하면서 다른 상품 판매에까지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브랜드 파워와 사후 서비스에 취약했던 중소기업은 대형 유통업체의 이름값을 활용하고 고객들이 우려하는 사후 서비스까지 보장하면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시장조사 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2011년 전세계 32인치 이하 TV 시장은 1억3천19만대로 2년 전인 2009년(9천4백77만대)과 비교해 37.4% 증가했다. 국내 소비자들도 대형 TV 일색에서 벗어나 소형 저가 TV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올 연말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고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됨에 따라 일반 가정에서도 TV 교체 시기를 앞당기고 있고, 서재나 안방 등에 놓는 세컨드 TV에 대한 수요도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대형 마트, 홈쇼핑, 인터넷쇼핑몰 등 유통업체들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홈플러스의 TV 바이어 이진우 대리는 “좋은 품질, 저렴한 가격의 ‘착한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연말 아날로그 방송 종료와 디지털 방송 시대 개막에 맞춰 고객의 니즈(욕구)에 맞는 다양한 TV를 준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저가 TV, 어떤 것들이 있나
  옥션 에이뷰  11번가 쇼킹 TV 이마트 드림뷰  홈플러스
엑스피어 
롯데마트
통 큰 TV 
가격    47만9천원  49만9천원  49만9천원   45만원  49만9천원 
화질   풀HD LED 풀HD LED 풀HD LED HD LED 풀HD LED
크기   32인치  37인치  32인치   32인치  32인치 
제조사    태림전자  엘디케이  타이완TPV 중국 피안르  모뉴엘 
특징   ·LG디스플레이
    패널
·스캔 방식
   1백20Hz
·LG디스플레이
    IPS 패널
·스캔 방식
   1백20Hz
·타이완산 패널
·스캔 방식 60Hz
·타이완산 패널
·스캔 방식 60Hz
·LG디스플레이
    패널
·스캔 방식
   1백20Hz


 ‘제휴’ 못한 중소기업들 “대형 유통기업의 횡포다”  

삼성·LG전자 등 거대 기업과 비교해 국내 중소기업들의 TV는 기술력이나 인지도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다. 유통에서도 대기업의 전략적 공세를 먼발치에서 따라가기조차 힘에 부친다. 그래서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정면 승부를 하기보다는 저가 TV 수요가 있는 틈새시장을 노려왔다. 하지만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이른바 ‘반값 TV’를 앞세워 그 틈새시장마저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일부 중소기업들은 답답한 심정을 내비치고 있다.

LCD·LED TV를 제조, 판매하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중소기업의 시장마저 장악하겠다는 대형 유통기업의 횡포가 될 수 있다. 유통사들과 제휴한 소수 중소기업들에게는 생존의 길일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없는 업체들은 살길이 막막할 것이다. 또 이대로 출혈 경쟁이 심해지면 가격 압박을 받는 것은 결국 우리 제조업체들이 될 것이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대기업의 자본력으로 TV 가격을 계속 낮춘다면 중소업체들은 시장에서 밀려나거나, 제휴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통업체의 입장은 다르다. 대형 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중소 TV 제조업체들은 이 시장에서 유통사의 도움으로 이름을 알려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일부 중소기업이 피해를 받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저가 TV는 유통 채널을 다양화해주고 틈새를 오히려 더 넓혀가며 상생의 길을 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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